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등록: 2010.04.05 수정: 2014.10.20


‘김민선 소송’이 지난해 회자된 적이 있다. 2008년 배우 김민선이 미니홈피에 올린 미국산 쇠고기 관련 글 등을 문제 삼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유통업체인 에이미트가 3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낸 일이다.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촛불시위 등의 기억이 잊혀질 만 하던 때에, 유명인을 상대로 한 소송 사건으로 이 일은 다시 우리 기억 속으로 되돌아왔다. 2008년 정국을 뒤흔들고, 대통령의 사과까지 나오게 만들었던 사건인지라 정치,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런 정치, 사회적 논쟁을 일단 뒤로 하고, 마케팅 전략의 관점에서 '김민선 소송의 경영학'을 짚어보려 한다.


‘마케팅 전략’의 안경을 쓰고 보면 

 

에이미트는 어디까지나 기업이다. 기업의 모든 행동은 전략적이어야 한다. 특히나 유명인을 상대로 한 소송이라면 매우 중요한 마케팅의 영역에 속해야 한다. 분풀이를 위해 소송하는 수준의 기업은 한국처럼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잘 발달한 나라’에서는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소송 사태도 마케팅 전략의 안경을 쓰고 한 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 소송은 마케팅 관점에서 효과적일까? 이 소송은 결과적으로 미국산 쇠고기가 더 많이 팔리는 데 기여하게 될까, 아니면 그 반대의 효과를 낳을까?


물론 경영이란 불확실성 속 의사결정 과정이다. 결과를 결코 예단할 수 없는 게 경영 판단이다. 그러나 분석하고 예측해 볼 필요는 있다. 이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확률을 높이는 것이, 경영자나 경영컨설턴트 등 전문가의 일이다. 특히나 참고해 볼 만한 비슷한 사건이 과거에 있었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번 소송은 내게 1970년대 미국에서 벌어졌던 ‘맥도널드 지렁이 고기 햄버거’와 그에 대한 대응을 떠오르게 한다. MBA 수학 시절, 강의실에서 마케팅 교수 및 학생들과 토론했던 주제다.


맥도널드 햄버거에 지렁이 고기가 들었다고?


맥도널드 햄버거에 지렁이 고기가 들었다고? 터무니없는 얘기였지만 이 소문은 미국 전역으로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누가 먼저 퍼뜨리기 시작했는지, 누구를 거쳐 퍼지고 있는지조차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이 소문은 지방 언론과 입소문을 통해 끝없이 퍼져나갔다. 1978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하 "MIT MBA 강의노트"중 발췌) 맥도널드의 햄버거 매출은 걷잡을 수 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회사쪽에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공식 부인했고 과학적으로도 입증해 봤다. 하지만 줄어든 매출은 회복되지 않았다.  “당신이 맥도널드의 마케팅 담당자라면 전략으로 이 어려운 국면을 넘어서겠습니까? 이 무서운 소문의 힘을 어떻게 하면 이겨낼 수 있을까요?” 마케팅 교수의 질문이 던져졌고 토론이 시작됐다.


첫 번째 대답은 ‘정면돌파’ 전략이었다. “결국 사실과 과학으로 이겨내야 하지 않을까요? 끊임없이 실험해서 결과를 광고를 통해 대중에게 알리다 보면 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을까요?”


두 번째 대답은 ‘우회’ 전략이었다. “아무리 사실을 알려도 대중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맥도널드와 지렁이 고기 사이의 연결고리는 끊어지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든 대중의 관심이 햄버거를 떠나 그 소문을 잊을 수 있도록 다른 방향으로 마케팅을 펼쳐야 합니다.”


맥도널드가 당황한 채 처음 시도한 방법은 정면돌파였다.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고 애써 부인했다. 하다 못해 이게 거짓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당시 지렁이 고기가 소고기보다 더 비쌌다’는 사실에서도 입증됐다고 알렸다. 심지어 일부 매장에서는 ‘우리 매장 햄버거에는 지렁이 고기가 들어있지 않습니다’라고 써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매출은 계속 줄어들었다. 햄버거에 지렁이 고기가 없다는 글을 써 붙인 매장의 매출은 훨씬 더 큰 폭으로 떨어졌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맥도널드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연구를 시작했다. 사회과학자들이 동원돼 악소문 돌파 전략을 세우기 위한 실험을 벌였다.  실험의 내용은 이랬다. 두 개의 방에 같은 수의 햄버거 소비자들을 넣어 둔다. 이 사람들은 모두 맥도널드와 지렁이 고기의 소문에 대해 동일한 정도로 알고 있다.


