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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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최근 우리나라가 ‘청년층의 무덤’으로 전락했는데 여야 대선 후보들은 나랏빚으로 환심을 사겠다는 무책임한 대책만 내놓는다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올해 상반기 청년층(15~29살)의 ‘비자발적 단시간 근로자’ 등을 포함한 ‘체감 실업률’이 25.4%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청년의 ‘체감 경제고통 지수’(체감 실업률+물가 상승률 합계)는 27.2로 2015년 이후 최고치다.

이런 극심한 청년 취업난을 고려할 때 재벌가 아들딸들이 총수와 특수관계라는 이유만으로 본인 능력과 상관 없이 ‘취업 지옥’을 면제받는 것은 큰 특혜라고 봐야 할 것이다. 입사한 뒤에도 일반 직원들은 상상하기 힘든 좋은 자리와 기회를 부여받고, ‘30대 임원’과 ‘40대 시이오(CEO)’라는 특혜까지 누리니 ‘아빠 찬스’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재벌의 아빠찬스 실상과 규모는 정확히 드러난 적이 없다. 간접 통계를 통해 추정할 뿐이다. 공정거래법 상 총수의 친인척 범위는 혈족 6촌, 인척 4촌 이내이다. 기업분석연구소인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자산 규모 5조원 이상인 62개 재벌의 등기임원 1만690명 중에서 총수의 친인척은 531명(5%)이다. 일반 임직원 신분인 총수의 친인척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최소 수천명은 되지 않을까? 이 중에는 자기 실력으로 입사한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는 아빠찬스의 수혜자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지난 10일 박용만 전 상의 회장이 39년간 몸담았던 두산을 떠났다. 외환위기 때 사실상 부도 상태에 빠진 두산을 본사까지 매각하는 환골탈태식 구조조정으로 살려낸 주역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형들인 박용성 고문과 박용현 연강재단 이사장이 회장을 그만둔 뒤에도 계속 그룹에 몸담고 있는 것과도 비교된다.


박용만 회장의 두 아들인 박서원(42) 오리콤 부사장과 박재원(36) 두산중공업 상무도 동반퇴진했다. 두 형제가 아빠찬스라는 말을 듣기 싫다며 자기 일을 하겠다고 했고 박 회장도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박 부사장은 크리에이티브 콘텐츠 분야 전문가로 광고업계 인플루언서다. 박 상무는 두산의 실리콘밸리 투자에서 좋은 성과를 보였다고 한다. 이들이 아빠찬스의 수혜자인지는 별론으로 치더라도, 재벌의 관행을 고려할 때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두산만해도 박정원 그룹 회장 외에 회사 월급을 받는 4세들은 박지원 부회장(박용곤 명예회장 아들), 박진원 부회장(박용성 고문 아들), 박태원 부회장(박용현 이사장 아들) 등 7명에 달한다.


형제의 결단에는 박용만 회장의 영향도 작용한 것 같다. 박 회장은 평소 “회사에서 제대로 일은 안 하면서 (총수 일가라는 이유만으로) 아빠찬스를 이용해 거액의 보수를 받는 것은 사실상 범죄행위”라고 말해왔다. 이에 대해 “내 회사에, 내 자식 일하게 하는 게 뭐가 문제냐”며 박 회장을 비난하는 간 큰 재벌 총수는 없으리라.


그동안 여러 기업에서 채용 비리 사건이 터져 관련자들이 형사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재벌의 아빠찬스 관행은 치외법권 지대였다. 일부 대기업 노조의 노조원 자녀 채용 우대 요청이 “고용 세습”이라고 공격받은 것과도 대비된다.


여야 대선 후보들이 엠제트(MZ)세대로 대표되는 청년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청년들은 시대적 화두인 공정과 관련해 ‘기회 균등’을 중요시한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일반인은 꿈도 꿀 수 없는 특혜를 누리는 재벌의 아빠찬스와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재명, 윤석열 후보는 어떤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까?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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