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아침햇발]
코로나 팬데믹 이후 택시기사가 배달 등으로 대거 이직해 수도권에서 밤 시간 택시 잡기가 매우 힘들어졌다. 지난 4월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자정이 넘은 시간에 시민들이 택시를 잡기 위해 길거리에 서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택시기사가 배달 등으로 대거 이직해 수도권에서 밤 시간 택시 잡기가 매우 힘들어졌다. 지난 4월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자정이 넘은 시간에 시민들이 택시를 잡기 위해 길거리에 서 있다. 연합뉴스

이봉현 | 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빈 택시가 사라진 밤거리에서 30분쯤 서 있다 보면 “왜 이 땅에는 우버 같은 서비스가 없을까?” 하는 혼잣말이 나온다. 꽉 막힌 출퇴근길에 하릴없이 도로를 차지하고 있는 ‘나 홀로’ 승용차들을 보노라면 방향이 같은 사람끼리의 카풀이 왜 어려울까 궁금해진다.



디지털 기술이 운송수단과 융합해 모빌리티(운송수단 및 관련 서비스)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할 수 없는 것이 많다. 우버는 자가용 운전자와 승객을 연결해주는 ‘우버엑스’ 서비스를 2013년 내놨으나 불법 콜택시로 규정돼 2015년 봄 한국에서 철수했다. 2016년 카풀 서비스 ‘풀러스’가 등장해 100만명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했지만, 택시업계의 반발로 운영시간이 제한되자 사업을 접었다. 2018년 말 기사 딸린 렌터카라는 사업모델(타다 베이직)을 들고나온 타다는 2020년 봄 이른바 ‘타다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해 서비스를 종료했다.

지난 10년간 이런 곡절을 겪고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은 수도권의 심야 ‘택시 대란’과 요금 인상이다. 당국은 기본요금, 할증료, 호출비 인상을 통해 떠난 택시기사를 돌아오게 하겠다 한다. 이제 수도권에서 늦은 밤에 택시를 타면 호출비를 포함해 1만원이 기본일 것 같다. 승객 주머니를 털어 택시난이 해결되면 그나마 낫겠지만 그리된다는 보장도 없다. 기사의 처우가 개선돼, 뛴 만큼 버는 배달보다 택시 운전이 더 매력 있어질는지는 알 수 없다. 더욱이 심야 택시 부족은 기사의 고령화라는 구조적 원인도 있다. 법인택시보다 2배 많은 서울 개인택시는 기사의 70%가 60대 이상이어서 밤 운행을 기피한다. 서울시가 4월부터 심야 개인택시 부제를 풀었음에도 운행 대수는 10% 정도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렇다 보니 택시라는 제도 안에서 문제풀이를 계속하는 게 유효하냐는 질문을 하게 된다. 택시 공급이 수요에 비탄력적이어서 시대 변화에 둔감하고 이용자의 불편이 장기화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그간 모빌리티 혁신을 택시의 틀 안에서 해결하려 해왔다. 이를 통해 기존 산업과 종사자는 보호했을지 모르지만, 파이를 키워 이용자, 투자자, 기존 산업이 함께 사는 상생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타다를 불법화하며 당국이 내놓은 운송플랫폼 대책도 택시 중심이었다. 그나마 타다를 제도화한 모델인 플랫폼 운송사업(타입 1)에서 공급을 늘리고 경쟁이 활성화되길 기대했으나 그리되지 않았다. 기여금과 총량규제에 창업자와 투자자들이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현재 3개 사업자가 420대의 허가를 받았을 뿐이다. 당국은 ‘타다 활성화법’이라 주장했으나 정부의 가두리 안에서는 혁신이 잘 일어나지 않음을 보여줄 뿐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4일 이 부분의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고 했으니 지켜볼 일이다.

택시 시장이 뒤숭숭한 가운데 지난달 말 타다가 무허가 택시운송사업 혐의에 대해 2심에서도 무죄를 받았다. 법의 예외조항을 활용했고, 당국과 충분히 협의한 사업인 만큼 무죄는 예상됐다. 하지만 1500대의 렌터카로 깔끔한 서비스를 하면서 1년 만에 170만명의 회원을 끌어모은 열기는 사라진 뒤였다. 무엇보다 사후입법으로 사업을 중단시키고도 경영진에게 실형을 구형한 것은 좋지 않은 시그널을 주었다. 이재웅 전 쏘카 대표는 2심 판결 뒤 “(…) 후배 기업가들은 두려움과 공포로 담대한 혁신을 망설였다”며 “우리 사회의 문제해결능력과 혁신 동력이 여기까지밖에 안 되나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큰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우버엑스, 풀러스, 타다 베이직의 좌절은 이용자 관점의 혁신이 시드는 과정이었다. 택시는 살아남았지만 사정이 나아진 것은 없고, 호출이 보편화한 택시 시장은 플랫폼을 장악한 빅테크의 독주로 귀결되는 모양새다. 국내 모빌리티, 특히 택시와 얽힌 곳은 혁신 사업가가 뛰어들기 어려운 영역이 됐다. 몇년 안에 나올 예정인 자율주행 택시나 버스, 도심항공모빌리티도 ‘무슨 금지법’으로 막을 수 있을까?

타다의 좌절에 이은 택시 대란은 혁신과 상생을 조화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해결능력이 커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인프라 투자와 규제개혁으로 혁신의 기운은 돋우면서 기존 사업자나 노동자도 함께 가는 ‘방법론’이 필요하다. 이동수단뿐 아니라 기후변화 대응으로 화력발전소가 문 닫을 때처럼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정의로운 전환’을 준비할 때도 이는 꼭 필요하다.

bhlee@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613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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