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문진수의 사회적 금융 이야기]
사회적 경제 기업, 소셜벤처 지원하는 지자체 기금
손실 보전 장치 부재·융자 중심 운용 문제 있지만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 하는 기업 성장 도와

엑셀러레이터가 투자자로 참여하거나
민간기금과 공동 투자기금 조성해
사회적 경제 생태계 더욱 풍성해질 수 있어

서울시 사회투자기금 둘러싼 논쟁에는
사업 가치와 성과, 방향성 논의는 빠져있어

사진 언스플래쉬 제공
사진 언스플래쉬 제공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기금 중 사회투자, 사회적 경제 지원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기금(광역 6개, 기초 8개)이 있다. 지자체는 공모를 통해 자금 수요가 있는 지역 사회적 경제 기업에 직접 대출하거나 전문성 있는 민간 중개기관을 통해 자금을 공급하기도 한다. 금융회사로부터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줘 금리 차이를 보전해주는 방식도 취한다.

사회적 경제 기업들이 제도권 금융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보니 지방정부가 나서서 금융 지원을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가장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곳 중 하나가 서울시 사회투자기금이다. 2012년 기금이 설치된 이후 2020년까지 총 857건, 1460억원이 넘는 자금을 조성·집행했다. 시 기금(일반회계 전출)과 민간기금(매칭)을 합친 숫자다.



2021년 서울시 사회투자기금 운용계획. 서울시청 홈페이지
2021년 서울시 사회투자기금 운용계획. 서울시청 홈페이지

기금을 만든 취지와 운용 방식이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작동방식을 들여다보면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손실 보전을 위한 장치가 없다. 사회적 경제 기업이나 소셜벤처 중에는 도약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일부는 중간에 무너지기도 해 빌려준 돈을 상환 시점에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

사회적 경제 기업은 가치와 수익을 동시에 창출해야 하는 속성 때문에 경영상 어려움이 상존한다. 그래서 외국의 공공기금들은 손실기금을 따로 운용하거나 경제적 손실을 만회할 수 있는 장치를 갖고 있다. 돈을 빌린 기업들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한 후, 그 편익만큼 융자금을 상계(相計)해주는 방식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는 회계상 손실이기 때문에, 별도의 충당금 계정을 만들어둔다.

지자체 자금을 받아 운용(재대출)하는 중개기관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이 돈은 중개기관 입장에선 상환을 전제로 한 차입금이다. 사회적 경제 기업들이 돈을 갚지 못하면 중개기관이 대신 물어줘야 한다. 자금 운용은 무척 엄격하고 깐깐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중개기관들이 지자체가 채무불이행 위험을 자신들에게 떠넘긴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하는 이유다.

대다수 기금이 융자 중심으로만 운용되는 점도 문제다. 대출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때에 저금리의 자금을 조달받을 수 있는 건 사회적 경제 기업들엔 가뭄의 단비와 같다. 하지만 사회적 경제 지원기금이 융자라는 한 가지 방식으로 운용되는 건 문제가 있다. 금융에는 다양한 수단과 방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창업기획자(액셀러레이터)들에게 사회적 경제 투자조합을 만들도록 한 후 투자자로 참여하는 방법이 있다. 사회적 경제 기업들, 특히 창업한 지 3년이 안 된 신생 기업들은 돈을 빌려주는 것만으로는 자립 기반을 만들기 쉽지 않다. 금융 지원과 함께 경영지도를 할 수 있는 비금융적 지원을 함께 결합할 필요가 있다. 이 일을 잘할 수 있는 조직이 창업기획자들이다.

민간기금과 함께 공동 투자기금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이미 부산, 인천, 강원도 등 몇몇 지역에선 지방 공기업들이 기금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 지역 공공기관이 지역 발전을 위해 사회적 경제 기업들에 금융 지원을 한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 기금들은 규모가 너무 작다. 지자체가 이런 기금들을 모으고 보증을 얹어 승수효과를 높이는 등 규모화를 도모하면, 생태계는 훨씬 풍성해질 것이다.

서울시 사회투자기금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기금 운용과정에서 나타난 크고 작은 문제들을 두고 서로 대립하는 형국이다. 우려스러운 점은 마치 이 문제들이 기금 사업의 본질인 것처럼 인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기금을 만든 취지와 목적, 그간 이룩한 성과와 가치에 대한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지방기금법 개정(2015년)으로 민간에서 공공으로 기금 관리주체가 바뀌는 등 크고 작은 변화를 겪으면서도 서울시 사회투자기금은 사회적 경제 기업들의 성장을 돕는 마중물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왔다. 다른 지자체들이 부러워했고 좋은 모범 사례로 인정받았다. 문제가 있다면 고치면 된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 아니겠는가.

