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2016년 캐나다 캘거리에 사는 당시 13살 소년 대런 랜들이 부모를 상대로 합의금 수억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부모가 자기 얼굴에 초콜릿을 묻히고 사진을 찍는 등 아기 시절 ‘굴욕 사진’들을 페이스북에 10년 넘게 공유해왔다며 심각한 이미지 손상을 당했다는 게 이유다. 소년은 “사진을 과도하게 공유하는 부모로부터 아기들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소송을 냈다”고 언론에 밝혔다.


독일 아동법은 신생아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인간으로서 권리를 갖는다고 본다. 부모가 동의하고 결정한 일이어도 나중에 아이가 커서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끼면 아동 인격권 침해로 여긴다. 프랑스에선 동의 없이 누군가의 사진을 배포하거나 소셜미디어에 올리면 최대 4만5000유로(약 5900만원)의 벌금과 1년 징역형에 처하는데 부모가 자녀의 유아 시절 사진을 올리는 것도 적용된다. 유니세프 노르웨이위원회는 디지털 환경에서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해 부모들의 자녀 사진 공유를 중단하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소셜미디어에는 아기의 천진난만함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을 공유하는 ‘셰어런팅’(share+parenting)이 넘친다. 프로필이 자녀 사진인 경우도 많다. 자녀 동의를 받지 않은 것도 문제이지만, 사진이 도용돼 범죄에 악용되는 경우도 있다. 정부는 아동·청소년 시기에 온라인상 개인정보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디지털 잊힐 권리’를 도입하기로 했다. 자신이 올린 경우는 물론 부모나 제3자가 올린 개인정보 관련 게시물도 대상이다.

프라이버시권은 자신의 이름, 이미지, 평판을 정보 주체가 스스로 관리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리다. 애초 프라이버시는 상류층의 특권이었다. 프랑스혁명 이전엔 왕족이나 귀족 등은 법정에서 피고인 경우에도 존중받았고, 수감되거나 파산해도 ‘존엄한 이미지’를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여겨졌다. 상류층의 특권이던 프라이버시 보호가 시민혁명 이후 일반 시민으로 확대되었는데 근래엔 청소년과 아동으로 넓혀지고 있다. 어려움은 정보가 한번 공개되면 거의 지워지지 않는 인터넷에서는 정보 주체의 존엄을 유지하기 더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아기 사진이 집 안 앨범에 보관돼 있던 시기와 소셜미디어에서의 공유는 다르다는 것을 부모들도 의식해야 한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507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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