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곽정수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한국은 영국과 다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국정감사에서 한 말이다. 영국의 감세 철회를 교훈 삼아 윤석열 정부도 부자감세를 중단하라는 더불어민주당의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450억파운드(11일 환율 기준 약 71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부자감세안을 발표했다가 파운드화 가치 급락, 국채금리 급등으로 대혼란이 벌어지자 열흘 만에 백기를 든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과연 누구 말이 맞을까?

추 부총리는 영국은 소득세 인하인 반면 한국은 법인세 인하이고, 법인세 인하는 부자감세가 아니라는 점을 내세웠다. 교묘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양국의 감세 대상은 다르지만, 부자감세라는 본질은 동일하다. 영국 소득세 감세안의 수혜 대상은 상위 1% 부자들이다. 윤석열 정부의 법인세 감세안은 수혜 대상이 상위 0.01% 대기업이다.

추 부총리는 법인세 인하로 인한 이익이 소비자, 근로자, 협력업체로 이어진다고 강변했다. 대기업 ‘낙수효과’가 거의 사라진 우리 현실에서는 꿈같은 얘기다. 감세로 인해 기업 이익이 늘어나도 내부에 그대로 쌓이거나, 대기업 총수와 임직원에게만 혜택이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보수언론은 대기업 이익이 늘면 배당 여력이 커진다며, 삼성전자의 소액주주 600만명에 대한 배당 효과를 강조한다. 지난해 삼성전자 배당은 10조원에 육박했다. 소액주주 1인당 100만원 정도가 돌아갔다. 하지만 총수일가 4명에게는 1조5천억원이 배당됐다. 법인세 인하로 배당이 늘어난다면 누가 진짜 이득일까?

윤석열 감세안에는 연 5천만원 이상 투자소득에 과세하는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유예, 3주택 이상 종합부동산세 누진세 폐지도 포함돼 있다. 주식과 집 부자들이 수혜 대상이다. 부자감세가 아니라는 주장은 궤변일 뿐이다. 정부는 저소득층을 위해 소득세 하위 과표구간을 높이고, 중소·중견기업의 법인세 세율을 낮췄다고 주장하지만, 고소득층과 대기업의 감세액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

영국과 한국은 부자감세를 통해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점에서도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추 부총리는 지난 5일 국감에서 “법인세 인하가 투자와 고용을 늘려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트러스 영국 총리도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감세는 도덕적, 경제적으로 옳다. (중략) 최우선은 성장, 성장, 성장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판박이다.

부자감세가 낙수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더라도 투자와 고용 확대를 통해 성장에 이롭다면 나름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마저 불확실하다. 감세효과에 대한 전문가 의견은 엇갈린다. 감세 자체는 절대선도, 절대악도 아니라는 게 정확할 것 같다. 경제 상황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가 더 중요하다. 다만 현 위기 상황에서는 성장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다. 감세가 무조건 성장과 세수 확충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과학이 아니라 보수의 낡은 ‘신화’일 뿐이다.

국민도 이미 부자감세의 본질과, 낙수효과가 실종된 상황을 잘 안다. 민주당의 신동근 의원이 최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3명 중 2명은 법인세 인하에 따른 낙수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법인세 인하가 부자감세라는 것에는 53%가 공감했다. 다수 국민이 알고 있는 진실을 경제부총리가 모른다면 무능한 것이다. 알면서도 억지를 부린다면 뻔뻔한 것이다.

추 부총리에게 ‘감세주도성장’(감주성)을 강변하기 앞서 기재부가 과거 20년간 법인세 등 감세 효과에 대해 무슨 말을 해왔는지부터 돌아볼 것을 권한다. “기업의 투자와 고용은 법인세 이외에 규제·인적자본 수준, 시장수요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되므로, 법인세 부담 증가가 기업의 투자와 고용 감소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실증적 근거가 불분명하다.”(2017년 11월 문재인 정부 때) “법인세 인상 등 증세는 경기 회복세를 위축시킬 수 있다.”(2014년 9월 박근혜 정부 때) 기재부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때는 “법인세 감세효과가 없다”로,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정부 때는 “있다”로 입장을 바꾸었다. 정권의 입맛에 맞춰 계속 오락가락한 기재부와 그 수장인 경제부총리의 말을 어찌 믿으란 말인가?

추 부총리는 영국 문제의 핵심은 감세가 아니고 재정건전성이라고 주장했다. 전세계가 트러스 총리의 감세안을 비판한다. 경제위기 속에서 무모한 감세안이 재정건전성 악화, 국가채무비율 상승, 국가신용등급 하향 등의 우려로 이어지면서 대혼란을 초래하는 ‘방아쇠’ 구실을 했다. 사태의 원인을 재정건전성으로 돌리는 것은 견강부회일 뿐이다.

추 부총리는 한국이 영국보다 상대적으로 재정이 건전하기 때문에 감세안만 갖고 동일시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은 50% 안팎으로 영국의 140%대보다 낮은 것은 팩트지만,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통령이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면서도 저성장, 양극화와 소득불평등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중시했다. 특히 코로나 이후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재정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국힘은 ‘선거용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매도했다.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이미 위험 단계에 들어선 징후가 포착되고 있고, 재정건전성 악화로 인한 여러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문 정부가 선진국보다 국가부채비율이 낮기 때문에 지나친 기우라고 해명하자, 단기간에 급격히 부채비율이 상승한 점을 강조하면서 이 추세가 지속되면 재정건전성이 크게 악화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윤 대통령 자신도 대선 토론에서 “한국은 미국·유럽·일본과 달리 기축통화국이 아니어서 국가부채비율이 50%만 넘어도 어렵다”고 했다. 불과 반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설마 잊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감세안이 경제위기 속에서 양극화와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점이다. 정부는 감세와 동시에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면서 취약계층을 위한 예산을 대폭 줄였다.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주택예산 대대적 삭감, 취약 노인층을 위한 공공일자리 6만개 삭감, 청년 내일채움공제 등 청년예산 삭감은 일부 사례일 뿐이다. 윤 대통령이 최근 국공립 어린이집을 방문해 환경 개선을 약속했는데, 정작 내년도 어린이집 확충 예산을 20% 가까이 삭감한 것에는 헛웃음이 나온다. 보수언론은 민주당을 향해 “부자와 빈자 갈라치기를 중단하라”고 목청을 높이지만, 국민의 눈을 가리면서 부자 곳간 채우기 위해 서민 지갑 터는 게 정부여당이다. 국제통화기금은 진작부터 한국 등 회원국에 “세금을 올려 취약계층을 지원하라”고 권고했다. 윤석열 정부는 국민을 지켜주기는커녕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비속어’ 논란으로 정쟁만 난무하고 민생 논의는 실종됐다. 대통령의 사과 한마디면 대다수 국민은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을 스스로 키운다는 지적이 많다. 고집불통인 트러스 총리도 감세안의 실수를 인정하고 열흘 만에 고개를 숙였다. 안보와 경제의 위기 경고음이 동시에 울리는 상황이다. 추 부총리는 “아직 걱정하지 않는다”는 말만 할 게 아니라, 잘못된 정책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jskwak@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621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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