지금 서울시가 놓치고 있는 건 “어떻게 하면 이 기금이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훌륭히 쓰이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다. 공적 금융의 창의적인 활용, 민간 자본과의 협력구조 강화, 사회적 금융 생태계 조성 그리고 사회적 경제 기업들이 더 많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도우려면 행정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와 같은 것들 말이다. 감사를 통해 이 주제들의 해법을 얻을 수는 없다.

문진수 사회적금융연구원장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수익 잔치 은행은 ‘생산적 금융’했나?…시민이 대안금융 열자

임팩트 투자 플랫폼, 사회의 미래에 투자하는 문화 조성 사회 가치 창출하는 프로젝트·사업에 돈의 흐름 이어줘 임팩트투자 플랫폼 비플러스 누리집(benefitplus.kr) “내 돈이 지구 환경을 지키는 데 쓰였다니 기쁘네요.” 온라인...

  • HERI
  • 2021.11.22
  • 조회수 1092

“평생기술일 줄 알았는데…” 카센터 사장님의 ‘투잡’

인공지능과 자동화 시대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무어의 법칙’은 디지털 세상의 속도와 변화의 폭을 규정한다. 약 24개월마다 반도체의 집적도가 2배가 된다는 이 법칙은 기술 발전의 속도가 지수함수라...

  • HERI
  • 2021.11.15
  • 조회수 1472

지역에 사회적 금융 전문 중개기관을 만들자

[문진수의 사회적 금융 이야기] 지역에 사회적 금융 중개기관 설치해 사회 가치 실현하는 기업과 사업에 투자한다면 지역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지역 밀착 금융 기관으로 발돋움 할 수 있어 수도권은 진공청소기처럼 사람과 돈...

  • HERI
  • 2021.11.05
  • 조회수 1860

[아침햇발] 산업화·민주화·탈탄소화 / 이봉현

문재인 대통령이 2일(현지시각) 영국 글래스고 스코틀랜드 이벤트 캠퍼스(SEC)에서 열린 국제메탄서약 출범식에 참석,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봉현|경제사회연구원장, 논설위원 대한민국은 ‘네다바...

  • HERI
  • 2021.11.05
  • 조회수 1287

[유레카] 최태원과 기업가정신 / 곽정수

에스케이(SK)에서는 지난 10월 말 올해를 마무리하는 시이오(CEO) 세미나가 끝난 뒤 격론이 벌어졌다. 최태원 회장이 폐막 연설에 ‘2030년 기준 전세계 탄소 감축 목표량 210억톤 가운데 1%인 2억톤을 기여하겠다’는 약속을 ...

  • HERI
  • 2021.11.04
  • 조회수 1494

[유레카] 항공기 사고와 소프트웨어 사고 / 구본권

1983년 9월26일 밤 모스크바 외곽에 있는 소련 핵전쟁 관제센터에 경보가 울렸다. 미국으로부터 소련 본토로 5기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날아오고 있다는 경보였다. 핵탄두 탑재 전폭기를 24시간 공중 체류시키며 즉각적인 ‘상호확...

  • HERI
  • 2021.11.03
  • 조회수 1453

자조 금융이 만들어내는 집단지성의 힘

[문진수의 사회적 금융 이야기] 미국 뉴욕시 저소득층 거주지역의 지역밀착신협(CDCU) 활동을 소개하는 누리집(lespeoples.org) ‘보조금 24’라는 누리집이 있다. 국가가 제공하는 각종 지원금을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든 온라...

  • admin
  • 2021.10.26
  • 조회수 1174

[유레카] 법조공화국 / 곽정수

한국 근대사에서 변호사가 처음 등장한 것은 구한말이다. “1906년 법무령 제4호에 의해 홍재기 등 3명이 변호사 인가증을 받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00년 뒤인 2006년 변협에 등록한 변호사가 1만명을 돌파했다. 현재...

  • HERI
  • 2021.10.14
  • 조회수 1291

[유레카]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에 실린 것 / 구본권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오는 21일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될 예정이다. 2010년 개발이 시작된 누리호는 설계, 제작, 시험, 발사 운용 등 모든 과정이 국내 기술로 이뤄졌다. 로켓 1단부는 75t급 액체엔진 4기를 묶어...

  • HERI
  • 2021.10.14
  • 조회수 1738

진짜와 가짜 ‘임팩트 기업’ 구별하려면?

