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문재인 대통령이 2일(현지시각) 영국 글래스고 스코틀랜드 이벤트 캠퍼스(SEC)에서 열린 국제메탄서약 출범식에 참석,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일(현지시각) 영국 글래스고 스코틀랜드 이벤트 캠퍼스(SEC)에서 열린 국제메탄서약 출범식에 참석,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봉현|경제사회연구원장, 논설위원

대한민국은 ‘네다바이’(사기)를 당한 것일까?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우리만 과속”이라고 보수 언론이 날을 세운다. 직전에 로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탄소중립’ 시점을 못박지 못했고, 중국·러시아·인도의 정상은 참석하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중뿔나게 야심 찬 계획을 내놔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웠다는 비판이다.

‘탈탄소 과속론’이 불거지는 걸 보면서 주도적으로 사는 게 무언가 생각했다. 개인도 국가도 이끄는 쪽이 있고 따르는 쪽이 있다. 한국은 늘 쫓아가는 나라였다. 지난 60년을 걸어온 산업화, 민주화의 길에서 서구 선진국의 현재가 우리의 지향점이었다.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나간다. 앞으로 30년 이상 전세계가 달려들어 풀어야 할 탈탄소 전환에서 한국의 위상이 더는 추종자일 수는 없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다. 실질구매력을 기준으로 할 때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17년에 4만1001달러(약 4800만원)로 일본의 4만885달러를 넘어섰다. 2018년에는 격차가 더 벌어졌다. 또 한국은 주요 7개국(G7)에 포함된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를 능가하는 세계 5위의 제조업 대국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발표한 2020년 민주주의 지수를 보면 한국은 167개국 중 23위로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군에 속한다. 미국(25위)보다도 앞자리에 있다. 경제와 정치만 아니라 영화의 <기생충>, 대중음악의 비티에스(BTS), 드라마의 <오징어 게임>이 보여주듯 문화에서도 세계를 석권하게 됐다.

이제 같이 뛰는 무리는 있어도 앞서가는 주자는 없다. 여태 ‘신속한 추적자’로 살며 박수를 받았는데 이제는 ‘창의적 선도자’가 되라 한다. 지금부터 필요한 것이 ‘개념 설계’ 능력이다. 서울대 이정동 교수(산업공학)는 아이폰처럼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혁신 역량으로, 무엇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도와 실패를 축적해갈 때 굳은살처럼 돋는 것이라 설명한다. 이는 제품 개발뿐 아니라 불평등 같은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 혁신과도 맥이 닿을 것이다.

기후위기는 점차 심각해져 우리 삶을 모조리 바꾸어놓을 것이다. 고통으로 얼룩진 험한 길이 예고돼 있다. 과학기술 발전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과감한 투자와 전환으로, 안 되는 것은 생활양식을 적정 규모로 줄여서 맞춰가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은 사회위기 대응과 맞들어야 한다. 소득 및 자산 불평등, 청년세대의 고통, 국민의 낮은 행복감 같은 불균형을 그대로 두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어렵다. 전환 과정에서 희비가 엇갈리는 계층과 지역이 동의할 수 있는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과 틀을 정치적 역량을 발휘해 만들어야 한다. 모두 장기간 부단히 시도하고 실패해야 답이 나오는 난제들이다. 얼마나 절박함을 갖고 달려드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일이다.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가운데 마이크 쥔 사람)가 1일(현지시각)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 첫날 열린 시위에서 동료 활동가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가운데 마이크 쥔 사람)가 1일(현지시각)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 첫날 열린 시위에서 동료 활동가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과속”이란 주장은 그래서 근시안적이고 수동적이다. 30여년 전부터 준비해온 나라도 많은데, 뒤늦게 밀린 숙제 하면서 계속 구시렁거리는 모양새이다. 당장 2023년부터 유럽연합이 ‘탄소 국경세’를 부과하겠다는 판이어서, 철강·시멘트·알루미늄 같은 산업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늦춘다고 기다려주지 않는다. 중국·인도·러시아가 회피한다고 우리가 그들 부담을 떠안는 구조도 아니다. 화석연료에 발목이 잡힌 그들 편에 설 것인가, 이미 탈탄소를 중심으로 기술 개발과 투자에 박차를 가하는 유럽·미국 쪽에 설 것인가를 물으면 답은 분명하다.

에너지 및 산업구조 전환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정부와 기업, 시민이 공격적인 목표를 향해 분투해 길을 열어야 한다. 위기이자 기회로 생각하고 먼저 움직이는 자가 결국 표준을 장악하고 시장을 선점해 큰 보상을 얻는다. 이것이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길이기도 하다.

산업화에 30년, 민주화에 30년을 매진해 여기까지 왔다. 그사이 정보화, 세계화 같은 중규모 전환의 파도 역시 잘 타고 넘어왔다. 국제사회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 2050년까지 약 30년. 주도적인 탈탄소화를 통해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의 그늘까지 털어냄으로써, 세계가 우리를 보고 미래를 설계하는 나라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겨레에서 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180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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