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2.09.11 수정: 2014.11.12
지속가능성을 위한 사회적기업의 혁신
사회적기업은 일반 기업이 경영 효율성을 이유로 외면하는 사회적 필요를 채워주거나 사회적 약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안적 사회 혁신 모델이다. 재원을 확보하고 재투자하는 경영활동의 '과정' 자체가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는 일이다. 일반기업이 경영활동의 '결과'로서 취득한 수익을 사회공헌활동에 기부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장애인을 고용한다거나 저렴한 비용으로 취약계층에게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사회적기업의 재무적 생산성은 일반기업에 비해 낮을 수밖에 없다. 긴 호흡의 투자와 지속적인 혁신 없이는 살아남기 힘든 것이 사회적기업이다. 따라서 사회적기업의 핵심아젠다는 지속가능성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기업의 혁신은 필연적이다.
혁신은 조직 단위의 지식 창조를 주된 형태로 한다. 아쇼카 재단 빌 드레이튼(Bill Drayton) 대표는 사회적기업가는 생선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고기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데 만족하지 않고, 고기잡이 산업을 혁명적으로 바꿀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골치 아픈 사회적 문제에 대해 혁신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사회적기업인 것이다. 때문에 끊임없이 학습하며 낯익은 문제에 참신한 해법으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자가발전적인 지식창조 메커니즘을 안착시키는 일은 사회적기업의 지속가능한 혁신을 위한 전략적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지식창조 메커니즘의 전략활동, 사회적기업 경영공시
‘사회적기업 경영공시’가 추진되기 이전 SROI(사회적 투자수익율·Social Return on Investment)라는 지표를 활용하여 사회적기업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성과를 측정하고 공시하려는 학문적 · 실천적 활동이 전개됐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라는 암묵지를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여러 부작용이 발생했다.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면서, 현실적으로 가시화될 수 있는 것에만 활동을 집중하게 된다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이를 보완하는 형태로 지난해부터 ‘사회적기업 경영공시’ 시범사업이 시행되고 있으며, 2012년 25개 사회적기업의 자발적인 참여로 본격적인 사회적기업 경영공시가 진행되고 있다. SROI와 사회적기업 경영공시의 차이점은 무조건적인 금전적 가치로의 환산을 합리적으로 절제하고, 금전적 가치나 수치로 환산하기 어려운 사회적 가치를 수학적 표현, 그래프, 그림, 진술, 스토리텔링 등의 다양한 질적 형태로 기술(description)하도록 하는 데 있다.
언어는 세계를 왜소화시켜서 담는 그릇일수밖에 없다. 심지어 철학자 아도르노는 언어나 개념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것을 폭력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우리는 대대로 언어나 개념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문사철(文史哲)과 함께 시서화악(詩書畵樂)이라는 넓은 그릇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공부를 해왔다. 보이지 않는 가치와 일정한 깨달음을 조직화하고 표현하는 힘을 기르는 것 자체가 조직의 학습역량을 강화하는 활동인 것이다. 사회적기업이 만들어내는 사회적가치에 좌표를 부여하고 형식지화하는 학습은 지식창조 메커니즘을 촉발시키는 주요한 기제로 작동할 것이다.
2008년 월스트리트저널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구루 20명’으로 선정한 노나카 이쿠지로 교수는 ‘창조의 관점’에서 지식을 다룬다. 그는 지식이 암묵지(暗默知·tacit knowledge)와 형식지(形式知·explicit knowledge)라는 두 가지 지식형태의 끊임없는 복합상승작용을 통해 창출된다고 이야기한다. 언어나 기호로 표현될 수 있는 지식을 형식지라 하고, 언어나 기호로 표현하기 어렵고 주로 사람이나 조직 내부에 체화(體化)되어 있는 지식을 암묵지라고 한다. 사회적 가치를 함의하고 있는 사회적기업의 경영활동 성과가 객관적으로 지표화되기 어려운 이유는 사회적 가치가 암묵지의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기업 경영공시’는 사회적기업 스스로 경영상태와 사회적 목적 실현에 대한 정보를 수치와 문장 등의 언어로 명시화하여 다양한 주체들에게 자율적으로 공개하는 제도이다.
노나카 이쿠지로 교수는 지식창조를 위해 암묵지와 형식지가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지식이 창조될 수 있는 다층적인 ‘장(場)’을 발전단계에 따라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암묵지가 암묵지로 변환되는 사회화(Socialization), 암묵지가 형식지로 변환되는 외재화(Externalization), 형식지가 형식지로 변환되는 조합화(Combination), 형식지가 암묵지로 변화되는 내재화(internalization)의 지식변환 활동이 연결되면서 나선형으로 확장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지식이 창출된다. 이러한 과정을 SECI 프로세스라고 한다.
지식창조 메커니즘, 사회적기업 기본활동으로 내재화
사회적기업 경영공시는 지식변환 활동의 네 가지 모드 중 조합화와 외재화의 장을 촉발시키는 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 조합화의 장에서 조직 내부의 형식지들은 수집되고 종합되는 과정을 거쳐 좀 더 체계적인 또 다른 형식지로 거듭난다. 사회적기업 경영공시를 위해서는 조직 내외부의 정보를 수집하고 평가하고 조합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조합은 단순히 기존의 정보를 결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 가치라는 특정한 의미를 도출하기 위한 데이터 조합이며, 그 조합이 얼마나 짜임새 있느냐에 따라 결과의 타당성에 영향을 미친다. 사회적기업 내부에 정보들을 체계적으로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하는 활동은 이러한 지식 변환 방식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
특히 외재화는 암묵지를 개념적인 글이나 말, 그림 등을 통해 명시적으로 표출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조직의 사회적 가치가 형식지로 표출되지 않으면 사회적기업에 진정한 가치를 부여하기 어렵다. 이쿠지로 노나카 교수는 이러한 의미에서 외재화가 4가지 지식변환과정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형태라고 하였다. 사회적기업 경영공시는 조직 내부의 암묵지를 형식지화하는 계기를 만들어내는 전략 활동이다. 이를 통해 사회적 가치라는 암묵지를 형식지로 유인해낼 수 있으며, 그것을 다시 구성원들과 공유하고 사회에 전파함으로써 다시 새로운 지식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사회적기업 경영공시를 통해 사회적기업의 경영활동과 경제적 · 사회적 · 환경적 성과를 가시화하여 정보를 공개하는 일은 이해관계자 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사회적기업의 일과 성과를 공유해서 참여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일이다. 사회적기업 경영공시가 지식변환의 상호작용을 역동적으로 만들어내는 기재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경영공시가 일부 담당자의 문서작업으로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사회적기업경영공시를 지식창조메커니즘의 일부로 인식하고, 내외부의 소통과 사회적 가치를 새롭게 창출해내는 모티브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겨레경제연구소 조현경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