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착한경제] TV 맛집이 맛이 없는 이유

HERI 2014. 11. 12
조회수 5330

등록: 2011.6.30 수정: 2014.11.12


비 내리는 저녁, 혼자 광화문에 있는 극장 ‘스폰지하우스'를 찾아갔다. 화제의 영화 <트루맛쇼>를 보기 위해서였다. 영화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됐다. “나는 티브이에 나오는 맛집이 왜 맛이 없는지 알고 있다.”


1307271463_00393963101_201106061-300x199.jpg영화는 대한민국 텔레비전의 음식 관련 프로그램이 어떻게 제작되는지를 파헤친다. 이를 위해 이 영화 김재환 감독은 경기도 일산에 아예 식당을 차렸다. 그 식당에는 거울 뒤마다 몰래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평범한 식당은 브로커와 홍보대행사와 외주제작사와 방송사 제작진을 번갈아 만나면서 맛집으로 변신한다. 이 과정에서 식당 주인은 이리저리 돈을 건네고, 브로커는 가짜 메뉴를 만들고, 연기자 지망생인 가짜 손님들은 맛 없는 가짜 음식을 먹으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는 연기에 열중한다.


김 감독은 전직 엠비시 피디다. 친정인 방송사들의 내부를 사정없이 내보인다. 결국 1천만원을 들여 에스비에스 ‘생방송 투데이'에 맛집으로 등장했다. 방송이 나오는 그 날, 식당은 문을 닫았다. 2년 동안의 프로젝트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티브이 맛집 방송은 왜 거대한 사기극이 됐을까. 방송 피디 개인의 비윤리성 때문은 물론 아니다. 협찬으로 매출을 극대화하려는 외주제작사의 비윤리성 때문만도 아니다. 외주제작사에 저가로 프로그램을 발주하고는 책임은 나 몰라라 하는 거대 공중파 방송사에 큰 책임이 있지만, 그들을 비난한다고 문제가 풀리는 것도 아니다. 그들 모두는 거대한 사슬 속에 있다.


광고시장은 줄어들어 프로그램 제작비용 절감 압력이 더욱 거세진다. 비용절감을 위해 방송사는 핵심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외주를 선호한다. 그렇지 않아도 경영사정이 열악한 외주제작사는 비용절감을 위해 빠듯한 일정으로 제작을 마쳐야 하니 약간의 조작은 불가피하다. ‘가 봤는데 맛집이 아니더라’고 하고 발길을 돌리기엔 시간이 없다. 브로커를 통해 식당을 섭외하고, 연기자 지망생을 앉혀야 한다.


원청업체(방송사)의 시청률 압박도 거세다. 시청자는 점점 더 감각적인 것을 찾는다. 좀 더 화끈한 메뉴를 찾아내야 하고, 안 되면 가짜 메뉴를 ‘개발'하도록 해서 눈길을 끌려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또 조금만 프로그램 질을 높이려 해도, 추가 수입을 확보해야 한다. 출연하는 식당들로부터 소액의 협찬을 받는 것 쯤이야 프로그램 질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조처라고 생각할 법도 하다.


이 모두가 합쳐져 거대한 사기극은 완성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문제는 맛집 방송에서 끝나지 않는다. 방송 전체, 방송사 경영 전반에 걸쳐 있다. 모두가 자신의 뜻과는 상관 없이 협박전과 사기극에 가담한다.


종합편성채널 사업자들이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면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질 것이다. 방송광고시장은 변함이 없는데, 쪼개먹어야 할 사업자는 두 배로 늘어난다. 거대 광고주인 대기업들은, 손 하나 까딱 않고 간접광고 효과를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런 힘을 갖지 못한 기업은 미디어에 접근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우리에게 ‘트루맛쇼'를 강요하는 빅브러더는 누구인가? 저널리즘 가치보다 기업의 생존과 이윤창출을 앞에 놓는 미디어 기업의 경영 행태다. 특히 민영방송인 종합편성채널 출범을 앞두고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그래서 미디어 기업의 사회책임경영(CSR)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요구된다. 미디어 기업은 ‘저널리즘의 공적 가치’라는 사회적 책임이 기업으로서의 경제적 책임보다 앞서야 하는 조직이니, 여기 걸맞은 경영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특히 민영방송인 종편 출범을 앞두고 성찰해야 할 대목이 미디어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이다. (관련 보고서 링크) 사회책임경영 관련 국제 보고지표를 만드는 지아르아이(GRI)에서는, 주요 광고주 매출비중까지도 공개해야 한다는 미디어 기업 사회책임경영 지표 초안을 만들어 두고 작업 중이다. 외주제작사 같은 협력업체에 대해 어떻게 대하는지, 시청자 안전을 위한 장치는 어떻게 마련해 두고 있는지, 편집과 영업은 어떻게 분리되어 있는도 경영의 주요 이슈다. 사회책임경영 보고서를 발간해 이런 내용 모두를 낱낱이 대중에게 공개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규제당국과 시민사회가 미디어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을 적극적으로 요청해야 한다.


사실 시청자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시장에서 벌어지는 어느 모순이나, 사슬의 맨 끝에는 소비자가 있기 마련이다. 시청자는 가해자이면서 곧 피해자다. 감각적 콘텐츠만을 찾지 말고, 광고주의 협찬을 받는 미디어를 거부하고, 독립언론의 가치를 지키는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구매해야 한다.


다행히 트루맛쇼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이 거세다. 트위터에서는 <트루맛쇼>(@truetasteshow) 계정이 인기이고, 마이크로카페 ‘쇼파'(showfar.kr)에는 맛쇼놀이' 팬클럽도 생겼다고 한다. 독립영화치고는 입장객도 많다. 한 달 만에 1만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모았다.


사실 소비자가 좋은 콘텐츠를 위해 주머니를 열지 않고서는  광고주의 압박과 협찬의 유혹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소비자가 자신이 지지하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미디어를 직접 주머니를 열어 후원하게 될 때, 문제는 자연스레 풀린다.


좋은 세상을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인터넷 창을 열고, 점심 한 끼 값인 ‘트루맛쇼’ 표를 예매하자. 광고주에 휘둘리지 않는 미디어를 원한다면, 그 미디어를 지갑을 열어 구독해야 한다. 건강한 시민운동을 원한다면, 지갑을 열어 그 시민단체를 후원해야 한다. 생산농가 어린이가 커피원두를 따는 노동 대신 공부를 하도록 만들려면, 일반커피 대신 공정무역 커피를 사 마셔야 한다. 3년 동안 식당을 통째로 운영하면서 만든 <트루맛쇼>의 손익분기점은 관객 16만명이라고 한다. 아직 15만명이 더 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소비는 투표다. 결제는 행동이다. 어쩌면 총선과 대선보다 더 중요한 투표이고, 촛불시위보다 더 중요한 행동이다. 세상을 앞으로 밀기도 하고 뒤로 당기기도 한다. 매일, 바로 당신의 지갑  언저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바로 그 언저리 어딘가에 ‘희망'이 있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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