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임신중지 기소때 디지털증거 활용관행
위치 정보, 문자메시지, 검색 기록 등
“공권력의 디지털정보 요청을
빅테크가 판단·결정할 수 있는가”
빅테크의 민주적 정당성 문제 부각
지난 6월 25일 시민들이 미국 연방대법원 청사 앞에서 전날 ‘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에 항의하고 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지난 6월 25일 시민들이 미국 연방대법원 청사 앞에서 전날 ‘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에 항의하고 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보장해온 ‘로 대 웨이드’ 판례를 파기한 이후 21세기 빅브라더로 부상한 빅테크의 정보 독점과 감시 통제를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개인의 사생활을 포함해 민감한 내용이 담겨있는 디지털 정보들이 임신중지 행위를 수사하고 처벌하는 데 활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공권력이 관련 정보를 요구할 경우 빅테크들이 정보를 제공해 불법 임신중지 행위 기소를 도울지도 주목된다.

■ 디지털 증거


디지털 증거는 미국에서 범죄 수사의 방식을 새롭게 바꾸고 있으며 임신중지 관련 수사 및 처벌에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60명 이상이 법규를 위반한 낙태를 하거나 도운 혐의로 조사를 받거나 체포·기소되었는데, 임신중지 관련 검색 기록과 문자메시지 등이 증거로 활용되었다. 2018년 미시시피 자택에서 사산한 후 2급 살인죄로 기소된 래티스 피셔는 낙태를 위한 약의 구매 관련 인터넷 검색 결과가 결정적 단서가 되었다. 2015년 인디애나주에서는 프루비 파텔이라는 여성이 임신 30주 때 임신 중절을 한 후 기소되어 처음에는 유죄를 선고받았다. 관련 약 복용에 대해 친구와 문자메시지로 상의한 것이 결정적 증거로 제시되었다.


포드재단 시민권 변호사 신시아 콘티 쿡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문자메시지, 사이트 방문, 구글 검색은 검찰이 원하는 증거 형태”라며 디지털 흔적을 남길 경우 법적 조치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구글의 위치 정보 서비스다. 구글은 지도와 위치정보서비스(GPS)를 이용해 지도 타임라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러한 디지털 흔적은 수사에서 처벌 근거로 활용됐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구글은 2021년 상반기 경찰로부터 5만9천여 건의 정보 제공을 요청받았는데 이는 2016년 상반기의 네 배에 해당한다. 실제 정보를 제공한 비율도 82%에 이른다.

위치정보외에도 구글은 검색정보 수집을 통해, 페이스북은 ‘좋아요’ 기록으로, 아마존은 구매내역 분석을 통해 이용자들의 선호와 특성 등 신상 정보를 수집해왔다. 애플도 아이폰 위치 추적 기능과 앱 설치 기록을 통해 개인정보를 파악하고 있다.

미국 정치권도 임신중지를 원하는 이용자 데이터를 무단으로 수집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 민주당 정치인들은 연방거래위원회(FTC)에 서한을 보내 구글이나 애플의 개인 데이터의 무단 수집과 판매, 온라인 광고가 낙태 시도자들을 기소하는 데 남용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연방거래위원회가 나서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임신중지가 불법인 주에서 공권력이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은 게 ‘지오펜스 영장’(geofence warrants)이다. 낙태 수술을 하려는 사람에 대한 정보나 특정 의료기관 인근에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한 위치정보를 구하려 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범죄 발생 지역과 시간대를 특정한 뒤 그곳에 있던 모든 이용자의 위치정보를 제출하도록 하는 영장이다. 최근 미국에선 이 영장 사용이 부쩍 늘었다고 언론이 보도했다.

■ 빅테크와 민주적 정당성

빅테크기업이 소유한 데이터가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데이터 수집 절차를 재검토하는 등 이용자 보호 조처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기업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이에 구글은 인공 임신중절 수술 의료기관을 포함해 상담센터, 가정폭력 보호소 등 이용자들이 민감해할 수 있는 기관의 위치 정보를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정보인권 단체 전자프런티어재단(EFF)등 시민단체들은 디지털 플랫폼 기업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더 강력한 조처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용자가 익명으로 서비스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고, 행동 추적을 중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서비스 이용 시 정보가 필요한 경우엔 이용자의 거부권 등 선택권한을 부여해야 하며, 민감정보는 자주 삭제할 것을 권고했다.

