HERI 칼럼
이봉현의 책갈피 경제

가 보지 않은 길
송호근 지음/나남(2017)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제너럴모터스(GM)를 제치고 시가총액 1위 자동차 회사가 됐다. 상장된 지 7년 된 회사의 미래 가치가 100년 넘은 ‘거목’보다 크다고 시장이 판단한 것이다. 전기차, 자율주행차로 넘어가면서 자동차의 개념이 크게 바뀌고 있다.

여러 산업에서 일어나는 이런 변화는 ‘쓰나미’가 될 수 있다. 코닥이 디지털카메라에, 노키아가 스마트폰에 휩쓸려 나가떨어졌다. 우리는 자동차, 조선, 철강, 반도체, 비철금속, 석유화학 등 6대 산업에서 세계 최고에 올랐지만 중국의 맹추격에 위태롭기만 하다. 국민소득 2만 달러대에 11년째 맴돌며 한국경제는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답은 나와 있다. ‘빠른 추격자’를 넘어 ‘선도자’가 돼야 한다. 선도자는 제품 및 경쟁의 패러다임을 다시 쓰는 ‘개념설계’ 능력을 갖춘 자인데, 이는 꾸준히 축적된 경험 지식이 창의성으로 불꽃 튈 때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혁신에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회학자 송호근은 <가보지 않은 길>에서 현대자동차를 사례 삼아 혁신의 주체인 기업을 들여다봤다. 초점은 노동에 맞췄다. 그는 “우리의 작업현장에서 ‘축적의 경험’은 일어나는가? 산업현장은 창의적 사고가 발현될 그런 환경인가?” 하고 묻는다. 대답은 부정적이다.

지은이는 현대차 생산과정이 ‘최고의 기술’과 ‘단순 육체노동’이 결합한 특이한 모델이라 진단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지난 30여년의 노사관계에서 찾는다. 즉, 임금과 복지 극대화에 매진하는 강력한 노동조합에 경영은 적절히 양보하는 대신 생산공정에서 노동의 비중을 줄이는 전략을 채택했다. 현장에서 팀워크로 이뤄지던 문제 발견과 해결을 현장밀착형 엔지니어의 연구와 자동화로 대체한 것이다. 책에는 한 노동자의 말이 인용돼 있다.

“58초5에 한대가 생산돼야 합니다. (…) 58초 중 우리가 임팩트를 갖고 작업하는 시간은 볼트 한 6개 박는 거 해봐야 7초면 끝납니다. 나머지는 장비가 움직이는 게 대부분이죠. (…) 장비 움직일 때도 그거 보고 있는 게 아니고, 봐야 하는데, 앉아가지고 휴대폰 봅니다.”

일본 도요타에서는 핵심인 숙련공이 현대차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수당 포함해 9천만원 넘게 연봉을 받는 노동자는 중산층이 됐고, 초기 성장동력이던 열정, 소명의식, 동료애는 엷어졌다. 경험의 암묵지(暗默知)가 전승되기 어려운 여건이다. 현대차의 이런 모습은 국내 주요 대기업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 책이 주로 노동을 다뤘지만, 혁신이 노동의 책임일 수만은 없다. 우리 사회는 고용, 창업, 분배 등 주요 사회제도가 경제규모에 맞게 진화하지 못했다. 대기업 정규직원과 비정규직, 하청·납품업체의 처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격차사회’, 거기에 정부마저 복지에 소홀한 나라에서 집단지성은 잘 발휘되지 않는다. 중소기업은 혁신의 텃밭이지만 우리 중소기업은 그럴 여력이 없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테슬라는 불과 10~20년 전에 창업자의 젊은 패기에서 출발했지만 우리 청년들은 공무원 시험에 매달려 있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우리 사회의 ‘개념설계’가 필요한 때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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