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층 고약한 것은 이에스지가 ‘문화전쟁’의 과녁이 된 일이다. 공화당 등 보수우익은 미국 기업을 좌경화하는 원흉으로 이에스지를 찍고 11월 중간 선거를 계기로 손을 보려 나섰다. 이들은 이에스지 정신에 따라 환경, 젠더, 국제분쟁 등에 대해 진보 정치적 입장을 내는 경영자나 기업의 행태를 ‘워크 자본주의’라 딱지 붙였다. ‘깨어있는’ 이란 뜻인 워크(woke)를 비틀어 진보 엘리트의 ‘착한 척’을 비꼬는 말로 만든 것이다. 트럼프 시절에 부통령을 지낸 마이크 펜스는 “워크 좌파가 급진적 환경, 사회의제를 기업에 강요해 기업의 나라 미국을 정복하려 한다”고 비난한 뒤 자기 당 소속 의원들에게 “전국에서 이에스지 원칙의 사용을 끝내도록 만들자”고 촉구했다. 석유 기업의 고향 텍사스는 지난해 주 정부의 투자펀드가 화석연료를 보이콧하는 기업과는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정했으며, 웨스트버지니아는 블랙록의 기후변화 정책을 문제 삼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와의 거래를 끊겠다고 1월에 발표했다.
‘안티 워크’ 공세에 걸려 곤욕을 겪고 있는 기업이 월트디즈니이다. 플로리다주에 있는 디즈니는 밥 체이펙 최고경영자가 공화당 소속 론 드샌티스 주지사가 주도한 ‘부모의 교육권법’(Don’t Say Gay)에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이 법은 초등학생들에게 동성애 같은 성 정체성에 대한 교육을 금지하는 내용이어서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조장한다는 진보진영의 비판을 받았다. 처음에는 체이펙도 논란에 발을 들여놓으려 하지 않았으나, 회사 내 젊은 직원의 강한 항의를 받고 입장을 낸 것이다. 이에 드샌티스 주지사와 주의회가 발끈해서 디즈니 월드가 있는 지역의 감세 혜택을 박탈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등 회사를 여러모로 압박해 들어가고 있다.
이에스지를 둘러싼 조류가 바뀌는 듯하자 이달 초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에스지라는 말의 유용성이 끝나가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간 지속가능성을 줄기로 한 여러 경영 패러다임이 부침했다. 한때 유행한 사회책임경영(CSR), 공유가치창출(CSV)처럼 이에스지란 말이 새로운 사회의 꿈을 주지 못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특히 한국은 열기가 빠르게 달아오른 만큼 빠르게 식을 수 있다.
하지만 이에스지가 태동하게 된 문제의식이나 해결 의지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할 인류의 모래시계는 얼마 남지 않았다. 주주의 권익만 중시해온 경영이 불러온 불평등은 포퓰리즘 극단정치의 불쏘시개가 되고 있다. 기후위기나 인권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젊은 세대가 소비자나 노동자로서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전에 없이 강력해졌다. 이번 위기는 이에스지 경영의 옥석이 가려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유니레버, 파타고니아, 킹아서베이킹컴퍼니 처럼 지속가능성을 경쟁력의 원천으로 삼은 기업이 많이 있다. 이런 기업의 성공을 모델 삼아 이에스지는 더 단단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