한편, 구글 등의 선제적 조처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은 빅테크의 거대한 권한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제기한다. 김현수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권력이 요청할 때 어떤 정보를 제공하고 거부할지를 빅테크가 판단하고 있다는 점, 즉 빅테크가 룰세팅을 하고 있다는 점을 짚어야 한다. 이를테면 임신중지 사안은 거센 비판 여론 때문에 위치정보 기록을 삭제하기로 했지만, 마약 수사나 다른 수사는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빅테크가 이러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정보 독점과 감시, 통제 권력으로 21세기 디지털 빅브라더로 불리는 빅테크의 민주적 정당성과 책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한귀영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연구위원 hgy4215@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 https://www.hani.co.kr/arti/science/future/1050402.html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아침햇발] 한가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 이봉현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이 촬영한 용골자리 성운. 지구에서 7600광년 떨어진 이 성운은 태양보다 몇배 더 큰 무거운 별들의 고향으로, 우리은하에서 가장 크고 밝은 성운 가운데 하나다. 미 항공우주국 제공 이봉현 | 경제사회연구원...

  • HERI
  • 2022.09.13
  • 조회수 1121

‘심심한 사과’ 문해력 논쟁과 ‘헤어질 결심’ 서래에게 배울 것 [유레카]

청소로봇 룸바, 지뢰탐지 로봇 팩봇 등을 개발한 미국의 로봇공학자 로드니 브룩스는 최근 창고로봇 카터를 선보였다. 작업자의 동작을 판독해 사람을 효과적으로 보조하는 이 로봇에 대해 외신들은 ‘사람의 몸짓언어를 해독하는...

  • admin
  • 2022.08.24
  • 조회수 1164

[아침햇발] 유럽은 올겨울이 두렵다는데, 우리는? / 이봉현

천연가스 소비의 55%를 러시아산에 의존했던 독일은 러시아의 가스 공급 축소 등으로 올겨울 가스 소비를 20% 줄여야 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가스 공급망의 핵심을 이루는 ‘오픈 그리드 유럽’의 가스압축 시...

  • HERI
  • 2022.08.22
  • 조회수 1252

[유레카] 제트세대의 문해력 ‘수평적 읽기’ / 구본권

페이스북은 코로나19와 관련된 허위정보 게시물을 삭제하던 정책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페이스북은 초기엔 “표현 자유”를 내걸고 백신음모론 등 허위정보를 방치했는데 비판이 높아지자 방침을 바꿔 지난 2년간 2500만...

  • HERI
  • 2022.08.22
  • 조회수 832

[아침햇발] 기업이 ‘반칙’하기 좋은 나라 / 곽정수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취임 100일을 맞아 연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소회와 국정운영 구상을 밝히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곽정수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법과 윤리를 위반한 임직원...

  • HERI
  • 2022.08.19
  • 조회수 814

“일주일내 범죄 발생 예측 정확도 90%” AI 도입 득될까?

시카고 구역별 범죄 발생확률 AI, 높은 정확도 예측 불구 유색인종, 빈곤층 과잉 대표 채용시 민감정보 배제해도 성·인종 추정가능 대리지표로 ‘비의도적 차별’ 만들어내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데이터 차별 만연한 사회현실 반...

  • HERI
  • 2022.08.09
  • 조회수 1284

5살 취학과 아이스하키 선수들의 생일 격차 [유레카]

캐나다에서 아이스하키는 인기 높은 국민스포츠인데, 청소년 명문구단 선수들의 생일을 분석했더니 이색적인 통계가 나왔다. 전체 선수의 40%가 1~3월에 태어났고, 상반기 출생 선수를 합치면 전체의 70%에 이르렀다. 11~12월에 ...

  • HERI
  • 2022.08.03
  • 조회수 1226

[아침햇발] ‘아마추어’ 대통령 / 곽정수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특별 사면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제공 곽정수 | ...

  • HERI
  • 2022.07.26
  • 조회수 1299

[아침햇발] 정책 상상력이 아쉬운 ‘올드보이’ 정부 / 이봉현

정부는 기름값이 급등하자 유류세를 법적 한도인 37%까지 인하했다.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대흥동의 한 주유소에서 내 건 유가 알림판에 휘발유가격이 2169원 표시되어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봉현 | 경제사...

