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내가 사는 아파트 맞은편에 꽤 큰 행복주택단지가 들어섰다. 요란하지는 않았지만 불평의 목소리가 아파트 카페에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했다. 집값 걱정임은 물론이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하느냐는 속 시원한 비판도 나왔다. 다행히 큰 분란은 없었다.

얼마 전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주거복지 로드맵의 핵심은 공공성 강화다. 사회적 취약계층이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집 100만호를 공급한다는 계획인데, 그중 65만호가 공공임대주택이다. 쉽지 않은 계획이다. 재원도 문제지만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차질을 빚기 일쑤다. 서울 같은 대도시, 땅값 비싼 곳일수록 심각해서 목동과 구의의 유수지 행복주택 건설 계획은 결국 좌초했다. 대학 기숙사, 역세권 2030청년주택 등의 임대주택 사업들도 난항이다. 집값과 임대료 하락 등 재산권 침해, 지역의 우범지대화가 반발의 명분들이다.

이런 우려의 허구성은 이미 실증되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 도시연구원이 2006년 이후 서울에 공급된 임대주택 주변 아파트의 실거래가(2015년 7월~2016년 6월)를 분석했더니 임대주택 반경 500m 이내 주택가격은 임대주택 건설 이후 평균 7.3% 상승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급의 임대아파트도 비슷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또 있다.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실은 꽤 긍정적이라는 점이다. 2016년 1월 에스에이치공사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공공임대주택의 필요성에 대해 서울시민 95%가 긍정이었다. 반대는 4%에 그쳤다. 공공임대주택의 이미지도 긍정 54.6%로 부정 20.2%보다 월등히 높았다.

요약해 보자. 공공임대주택은 좋고 필요하지만, 내 주변은 싫다는 말이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끼리끼리 살고 싶다는 분리의 욕망에 주목하고 싶다. 도시에서 계층/계급 간 주거를 분리할 것인가 섞을 것인가라는 고민은 근대 이후 도시화의 산물이다. 중세 봉건시대에 귀족과 농노가 성안과 밖에 분리되어 살았다면, 근대 도시의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는 도시 안에 같이 살게 된다. 끼리끼리 안전하게 살고자 하는 부르주아의 기획이 현대의 도시구조에 숨어 있다. 런던의 부르주아는 프롤레타리아가 사는 위험한 도심을 피해 쾌적한 교외로 나왔다. 도심의 문화생활을 포기할 수 없었던 파리의 부르주아는 프롤레타리아를 한쪽으로 몰아넣고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자 프롤레타리아 거주지역은 혁명의 온상이 되었다. 나폴레옹 3세 시절이던 19세기 중반, 오스만 남작이 주도한 파리 대개조의 핵심은 봉기의 효율적 진압을 위한 가로망의 구축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도 분리 욕망이 노골화되었다. 타워팰리스로 상징되는 고급 주택지들은 한결같이 깐깐한 검문검색으로 내부와 외부를 철저히 분리한다. 안전하고 쾌적한 끼리끼리 공동체를 제공한다는 이 전략은 중산층 아파트들이 좇는 모범이 되었다.

프롤레타리아의 위협을 막기 위해 시도된 파리의 도시 대개조는 1871년 파리코뮌이라는 거대한 혁명 앞에서 결국 수포가 되었다. 분리와 배제가 거세질수록 프롤레타리아의 분노는 더 커지고, 도시 전체가 전복될 수도 있음을 역사는 증명한다.

파리 아비타(Paris Habitat)는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공기업이다. 파리는 인구 1500명이 넘는 자치구에 일정 비율 이상의 공공임대주택이 들어서도록 규정하고 있다. 아비타의 100년 넘는 역사에는 분리해서 더 큰 화를 부를 바에야 불편해도 섞여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이 있다. 분리의 욕망이 중산층의 표상인 양 여겨지는 우리 사회가 곱씹어야 할 교훈이다.


원문보기: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한겨레 프리즘] 을과 을의 공정성 전쟁 / 한귀영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근년 한국 사회를 달군 가장 뜨거운 열쇳말 중 하나는 공정성이다. 정유라의 이대 부정입학에 대한 분노가 나비효과를 일으켜 문재인 정부 출범을 이끈 동력 중 하나가 되었다. 역설...

  • HERI
  • 2018.11.20
  • 조회수 2283

[토요판 커버스토리] 피케티 “불평등에 눈감은 정치, 그 블랙박스 열고 싶어”

[토요판] 커버스토리 ‘불평등 연구자’ 토마 피케티 자본>으로 파장을 불러일으킨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가 4년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그가 새로 던진 화두는 ‘불평등의 정치’였다. 지난 30일 <한겨레>는 그를...

  • HERI
  • 2018.11.05
  • 조회수 2190

[유레카] 불평등의 심리학 / 이창곤

왜 적잖은 사람들이 끼니를 채우고도 먹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가? 미국의 정신의학자 로저 굴드는 인간에게는 몸속 위장이 아닌 ‘유령위장’이 따로 있다고 본다. 그는 비만 환자들을 접하면서, 식탐은 배고픔만이 아니라 무기...

  • admin
  • 2018.11.05
  • 조회수 2478

[한겨레 프리즘] 평범한 이들의 투기 욕망 / 한귀영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내가 사는 지역에 ‘게이티드 커뮤니티’ 분양 광고가 떴다. ‘대문을 잠근 동네’라는 뜻일 텐데, 첨단 경비시스템을 통해서 주민을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주거형태라고 한다. ‘그들만...

