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등록: 2010.04.05 수정: 2014.10.21


스탠포드 비즈니스스쿨제프리 페퍼 교수가 쓴 “Human Equation”, 즉 “사람방정식”이라는 책이 있다.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와동기부여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고는 높은 성과를 낼 수 없다는 내용이다.


요즘이야 이런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창 신기술 개발과 그에 따른 주가폭등이 이어지던 거품시기에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많은 경영자들이, 주가만계속 뛰어준다면 스톡옵션을 마음대로 찍어 좋은 사람을 얼마든지 데려올 수 있다고 여기던 시절이었다. 그때 경영 전략의 방정식 안에 돈과 기술은 있어도 사람은 없었다.


결국 많은기업이 사람 변수를 빼놓은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한 때 개인용컴퓨터의 원조 자리를 차지했다가 퇴출 위기에까지 몰렸던, 그리고아이팟이라는 새로운 제품을 들고 시장으로 돌아온 애플도 그 대가를 치른 기업이었다. 애플컴퓨터는 MBA수업토론교재에 등장했던 가장 인상 깊은 사례 중 하나였다.


꿈을 생산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


연구실에는 해적기가 휘날렸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얼굴엔 자랑스러움이 넘쳤다. 그 곳은 기업이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사람들은 인류 진보를 위해 기꺼이 밤을 새웠고, 회사는 번창해갔다.


그러나 첫 번째 대규모 해고가 일어난 이후, 상황은 급반전됐다. 회사의 꿈이던 개발자들은 비용으로 전락했다. 사람들은 회사를 떠났고, 회사 매출은 점점 쪼그라들었다. 이 비극이 일어난 곳은 바로 애플컴퓨터였다.


애플컴퓨터는 ‘꿈’을 생산하기 위해 설립됐다.1976년 스티븐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는 창고에서 ‘개인용 컴퓨터’라는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 냈다. 컴퓨터라고 하면방 하나를 가득 채우는 커다란 기계를 연상하게 되던 때였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던 영역이었다.


1984년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 까지만 해도 애플은 최전선에서 이 꿈을 만들어 갔다. 당시 <뉴욕타임스>는“어느 누구도 매킨토시 운영체제, 윈도스, 유닉스를 써보고는 ‘윈도스와 유닉스가 훨씬 편하네’라고 얘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매킨토시와 함께, 레이저 프린터와 어도비가 만들어 깔아 둔 소프트웨어는처음으로 ‘개인 출판’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 모든 게 ‘세상에서 처음, 세상에서최고’였다.


혁신과 창의성은 독특한 애플의 문화에서나왔다. 매킨토시 디자인 연구팀은 실제로 별도 건물에서 해적기를 걸어 놓고 일했다고 한다. 애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세상을바꾸는 일을 돕기 위해서’ 일한다고 대답했다. 물론 이런 특징은 가장 처음의, 가장 좋은, 가장 사용자 친화적인 컴퓨터를 만들어개인용 컴퓨터시대를 열겠다는 애플의 전략과도 맞아떨어졌다. 가장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람들이 필요하던 애플은,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좋아하는문화를 갖고 있던 것이다.


일하는 사람들은 피고용인이라기보다는 공동창업자처럼 움직였다. 금요일 아침마다 회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빵과 크림치즈를 준비해 놓고 아침식사겸 파티를 벌였다.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파티장의 웃음소리 속에 섞여서 오갔다. 사람들에게 애플은 일을 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얻는 장소이기도 했다.

 

 

아침 9시, 모두 책상에서 대기하라”


그러나 애플도 시간은 막을 수 없었다. 성장기업들이 언젠가 맞닥뜨리는 문제를 피해갈 수 없었다. 독주하던시장에 경쟁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제 단순한 창의성보다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매출이 압박을 받으면서 이익을 내기 어려워졌다. 고민이 시작됐다. 그 결과 1985년 애플은 역사상 최초로 거대한 전략적 선택을 하게된다. 비용절감과 구조조정이다.


