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대선의 출발, 4·16 그날

HERI 2017. 03. 13
조회수 2316

[한겨레 프리즘]


대한민국 여기저기에서처럼, 그날 밤 우리 동네에서도 뜨거운 파티가 열렸다. 겨우내 촛불 드느라 수고한 서로를 위로하고 축하했다. 삼년 전 그날의 참사가 없었다면 서로 비껴갈 인연들이었다. 세월호 이후의 다른 세상, 좋은 사회를 고민하면서 맺어진 관계들이었다. 이 시간을 있게 해준 세월호의 희생자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소회가 이어졌다. 때로 울컥했고, 때로 뜨거웠다. 


2015년 <한겨레>는 신년조사에서 해방 후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물었다. 이 질문에 50대 이상은 한국전쟁을, 40대 이하는 세월호를 꼽았다. 한국전쟁이 우리가 세운 국가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중장년 세대의 공포를 보여준다면, 세월호 참사는 그 국가가 우리를 버릴 것 같다는 충격을 상징한다. 세월호는 우리 시대의 묵시록이다. 이 시간 이후엔 탄핵이 덧붙여질지도 모르겠다. 망가진 국가를 우리 힘으로 다시 일으켜 세운 시민혁명으로 말이다. 이번 대선이 역사적 대선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다. 


이번 대선은 촛불광장의 희망을 일상의 현실로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여론조사를 보면 그 방향은 공정사회와 양극화 해소로 모인다. 국가를 사유화한 박근혜 정부를 경험하면서 공정사회를 향한 염원이 절실해졌고, 그 물적 토대로 양극화 해소가 꼽히는 것이다. 부자와 빈자, 강자와 약자 모두에게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이번 대선에 부여된 시대정신일 것이다. 


대선은 이를 위한 정책적 과제와 해법을 두고 경합하는 장이다. 대선 구도만 보면 야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일으킨 거대한 지각변동의 결과다. 집권세력에 대한 심판, ‘헬조선’ 리셋은 이 시대의 최소 상식이다. 문재인 대세론은 이런 정권교체 욕망이 가능성 높은 야당 후보에게 집중된 결과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 이후엔 심판 구도에 미래 구도가 겹칠 것이다. 어떤 세상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비전과 정책의제들을 놓고 정치세력들이 경합하는 새로운 구도가 펼쳐진다. 


탄핵은 진보와 보수가 정치세력과 유권자 차원 모두에서 연대를 이룬 진귀한 정치적 경험이다. 이성과 상식에 입각하지 않은 탄핵 반대 극우세력의 존재가 80%의 연대를 가능하게 한 결정적 조건이었다. 이제 탄핵이라는 공통의 목표가 소멸되면서 이 잠정적 연대의 끈도 약해질 것이다. 


공통의 적이 사라진 후의 각개약진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디로, 어떻게 가겠다는 것인지가 중요하다. 지지 세력이 큰 문 전 대표에게는 상충하는 수많은 요구들이 쏟아지고 있을 것이다. 앞서 달린다고 부자 몸조심 흉내내지 않길 바란다. 국민들은 적당한 타협이나 봉합이 아니라 책임있는 비전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가 진짜 시험대다. 문재인만 아니면 된다는 정치세력들은 딱하다. 이들에게는 한마디만 하고 싶다. 짝짓기할 시간에 국민을 보라. 국민들은 책임을 이행했다. 이제는 정치인들의 차례다. 


정치학자 셰보르스키는 민주주의는 자신들이 뽑은 통치자를 해고할 수 있는 체제라고 말했다. 대통령을 직접 끌어내림으로써 민주주의의 효능을 체감한 시민들에게 이번 대선은 달랑 투표권 하나 행사하는 기회가 아니다. 2014년 4·16 이후 억압되고 유예되었던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과제에 착수하는 첫걸음이다.

