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누가 당선되든 예정된 수순이긴 했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로의 회귀 말이다. 그래도 오바마 정부가 한참 공들여 키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재협상’(클린턴)과 ‘폐기’(트럼프) 사이의 간극은 결코 작지 않다. 그만큼 트럼프 당선의 충격이 큰 것이다. 이런 움직임이 외국인 혐오 같은 정서에 의해 추동되고 있어 더 걱정스럽다. 미국이 이끄는 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끝났는가?

어떤 이는 언제 미국이 자유무역주의를 실천했느냐고 따질지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미국은 다른 나라들에 대해선 관세철폐와 문호개방을 요구하면서도 그것이 자국에 불리할 때는 철저히 반대로 행동해왔다. 이를 두고 미국의 자유무역주의란 ‘내가 말하는 대로(행동하는 대로가 아니고) 해’라는 ‘주의’라고 비꼬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이번 대선을 통해 미국은 이제 앞으로는 행동뿐 아니라 말로도 보호주의로 가겠음을 천명한 셈이다. 최강대국 미국으로선 좀 ‘모양 빠지는’ 일이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 선회는, 자유무역주의 또는 세계화란 무엇보다 ‘이데올로기’였음을 새삼 드러낸다. 그것은 줄잡아 지난 30년간, 특히 현실 사회주의권의 몰락 이후 한 나라의 경제정책은 물론 개개인의 생각과 행동까지 규율한 최고 이데올로기이자 ‘정언명령’이었다. 세계화의 옹호자들은 그것을 인류가 추구할 보편가치로 포장하는 일종의 ‘주술사’였다. ‘최순실’은 대한민국 청와대 주변에만 있는 게 아니다.

물론 그간 많은 비판들이 있었다. 세계화에 전면 반대하면서 소규모 지역주의적 가치들을 옹호하는 입장도 없진 않았지만, 대부분의 비판자들은 미국이 주도했던 세계화는 인류가 지향할 바람직한 모습의 세계화가 아니고 오직 자본의 배만 불리는 세계화라고 옳게 꼬집었다. 이를테면 지난 30년간 옹호된 세계화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만을 지향했지 노동 또는 인간의 자유 증진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한 나라의 관세장벽을 낮추고 자본 계정을 대외적으로 개방하는 세계화, 여차하면 자본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도 제기할 수도 있는 세계화였다. 그것은 누군가가 먼저 이뤄놓은 문명과 이기를 더 많은 이들과 자유롭게 나누는 세계화, 적어도 더 좋은 삶과 노동의 조건을 찾아 사람들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게 해주는 세계화는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2008년 금융위기는 비록 파국적이긴 했어도 선진국의 지배층이 추구했던 세계화의 필연적 결말이라고 그들 자신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었는지 몰라도, 최근 서유럽과 미국에서 불거지고 있는 ‘이주민 위기’는 그들이 추구했던 세계화의 모순이 이제 더는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한다. 최근 영국(브렉시트 찬성)과 미국(트럼프 당선)에서 전문가들의 예상을 깬 ‘투표 반란’이 흥미로운 것도 그래서다. 적어도 겉으로는 이 반란들이 ‘자본의 과잉’이 아니라 ‘이민의 과잉’에 의해 불붙여지고 있지 않은가. 물론 이 둘은 본질적으로 연관되어 있지만 말이다.

‘미국식 세계화’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세계화’가 끝난 건 아니다. 미국이 물러난 빈틈에 중국이 빠르게 비집고 들어오면서, 사회주의 중국이 자유무역의 ‘첨병’을 자처하는 기이한 일도 벌어지고 있다. 역시 자유무역주의란 보편적 이상도 아니고 그냥 ‘강자’의 논리일 뿐이 아닌가! 기막힐 노릇이지만, 지금 우리에겐 넋 놓고 헛웃음 지을 여유가 없다. ‘그분’이 하루속히 물러나야 할 또 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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