  • HERI
  • 2022.07.19
  • 조회수 1019

[유레카] 카톡에 올린 자녀 사진의 프라이버시권

2016년 캐나다 캘거리에 사는 당시 13살 소년 대런 랜들이 부모를 상대로 합의금 수억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부모가 자기 얼굴에 초콜릿을 묻히고 사진을 찍는 등 아기 시절 ‘굴욕 사진’들을 페이스북에 10년 넘게 공...

  • HERI
  • 2022.07.13
  • 조회수 1263

당신의 임신 중지, 빅테크 ‘디지털 흔적’으로 남아 있다

임신중지 기소때 디지털증거 활용관행 위치 정보, 문자메시지, 검색 기록 등 “공권력의 디지털정보 요청을 빅테크가 판단·결정할 수 있는가” 빅테크의 민주적 정당성 문제 부각 지난 6월 25일 시민들이 미국 연방대법원 청사 ...

  • HERI
  • 2022.07.13
  • 조회수 1159

[아침햇발] 대통령이 ‘바이네르 구두’를 살 때 못 들은 이야기 / 곽정수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첫 주말인 지난 5월14일 부인 김건희 여사와 서울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바이네르 매장을 찾아 제품들을 둘러보고 있다. 바이네르 제공 곽정수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김원길(61) 바이네르 대표...

  • HERI
  • 2022.06.27
  • 조회수 1497

[아침햇발] ESG에 부는 역풍 / 이봉현

지난 2년간 한국 기업에도 이에스지 ‘열풍’이 불어 이에스지 위원회를 꾸리고 경영의 지표로 삼는 기업이 크게 늘었다. 한국거래소 누리집 갈무리 이봉현ㅣ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이에...

  • HERI
  • 2022.06.22
  • 조회수 1586

[유레카]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한국 웹환경 / 구본권

웹브라우저의 대명사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출시 27년 만에 사라졌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예고해온 대로 지난 15일 익스플로러에 대한 지원을 공식 종료했다. 이날 이후 익스플로러를 실행하면 엠에스의 새 브라우저인 ‘에지...

  • HERI
  • 2022.06.20
  • 조회수 1336

[아침햇발] ‘신기업가정신’ 선언이 쇼가 아니라면 / 곽정수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주주에 대한 봉사와 이윤 극대화라는 가치를 넘어 종업원과 고객, 납품업체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강화하겠다.” 2019년 8월19일 미국 200대 대기업 협의체인 비즈니...

  • HERI
  • 2022.05.31
  • 조회수 1455

[아침햇발] ‘한국이 말한다’를 시작할 때

2017년부터 해마다 열리는 ‘독일이 말한다’에서 생각이 크게 다른 두 사람이 짝을 이뤄 대화를 하고 있다. <디 차이트> 온라인 이봉현 | 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소셜미디어를 넘겨보다 몇번 불편하면 ‘친구 끊기’를 ...

  • HERI
  • 2022.05.20
  • 조회수 1493

[유레카] ‘반지성주의’와 ‘투명성’ / 구본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사에서 ‘반지성주의’를 화두로 밝혔다. 윤 대통령은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 HERI
  • 2022.05.16
  • 조회수 1649

[유레카] ‘고발당한’ 노사협의회 / 곽정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지난 3일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면서 51번째 과제로 노사협력을 제시했다. 또 이를 위해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의 대표성·독립성 강화를 통해 참...

  • HERI
  • 2022.05.08
  • 조회수 1726

[유레카] 넷플릭스 신화의 추락과 뉴노멀 / 구본권

코로나19로 인한 일부 현상은 팬데믹이 지나가도 일상으로 자리잡을 ‘새로운 표준’(뉴노멀)이 될 것이라고 예측됐다. 비대면 회의와 배달 문화, 영화관 대신 온라인 동영상 감상 등이 대표적 사례인데 팬데믹 탈출 시기에 검증...

  • HERI
  • 2022.04.26
  • 조회수 1516

[유레카] 박용만, 윤석열과 정치 /곽정수

박용만 전 대한상의 회장이 최근 윤석열 정부의 첫 총리 후보설 , 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설에 대해 “정치할 생각이 없다”며 확실히 선을 그었다. 1년 전 박 전 회장이 상의 회장을 그만두기 직전에 인터뷰한 적이 있다. ...

  • HERI
  • 2022.04.25
  • 조회수 14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