늦은 밤까지 이어진 우리 동네 축하파티는 세월호 참사 3주기 행사를 알리는 펼침막을 거리에 걸고 마무리되었다. 그들의 희생 위에 이 시간이 있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조사센터장 hgy4215@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http://hani.co.kr/arti/opinion/column/786140.html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한겨레 프리즘] 참여정부를 넘어서려면 / 한귀영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84%로 역대 최고치로 나타났다. 갤럽이 6월2일 발표한 결과다. 이낙연 국무총리 등 인사 논란의 와중에 나온 지지도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자...

  • admin
  • 2017.06.07
  • 조회수 1895

[유레카] 권력자원 / 이창곤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자료: 고용노동부 복지국가는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대량실업 등 ‘시장의 실패’가 불러일으킨 각종 사회문제를 수정 혹은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성립했다. 자본주의 시장...

  • admin
  • 2017.05.29
  • 조회수 2477

[한겨레 프리즘] 소신투표냐 전략투표냐 / 한귀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장미대선 레이스가 결승점을 향하면서 소신투표와 전략투표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당선 가능성은 낮지만 지지하는 후보에게 투표할지, 정권교체라...

  • HERI
  • 2017.05.08
  • 조회수 2507

[유레카] 장미혁명 / 이창곤

지난해 5월 한 장미축제에 참여한 시민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케어프리원더, 오렌지캔들, 레드비즈, 골든보더, 핑크스커트, 콘체르티노…. 품종은 달라도 모두 장미의 이름이다. 서울 올...

  • admin
  • 2017.05.04
  • 조회수 2268

[이봉현의 책갈피경제] 개념설계가 필요한 한국사회

이봉현의 책갈피 경제 가 보지 않은 길 송호근 지음/나남(2017)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제너럴모터스(GM)를 제치고 시가총액 1위 자동차 회사가 됐다. 상장된 지 7년 된 회사의 미래 가치가 100년 넘은 ‘거목’보다 크다고 ...

  • HERI
  • 2017.04.21
  • 조회수 1819

[유레카] 주류 / 이창곤

주류(主流, main stream)는 통상 대세, 다수, 지배집단, 강력한 파벌, 실세 등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매우 권력적인 개념이다. 이 말이 강한 정치·사회적 의미를 띤 때는 2001년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 유력 대선주자였던 이회...

  • admin
  • 2017.04.10
  • 조회수 2213

한겨레 프리즘] 어쩌다 보수후보 안철수 / 한귀영

대선을 한달 앞두고 탄핵이 낳은 보수 붕괴 지형에서 새로운 보수-진보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4월 7~8일 <한겨레> 조사에서는 진보 후보 문재인, 보수 후보 안철수 구도가 가시화되었다. 세대별 차이도 뚜렷해서 40대 이하는 ...

  • admin
  • 2017.04.10
  • 조회수 2350

숨겨진 일자리

[유레카] 박근혜씨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뒤로 대선 후보들 간 공약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각 후보는 장밋빛 일자리 창출 방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왠지 희떠운 소리로 들린다. 안팎 경제 상황으로 봐서는 고용 ...

  • HERI
  • 2017.03.16
  • 조회수 2542

대선의 출발, 4·16 그날

[한겨레 프리즘] 대한민국 여기저기에서처럼, 그날 밤 우리 동네에서도 뜨거운 파티가 열렸다. 겨우내 촛불 드느라 수고한 서로를 위로하고 축하했다. 삼년 전 그날의 참사가 없었다면 서로 비껴갈 인연들이었다. 세월호 이후의 ...

  • HERI
  • 2017.03.13
  • 조회수 2316

재벌 경영권은 챙기고 소비자 권익은 외면하는 공정위

[Weconomy | 주수원의 협동조합 A to Z] 국회가 마련한 생협 공제사업 허용 법률, 6년여 만에 공정위는 ‘바꾸자!’ 생협 매장에서 물건을 고르는 생협 회원.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마침...