  • HERI
  • 2018.10.29
  • 조회수 1996

‘암수살인’과 잊혀질 권리

[구본권의 스마트 돋보기] 지난주 개봉한 영화 <암수살인>은 개봉을 앞두고 ‘잊혀질 권리’와 관련한 법적 다툼이 진행되어 화제였다. 범죄가 발생했지만 신고와 주검 등이 없어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용의자 신원파악도 되지 않...

  • admin
  • 2018.10.18
  • 조회수 2163

[유레카] 커뮤니티 케어 / 이창곤

커뮤니티케어의 목표 및 기대효과. 자료: 사회보장위원회 (* 누르면 확대됩니다.) 가족들이 귀가하면 꽁무니를 쫓아다니면서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던 당신이었다. 하루는 피를 토해 온몸을 적셔 병원으로 이송된 뒤로 말을 잃...

  • HERI
  • 2018.10.16
  • 조회수 2336

[한겨레 프리즘] 지지율, 급한 불은 껐지만 / 한귀영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평양 정상회담을 계기로 61%까지 반등했다. 북-미 정상회담과 지방선거 압승 직후인 6월 둘째 주 갤럽 조사에서 79%까지 치솟았던 지...

  • HERI
  • 2018.10.10
  • 조회수 2208

[유레카] ‘포용국가’가 현실이 되려면 / 이창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8 포용국가전략회의에서 김연명 국정과제지원단장의 발표를 들은 뒤 손뼉을 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윌리엄 베버리지가 ‘복지국가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

  • HERI
  • 2018.09.20
  • 조회수 2448

[한겨레 프리즘] 연금을 둘러싼 세대전쟁 / 한귀영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국민연금이 세대갈등의 전장이 되고 있다. 불확실한 노후 대비를 위한 핵심적인 사회안전망으로서 세대간 연대에 기초하는 제도가 세대갈등 프레임으로 위협받고 있다. 온갖 비판에도 불...

  • HERI
  • 2018.08.27
  • 조회수 2459

[유레카] 참여정부 기시감 / 이창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 의료기기 규제혁신 현장에서 소아당뇨를 앓고 있는 정소명 학생에게 야구공을 선물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기시감. 요즘 세간의 모임에서 자주 듣는 ...

  • admin
  • 2018.07.30
  • 조회수 2641

[한겨레 프리즘] 지지율 하락과 호들갑 / 한귀영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문재인 대통령 지지도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주 갤럽 조사에서는 62%로 나타나 지방선거 직후에 비해 17%포인트 떨어졌다. 하락의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대선에서...

  • admin
  • 2018.07.30
  • 조회수 2246

[유레카] 재정개혁안 유감 / 이창곤

강병구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오른쪽 둘)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정개혁특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두려움은 직면하면 그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

  • HERI
  • 2018.07.05
  • 조회수 2742

[한겨레 프리즘] 진보 우위 시대의 도래? / 한귀영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6·13 지방선거로 유권자들은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정치세력을 사실상 퇴출시켰다. 이제 진보 우위의 시대가 열린 것일까? 선거 결과를 보면 진보 우위는 쉽사리 변하지 않을 불...

  • HERI
  • 2018.07.03
  • 조회수 2554

경제위기 10년, 자본주의 쿠오바디스?

[책과 생각] 이봉현의 책갈피 경제 메뚜기와 꿀벌-약탈과 창조, 자본주의의 두 얼굴 제프 멀건 지음, 김승진 옮김/세종서적(2018) 2008년 10월 리먼브라더스의 붕괴로 본격화한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이 되어간다. 도산과 실직...

  • HERI
  • 2018.06.22
  • 조회수 2569

[유레카] 가계소득지표 논란의 핵심 논점 / 이창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29일 청와대 여민1관 소회의실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경제 관련 부처 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가계소득동향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제공 시선이 온통 북-미 정상회담에 쏠려 있지만...

  • HERI
  • 2018.06.19
  • 조회수 2437

[한겨레 프리즘] 청년, 왜 평화에 냉담한가 / 한귀영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6·13 지방선거에서 이슈가 실종되었다고들 한다. 한반도 평화 이슈의 영향력이 워낙 막강한 탓이다. 대통령 지지도가 70%를, 여당 지지도가 50%를 넘다보니 야당의 단골 이슈인 정부여당...

  • HERI
  • 2018.06.05
  • 조회수 2564

[유레카] 실시간 인기검색어 / 구본권

한성숙 네이버 대표가 지난 5월9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3분기(7~9월)부터 모바일 첫 화면에서 뉴스와 실시간 검색어를 빼는 것을 포함한 뉴스 서비스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네이버 제공 네이버가 3분기부터 모바일 ...

  • HERI
  • 2018.06.05
  • 조회수 2493

[책과 생각] 피케티가 말하는 불평등의 정치

[책과 생각] 이봉현의 책갈피 경제 애프터 피케티 토마 피케티 외 25인 지음, 유엔제이 옮김/율리시즈(2017) 정치경제학자 토마 피케티(파리경제대 교수)는 18세기부터 현재까지, 20여개국의 조세 자료로 ‘부익부’의 불평등 구조를...

  • HERI
  • 2018.05.29
  • 조회수 2935

[유레카]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 이창곤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설계자인 올리 캉가스는 최근 서울을 찾아 “기본소득 실험 결과는 2020년에야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캉가스 제공 핀란드가 2017년 1월부터 시행해온 기본소득 실험을 2019년 1월로 끝낸다. 이 사실을 ...

  • HERI
  • 2018.05.23
  • 조회수 2664

[한겨레 프리즘] 시간을 거스르는 지지율 / 한귀영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취임 1주년을 맞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83%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갤럽의 지난주 발표다. 전임 대통령 모두 취임 1주년에는 지지율 하락으로 국정 동력이 떨어진 것과 대비...

  • HERI
  • 2018.05.08
  • 조회수 26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