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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를 정치와 경제라는 양대 영역으로 구분하는 것은 근대사상사의 오랜 전통이다. 이 둘은 서로 꽤 명확히 구별되면서도 밀접히 맞닿아 있는데, 현대인들이 이 각각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극히 상반되는 것 같아 재미있다.

먼저 정치에 대해서는 혐오가 두드러진다. 정치혐오란 간단히 말해 정치인이나 정당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싫다는 태도다. 이는 시민이 직접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회인 선거에 대한 참여율을 낮추고, 정치를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어 실제로 정말로 혐오스러운 정치인이 당선될 수 있게 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평소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사람들도 정치권을 보며 비이성적인 분통을 터뜨리고 정치혐오로 읽힐 수 있는 말을 내뱉기도 한다. 이렇게 정치혐오는 스스로 그 현실적 기반을 만들어낸다.

반면 경제에 대해서는 물신주의가 압도적이다. 소유권과 등가교환을 그 최고법칙으로 하는 이 세계에서 ‘돈’을 물신화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돈으로는 뭐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에 대한 물신주의는 곧 돈을 많이 갖기만 하면 되지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따지지 않는 데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유별난 ‘관용’은, 경제가 국민적 단위로 조직된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외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와 우리나라의 부를 높여주기만 한다면 기업이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의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정치혐오와 경제물신주의는 우리나라에서도 예외 없이 깊게 뿌리박혀 있다. 지난 10월 말부터 본격화된 대중집회가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통과로 연결된 과정은 바로 그런 뿌리를 흔든 것 같아 특히 반갑다. 국회라는 ‘제도정치’를 통해 대통령 탄핵의 한 걸음이 내디뎌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제도권 정치는 기껏해야 조연이었다. 대중을 이끈 지도자도 없었고 그 어떤 대선주자도 주목받지 못했다. 힘은 광장 안팎의 대중으로부터 나왔다. 국회는 그 힘의 위력에 놀라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했을 뿐이다. 바로 그 힘을 시민들이 집단적 행동을 통해 생생하게 자각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의사가 제도화된 정치과정에 반영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이야말로 향후 우리 정치를 발달시킬 출발점이다.

‘박근혜 퇴진’과 함께 ‘재벌도 공범이다’라는 인식이 공공연해졌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사실 정경유착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며, 여기서 경제권력은 정치권력의 의지에 복무하는 일방적인 피해자가 아니다. 하지만 그간 재벌은 사회에 만연한 경제물신주의, 곧 ‘무슨 일이 있어도 국민경제 성장에 지장을 줘선 안 된다’라는 이데올로기에 기대 면죄부를 받아 왔고, 재벌의 온전한 활동을 위해 국정안정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정경유착의 또 다른 축인 부패권력 또한 면죄부 발급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러한 과정이 정치혐오를 부추김은 물론이며, 그런 의미에서 경제물신주의는 정치혐오를 낳는 원인이다.

따라서 정치혐오를 넘어서기 위해서도 경제물신주의 극복이 필요하다. 대량해고, 청년실업, 비정규직 증가, 노조활동 위축, 임대료 상승, 가계부채 등이야말로 오늘 한국 사회에서 대중을 힘들게 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들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요구들은 정치적으로 발화되기도 전에 이미 ‘경제발전을 위해’ 억압되고 있었다. 따라서 이 경제물신주의의 억압에서 우리 스스로 벗어날 때, 대중을 위한 진정한 정치도 가능할 것이다. 지금 광장에 넘실대는 ‘재벌도 공범이다’라는 주장은 경제물신주의라는 미몽을 깨는 죽비 소리와도 같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공범’인 재벌에 엄중한 책임을 묻고 적법한 처벌을 하는 게 중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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