  • admin
  • 2017.02.24
  • 조회수 2787

[유레카] 위대병 증후군

우리 속담에 ‘사주에 없는 관(冠)을 쓰면 이마가 벗어진다’는 말이 있다. 타고난 자질이나 능력이 없는데 벼슬을 맡으면 머리칼이 빠진다는 것으로, 제 분수에 넘치는 일을 맡으면 도리어 괴롭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속담에...

  • HERI
  • 2017.02.09
  • 조회수 2361

[한겨레 프리즘] 진짜 ‘이적행위’ / 김공회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러시아 혁명>이라는 절판된 책을 대중이 읽기 쉽게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유로 사람이 잡혀갔다. 러시아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 벽두에 벌어...

  • admin
  • 2017.01.09
  • 조회수 2696

[토요판] 법인세 논쟁, ‘자원배분 왜곡’ 바로잡는 차원에서 봐야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토요판] 뉴스분석 왜? 법인세 실효세율 논란 자료사진" alt="세액감면이 대기업에 집중되다 보니, 일부 대기업의 실효세율이 그보다 작은 규모의 기업에 비해 낮아지는 기현상이...

  • admin
  • 2017.01.09
  • 조회수 2725

[토요판] 특집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2017년이 기억해야 할 교훈들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토요판] 특집 2017년과 세계 ▶ 2017년. 누구는 민주화운동 30년으로, 또 누구는 박정희 100년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시야를 확장하면, 지구촌의 2017년은 다른 얼굴로 다...

  • admin
  • 2017.01.05
  • 조회수 2882

【HERI 쟁점진단】사회보험도 없는 비정규직 499만, 그들은 누구인가?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HERI 쟁점진단】 비정규직의 57.8%, 건강보험-국민연금-고용보험 ‘직장가입’ 모두 제외돼 통계청 경제활동인구부가조사(2005 vs. 2015) 분석 결과 비정규직 문제인가, 영세사업장...

  • admin
  • 2016.12.21
  • 조회수 2570

【HERI 쟁점진단】노동자 임금상승률은 떨어지고 불평등은 커져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HERI 쟁점진단】 ILO ‘세계임금보고서’ 발간…기업간·기업 내부 불평등 심화 기업간 불평등과 기업내 불평등 현상 동시에 나타나…최저임금 인상, 초기업 단체교섭 촉진 등 ...

  • admin
  • 2016.12.21
  • 조회수 2585

경제 위기에 서민이 ‘호구’되는 이유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긴축 마크 블라이스 지음, 이유영 옮김/부키·2만2000원 경제학자에겐 두 가지 편견이 따른다. 하나는 경제학자라면 경제에 대해 무조건 잘 알리라는 것이다. 이웃에 경제학자라도 ...

  • admin
  • 2016.12.21
  • 조회수 1950

[한겨레 프리즘] 혐오와 물신주의 / 김공회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를 정치와 경제라는 양대 영역으로 구분하는 것은 근대사상사의 오랜 전통이다. 이 둘은 서로 꽤 명확히 ...

  • admin
  • 2016.12.15
  • 조회수 1993

‘뜨는 동네’ 서촌 지키는 지역공동체 | 청년이 바라본 주민자치 ⑨ 종로구 주민네트워크

‘뜨는 동네’ 서촌 지키는 지역공동체청년이 바라본 주민자치 ⑨ 종로구 주민네트워크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지난 10월 통인시장 고객센터에서 정홍우 통인커뮤니티 대표가 동국대생들에게 ‘통인시장 어제...

  • admin
  • 2016.12.08
  • 조회수 2259

[한겨레 프리즘] 세계화의 종말? / 김공회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누가 당선되든 예정된 수순이긴 했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로의 회귀 말이다. 그래도 오바마 정부가 한참 공들여 키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 admin
  • 2016.11.15
  • 조회수 17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