그 해 애플 CEO이던 존 스컬리는 20%의 노동력을 해고했다. 매출 실적이 목표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수익성을 되찾으려면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애플은 전투를 벌이듯 일을 치뤄냈다. 대량해고가 일어나던 날 아침 모든 전 직원은 아침 9시 정각에 책상에대기하도록 명령받았다. 해고 대상자들은 그 시간부터 상사로부터 전화를 받고 불려갔다. 상사로부터 해고통지서와 퇴직금을 받아든 해고자들은 돌아올 때 경호원들과 함께 와서 책상을 정리해 개인 물품을챙겨야 했다. 회사 재산에 손실을 입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오전 11시, 모든 해고자들이 사무실을 떠난 뒤 남은 사람들은대형 사무실로 불려갔다. 거기서 조직 개편안이 발표되고 모두들 새로운 자리를 할당받았다. 구조조정은 그렇게 번개같이 일어났다.


물론 보안이 완벽할 수는 없었다. 구조조정 소문이 몇 달 전부터 사무실을 배회했다. 소문이 나기 시작할때부터 일은 거의 진척되지 않았다. 퇴직자들이 그다지 큰 금액을 챙겨 나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가돌았다. 매우 훌륭한 개발자들은 일찌감치 소문을 듣고는 자진해서 퇴직하고는 다른 회사로 옮겨가 버렸다. 구조조정이 단행된 날로부터 몇 달 동안도 후유증은 이어졌다.


애플은 첫 번째 대량해고 뒤 ‘신 고용 계약’이라는 새로운 인사 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한다. 우선 팀보다는 개인을 우선시하는 문화를 적극 들여왔다. 대량해고가일어났던 그 해 애플은 고용 안정성이나 직무 연속성을 보장하지 않는 대신 100% 성과 위주 보상을해주는 새로운 고용 제도를 도입했다.


신 고용 계약에서 애플은 개발자들을 외부컨설턴트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부서 개념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주는 대신, 어려운 프로젝트를 주고 프로젝트가 달성되면여기에 따라 보상을 해주기 시작했다. 물론 프로젝트를 할당받지 못하면 보상도 없으니 회사에서 나가야 할 처지다. 그리고모든 사람을 A B C 세 등급으로 평가해 A등급만을 회사에잡아두고 C등급은 장기적으로 자연스럽게 회사를 나가도록 유도하기 시작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금요일 아침의 파티도 없애 버렸다.

 

 

사람을 자르자 꿈도 잘려나가다


당시 환경에서 비용 절감과 구조조정은 많은기업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이런 방법으로 생산성을 높이기도 했다. 개인 성과 중심 직무평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애플에서의 결과는달랐다.


프로젝트 중심의 업무 할당을 시작하자, 새로 들어온 의욕 넘치는 개발자들은 어려운프로젝트를 통해 일을 열심히 배우고는 끝나자 마자 좀 더 안정된다른 회사에 좋은 조건을 약속받고 옮겨 버렸다. 오랫 동안 애플에 머물러 있던 개발자들은 ‘잘리지 않기 위해’ 일부러 프로젝트기간을 늘리고 일을 더디게 진척시켰다. 해고 이전의 애플에서 사람들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일했지만, 해고이후 애플에서 사람들은 ‘잘리지 않기 위해’ 일했다.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문화가 좋아 밤샘작업을 하던 훌륭한 개발자들은 그런문화를 찾아 다른 회사로 옮겨갔다.


매출은 더 줄었고 대량해고는 이어졌다. 애플은 1991년 10%의인력을 더 감축해야 했다. 1993년에는 마이클 스핀들러가 CEO자리를이어받았고, 14%인 2500명의 인력을 감축하면서 비용절감 드라이브를 이어갔다. 1997년에는 남은 사람의 거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초대형 인력감축이 벌어졌다. 이어지는 해고 속에 좋은개발자들과 매출실적도 줄어든 것은 물론이다.


물론 사람이 전부는 아니다. 애플의 수익성과 생산성 하락에는 잘못된 시장 전략과 투자판단도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애플은 자신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던 ‘꿈’이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속에 녹아 들어 있다는사실을 잊어버리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 숫자 뒤에 숨겨진 사람과 문화를 놓친 건조한 전략적 사고가 때로는 참혹한 결과를 빚을수 있다는 사실을 애플은단적으로 보여줬다. 애플은 자신의 가장 큰 경쟁력이던 ‘꿈’이 일하는 사람들 속에 있다는 사실을 잊었다. 결국 애플은 자신의꿈을 경쟁자들에게 넘겨줘야 했다.



* 단행본 'MIT MBA 강의노트'의 일부를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
* '단행본 공개 프로젝트'의 일환입니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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