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문진수의 사회적 금융 이야기 20]
공공 지원으로 시세보다 저렴한 사회주택
입주민엔 좋지만, 주택 공급자는 무관심

사회주택 사업자에 인내 자본 공급해
양질의 사회주택 많이 보급하게끔 해야
정부의 적극적 금융 지원이 필수
서울 마포구 성미산 자락에 있는 공동체 주택 소행주 1호 공용공간에서의 식사 모습. ‘소통으로 행복한 주택 만들기’ 제공
서울 마포구 성미산 자락에 있는 공동체 주택 소행주 1호 공용공간에서의 식사 모습. ‘소통으로 행복한 주택 만들기’ 제공

사회주택이란 주택 사업자가 공공의 지원을 받아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민간에 공급하는 임대형 주택을 말한다. 정부와 민간 건설회사가 주택 수요를 예측하고 집을 공급하면 되는데, 사회주택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공공주택은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가 시장의 수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민영 임대주택은 임대료가 높고 주거 기간이 짧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유럽에서 사회주택이 가장 발달한 네덜란드는 사회주택이 차지하는 비율이 35%에 이를 정도로 보편화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자가주택 이외의 민간주택은 개인이 임대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보증금과 임대료가 시장가격에 따라 움직이므로 집이 없는 사람은 주거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임차인과 소유주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은 주거중립성(tenure neutrality)이 실현되기 어려운 구조다 .

사회주택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 정부가 소유하거나 매입한 토지를 사회주택 사업자에게 장기간 임대하고, 이 토지를 임대받은 사회적 경제 조직이 시세보다 낮은 보증금과 임대료로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을 공급하면 주변 시세에 영향을 받지 않고 머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

우리나라에 사회주택이 등장한 것은 2010 년 전후 무렵이다.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마을의 공동체 주택 건립, 청년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2014년) 등 민간 풀뿌리 차원에서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만들기 위한 대안적 방식의 주거실험이 이어졌다. 주거 문제의 당사자이며 피해자인 시민들이 직접 해결방안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2015∼2021년 사회주택 공급 현황. 한국사회주택협회 자료 문진수 재정리
2015∼2021년 사회주택 공급 현황. 한국사회주택협회 자료 문진수 재정리

지난 몇 년간 정부와 지자체, 사회적 경제 조직들의 노력으로 사회주택 공급 수는 많이 증가했다. 2021 년까지 공급된 사회주택은 총 4400 호가 넘는다. 전체 주택시장의 크기에 비하면 작지만 , 시장과 공공으로 이원화된 주택시장의 틈새를 메울 수 있는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사회주택이 새로운 주거모델이 되면 잔여적 복지 차원을 넘어 가구 형태에 따라 맞춤형으로 제공되는 사회주택도 등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주택은 모두에게 행복한 모델일까. 입주민에겐 더할 나위 없이 괜찮은 방식이라 할 수 있지만, 주택 공급자에겐 그렇지 못하다. 시세보다 평균 20% 낮은 가격으로 주택을 장기 임대해야 하므로 수익률이 낮은 데다가 투입한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기간도 길게 늘어져 매력이 없는 사업이다 . 민간 건설회사들이 사회주택 사업에 무관심한 이유다.

이 지점에서 금융이 해야 할 역할이 생긴다. 사회주택 사업자들에게 인내 자본을 공급해 자금의 순환을 돕는 것이다. 하지만 민간 금융회사는 사회주택 사업자에 좋은 조건의 금융을 제공하지 않는다 . 재무 건전성이 좋지 않은 작은 건설회사로 바라볼 뿐이다. 건설비용을 매각차익이 아닌 임대수익으로 해결하는 사업구조 때문이다.

정부도 사회적 경제 조직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 (HUG) 등 정책 금융기관들이 이들의 신용을 보강하는 등 사회주택 사업자들에게 우호적인 금융 지원을 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하지만 사회주택 사업자들의 힘든 여건을 개선하기에는 한계가 많다.

사회주택 사업자들에게 장기저리의 인내 자금을 공급하면 임대료 상환 기간과 대출금 반환 시기를 맞출 수 있으므로 주택 사업자의 현금흐름이 좋아진다 . 자금의 순환이 개선되면 사업자 부도의 가능성이 작아지고 결과적으로 양질의 사회주택을 많이 보급할 수 있게 된다 . 사회주택을 활성화하려는 정부 정책이 실현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

정부는 사회주택 활성화를 위한 금융 지원을 더 강화해야 한다. 중앙에 모태펀드 형태의 사회주택 도매기금을 조성해 지자체나 사회주택 전문 중개기관에 필요한 자금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금융 지원 생태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 사회적 금융 지원체계 안에 사회주택 계정을 별도로 만들고 일정 수준의 자금을 할당한 후, 자금을 흘려보내는 접근법도 가능하다.

사회주택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아닌 건 분명하다. 하지만 사회적 금융이 금융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것처럼 사회주택도 주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훌륭한 대안 중 하나다 . 공공도 시장도 풀지 못하는 주거 문제를 새로운 접근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다 . 정부가 할 일은 이 영역이 좀 더 활성화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문진수 사회적금융연구원장


한겨레에서 보기 :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0326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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