 
첫 번째 방에서는 맥도널드 햄버거에 지렁이가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고 사람들에게 알려줬다.  두 번째 방에서는 맥도널드 햄버거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은 채, 한 사람이 일어나 모두에게 얼마 전 갔던 고급 프랑스 식당에 갔더니 매우 비싼 지렁이 요리가 있더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결과는 어땠을까. 놀랍게도 실험이 끝난 뒤 두 번째 방에 있던 사람들이 맥도널드 햄버거에 갖고 있는 거부감이 첫 번째 방에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큰 폭으로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지렁이 고기’라는 고약한 인상이 ‘프랑스 요리’라는 고급요리 개념과 연결돼 버리자, 사람들이 맥도널드 햄버거는 그냥 잊어버리기 시작했단 얘기다. 또 한 가지, 과학적으로 입증된 수치보다 바로 옆 사람이 얘기해주는 경험이 사람들에게 훨씬 더 큰 인상을 남겨준다는 사실도 발견됐다.


비아그라의 ‘남성 기능 장애’ 마케팅


결국 맥도널드는 한동안 햄버거 대신 감자튀김과 밀크셰이크에 마케팅을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 광고에서 햄버거가 사라지고 감자튀김과 밀크셰이크가 나타났다. 물론 이제 지렁이 고기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야 이 악소문을 극복하고 매출을 회복할 수 있었다. 지금은 맥도널드가 어려움에 처했던 1970년대보다 훨씬 더 소문의 힘이 커졌다. 인터넷의 확산과 소비자들의 참여 정신 확대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마케팅은 기업이 광고와 각종 행사를 통해 소비자에게 제품을 사서 쓰라고 ‘가르쳐주는’ 매스 마케팅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소비자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을 미리 예측하고 이용하고 거기에 대응하는 입소문 마케팅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나쁜 소문에 대한 대응은 입소문 마케팅의 수동적 형태일 뿐이다. 많은 기업들은 이미 입소문 마케팅을 제품 기획 단계부터 염두에 둔다. 소비자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면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는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 히트상품이 된 화이자(Pfizer)의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를 보자. 비아그라를 처음 시장에 내놓을 때 파이저가 갖고 있던 가장 큰 걱정은 사람들이 이 제품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기가 어려울 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성교불능’(impotence)이라는 단어는 웬지 은밀하고 어두컴컴한 곳에서 하는 대화에서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인상이 아닌가. 대중매체 광고가 제한돼 있는 약의 특성상 입소문 마케팅이 가장 중요한 마케팅 수단이 돼야 할 텐데, 사람들이 입에 담기 싫어하는 제품을 어떻게 입소문에 올릴 수 있을까.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화이자의 마케팅팀은 ‘성교불능’ 대신 ‘발기부전’(erectile dysfunction)이라는 의학 용어를 퍼뜨림으로써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입소문 마케팅에 성공했다. 이 단어가 퍼지면서 비아그라는 순식간에 친구들이 모인 저녁식사 자리에서도 스스럼없이 꺼낼 수 있는 주제가 된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다시 광우병과 연결되다


소비자는 때때로 수십억원 들여 만든 광고보다 이웃이 물건을 써보고 건성으로 건네는 한 마디를 더 신뢰한다. 인터넷이 일반화해 소비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빨라지고 많아지면서, 이런 경향은 더 커졌다.


입소문 마케팅(WOM; Word of Mouth Marketing)은 이런 변화에 착안해 만들어진 기법이다. 과거에는 메시지가 코끼리로부터 개미에게로만 전달됐다. 기업과 정부가 생산하고 소비자와 유권자는 받아들이기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메시지는 개미들 사이에서 창조되고 순환되고 확산된다. 새로운 시대의 의사소통을 이해하는 경영자라면 입소문 마케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전혀 근거 없던 지렁이 고기 사태도 진화하는 데도 상당히 정교한 전략과 시간이 필요했다. 소비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자극하는 주제였기 때문이다. 하물며 여전히 과학적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광우병 쇠고기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미국산 쇠고기의 건강 영향도 중요하다.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다. 법률적 승리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시장에서, 최후의 승자는 결국 많이 파는 쪽이다. 많은 경우 누가 더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지가 그 승부를 결정짓는다.


분명한 것은 사람들이 다시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을 연결시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여기에, 청산가리까지 더해졌다. 이번 소송 사태의 마지막 승자는 누가 될까?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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