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등록: 2010.10.12 수정: 2014.11.11


주말을 덕유산 자연휴양림에서 보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가기 힘든 오지의 대명사였던 무주구천동 부근의 숲 속에서 울창한 나무가 내뿜는 상쾌한 기운을 받으며 청명한 가을을 만끽했다. 일부러 그런 곳을 찾아간 것인데도 우리는 단 하루도 바깥 세상과의 연을 끊지 못했다. 일행들은 새로 장만한 스마트폰에 대해 오래 얘기했고, 처음 보는 술의 특성을 검색해 보고, 이런 저런 인증샷을 찍어 도시의 지인에게 전송했다. 중간고사에서 해방된 기분에 인터넷과 컴퓨터 게임으로 주말을 보냈을 아이들을 염두에 둔 여행이었지만, 녀석들은 거기서도 케이블 텔레비전에 빠져 방 바닥을 뒹굴었다.


그러고 보니 주말에 들은 라디오나 돌아와 읽은 뉴스에는 인터넷 같은 새로운 미디어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하게 했는지를 비판적으로 다룬 내용이 여럿 있었다. 가수 태진아와 작사가 최희진 사이의 어리둥절한 공방에서부터, 가수 타블로(본명 이선웅)의 학력 논란, 걸핏하면 올라오는 ‘무슨 녀’ 시리즈의 최신판인 ‘지하철 난투극’ 동영상에 이르기까지 최근의 사례들은 최진실이 왜 죽었을까를 다시 생각하게 할 만큼 인터넷의 역기능을 부각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평론가 김갑수씨는 라디오에 나와, 남의 일에 대해 스토커적인 끈질김을 가진 극히 일부 사람들이 인터넷 덕분에 수 만 명에게 영향력을 갖는 권력자로 성장했다고 진단했다. 이들의 집요함은 낚시성 제목장사로 한몫 보는 듣도보도 못한 온라인 매체와 상승작용을 하면서 인터넷을 선정과 관음, 비방의 도가니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디. 여기에 부응하는 대중의 관심은 주로 유명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의 사생활, 텔레비전 드라마나 오락프로그램에 거진 다 소모되고, 정작 우리 삶을 뿌리에서부터 지배하는 정치-경제-국제적 이슈들은 공론장에서 곁방조차 얻기 힘든 처지가 됐다 것이 김씨의 걱정이었다. 한 신문은 “한번 찍으면” 끝장을 보려는 네티즌의 행태는 근본적으로 질투와 시기에서 발원해 “인터넷을 통해 집단을 이루면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공격하고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진실처럼 맹신”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밝혔다. 또 다른 신문은 독일 커뮤니케이션 학자 엘리자베스 노엘레-노이만의 ‘침묵의 소용돌이 이론’(the spiral of silence theory)을 원용해 인터넷상에서 활동하는 소수의 ‘사이버 좀비’들이 다수를 침묵시키며 온라인 여론을 장악해 가는 방식이 이러하다고 주장했다.


긴장이 되는 것은 최근의 디지털 미디어 발달이 이런 변화를 가속화할 것이란 점이다. 트위터나 미투데이, 페이스북, 유튜브 같은 소셜미디어(social media)는 정보가 유통되는 속도를 몇 배는 빠르게 만들 수 있다. 최근 국내에서 사용자가 크게 늘고 있는 트위터는 평균 4명만 거치면 어떤 사용자와도 만날 수 있을 만큼 전파의 범위가 넓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 만큼 강력한 정보 유통의 힘이 실린다고도 볼 수 있다. 국내의 한 연구[1]에서 리트윗 된 글은 처음에 팔로어(follower)가 몇 명인지에 관계없이 평균 1천명에게 전파되고, 리트윗도 55%가 글이 오른 지 1시간 이내에 이뤄져 비교적 신속히 전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글이 잘못돼 원본을 지운다 해도 사본은 오래도록 저장돼 작성자 의도와 관계없이 계속 퍼져나갈 수 있다.


스마트폰 사용인구가 올해 말 4백 만 명, 내년 말에 국민 5명 당 1명꼴인 1천 만 명에 이르고, 소셜미디어 사용자도 그런 속도로 급증하면, 인터넷 시대와는 또 다른 삶의 양식과 소통 방식이 보편화될 것이다. 개인은 다양한 사람과 관계를 맺고 관심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사생활이 노출되고 무차별로 공격 당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기업에겐 새로운 마케팅 광장이 펼쳐진 셈이지만, 어쩌다가 좋지 않은 평판이 돌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 십 수 년 전 낙동강에 유독성 패놀을 흘려 보내 큰 곤욕을 치른 한 대기업의 경험은 파장의 확산속도와 충격이란 면에서 그저 ‘아날로그 시대’의 추억이 될 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터넷, 디지털 미디어와 더불어 어떻게 잘 살아야 하는 지는 더 이상 미뤄둘 수 없는 숙제로 다가왔다. 우리는 그 동안 기술의 새로움을 경탄하거나 산업적 가능성을 주로 부각해 왔다. 기술 발달이 인간을 해방시키고 자유롭게 할 것이란 암묵적인 전제가 깔려있다. 기술결정론일 수도 있는 데, 사실 기술은 우리를 해방시킬 수도 또 다른 속박을 가져올 수도 있다. 트위터에 인기인의 사생활을 근거 없이 들추는 글이 확산될 때도 있었고, 잃어버린 어린이를 찾는 글이 리트윗 될 때도 있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디지털 미디어 발달에 대한 사회적, 인간적인 측면의 관심과 이해다.  기술적-산업적인 관심에 비할 때 여전히 많이 미약하다.


[1] 곽해원 등 (2010), ‘트위터, 소셜네트워크인가 뉴미디어인가?’ (What is Twitter, a Social Network or a News Media?)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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