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2022년이 되면 선진국 대부분의 시민들은 진짜 정보보다 거짓 정보를 더 많이 이용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컨설팅업체 가트너가 2017년 10월 발표한 ‘미래 전망 보고서’의 한 대목이다. 미래 예측은 해당 시점에서 대부분 실패로 판명된다는 게 정설이지만, 2022년 벽두에 점검해본 5년 전 예측은 섬찟한 현실이 됐다.

2016년 말 영국 옥스퍼드 사전은 ‘탈진실’(Post Truth)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법과 기술을 동원한 개선 시도에도 상황은 심각해져가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해 1월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약 3만번, 하루 20번꼴로 거짓 정보를 퍼뜨렸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트럼프는 ‘가짜뉴스 유포자’ 이미지를 안고도 2020년 미국 대선에서 4년 전보다 1000만표나 많이 득표했다.


디지털에서는 무어의 법칙 영향으로 약 24개월마다 정보가 2배로 증가하는데, 최근 인공지능과 챗봇이 등장해 정보 홍수 현상은 가속화하고 있다. 인간의 제한된 주의력과 시간, 인지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세상이다. 검색 엔진, 필터, 알고리즘을 이용해 정보를 선별하고 추천해주는 맞춤화 큐레이션 서비스가 쏟아지는 배경이다. 디지털화가 진행될수록 정보 처리 도구에 대한 의존이 깊어지는데 이는 편리하면서도 위험하다.


철학자 레나타 살레츨은 “무제한 정보를 온라인으로 이용하는 시대에서 지식의 부족을 인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모두가 검색엔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어떤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핑계 댈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알고 싶지 않은 마음>). 살레츨은 디지털 환경이 모든 것을 스스로 처리하도록(DIY) 요구하는 ‘사회의 이케아화’를 가져왔는데, 이는 자신의 지식 부족을 인정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경고한다. <전문가와 강적들>의 저자 톰 니콜스는 “사람들이 ‘나도 너만큼 알아’라고 믿기 시작할 때, 민주주의 체제가 포퓰리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용자들은 편리하고 강력한 정보 처리 도구를 장만하고 사용하는 데 적극적이지만, 모든 것을 스스로 처리하고 책임져야 하는 문화에는 익숙지 않다. 그 틈을 악용하는 게 가짜뉴스 세력이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응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절실해지고 있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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