[문진수의 사회적 금융 이야기] 사회적 가치 추구하는 ‘진짜’ 기업 찾으려면 ‘임팩트’ 평가하는 객관적 척도 필요 진정성 있는 투자·중개기관이 나서 진짜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주거, 환경, 보육 등 다양한 사...

  • HERI
  • 2021.10.07
  • 조회수 1677

로지, 미켈라…사고 안치는 ‘가상인간’ 모델계 대세될까

AI ‘버추얼 인플루언서’ 본격화 가상세계 익숙한 젊은층에 인기 명품모델 기용되며 높은 수익성 “과거엔 기술이 사람 따라했지만 현재는 사람이 가상인간 모방” “줄리엣·심청의 불멸은 스토리덕” 국내에서 모델로 활동하고 ...

  • HERI
  • 2021.10.04
  • 조회수 2723

[HERI 칼럼] 해운사 담합 면죄부 법 / 곽정수

곽정수 선임기자 미국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3년. 루스벨트 행정부는 위기 극복을 위한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산업별로 ‘공정경쟁 협약’을 맺을 수 있는 ‘국가산업부흥법’을 제정했다. 과도한 시장경쟁을 막는다는 미명 아래 기...

  • HERI
  • 2021.10.04
  • 조회수 1524

서울시 사회투자기금을 둘러싼 논쟁을 바라보며

[문진수의 사회적 금융 이야기] 사회적 경제 기업, 소셜벤처 지원하는 지자체 기금 손실 보전 장치 부재·융자 중심 운용 문제 있지만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 하는 기업 성장 도와 엑셀러레이터가 투자자로 참여하거나 민간기...

  • HERI
  • 2021.09.23
  • 조회수 1494

[유레카] 뉴 브랜다이즈 운동 / 곽정수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뉴 브랜다이즈 운동의 3총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임명한 리나 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 조나단 캔터 법무부 반독점국장(지명자 신분), 미국 정부의 경제정책...

  • HERI
  • 2021.09.15
  • 조회수 1662

[유레카] 안전하지 않은 ‘안전 극장’ / 구본권

20년 전 일어난 ‘9·11 테러’는 민간 항공기가 최고의 테러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확인시키며 항공여행의 풍경을 완전히 바꿨다. 강화된 몸수색과 알몸 스캐너를 거쳐야 하고 액체는 휴대할 수 없게 됐다. 미국의 보안 ...

  • HERI
  • 2021.09.15
  • 조회수 1313

살아있는 실험의 장이자 오래된 미래 ‘공제’

[문진수의 사회적 금융 이야기] 조상들의 상부상조 전통 담긴 ‘공제’ 정부·시장 주도 사회보장체계 형성되며 밀려나 2010년 소비자 생협 공제사업 법적 근거 마련에도 정부 무관심으로 10년간 발 묶여 소비자 피해 막기 위한...

  • HERI
  • 2021.09.09
  • 조회수 1447

허드렛일 처리 ‘인간형 로봇’ 꿈…100년만에 실현될까?

일론 머스크 “내년에 시제품 공개” 성인 몸집에 짐 들고 걷는 기능도 “지루하고 위험한 일 사람대신 처리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로봇” 튜링 “사람닮은 로봇 어리석은 일” ‘범용’대신 기능별 로봇이 ‘대세’ 테슬라...

  • HERI
  • 2021.09.06
  • 조회수 2012

[유레카] 집권 탈레반이 마주친 ‘새로운 적’ / 구본권

지난 15일 탈레반 지휘부는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 집무실을 점령한 사진으로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장악했음을 알렸다. 소총을 든 무장대원들과 스마트폰으로 현장을 촬영하는 조직원들이 함께 담긴 사진이었다. 2001년 ...

  • HERI
  • 2021.08.30
  • 조회수 1689

균형 잡힌 투자 생태계는 어떻게 만들까?

[문진수의 사회적 금융 이야기] 정부, ‘사회적 금융’ 필요성 인정했지만 자금 공급 계획은 목표치 절반에 그치고 ‘사회적경제 기본법’은 국회서 장기 표류 수요-공급자 특성 맞춘 매칭 거래 등 사회적 금융 생태계 조성에 ...

  • HERI
  • 2021.08.27
  • 조회수 1706

기능차별 어려워진 스마트폰 성숙기 새 경쟁

스마트폰은 디지털 세상의 풍경을 바꾼 혁신의 상징이다. 2007년 아이폰 이후 스마트폰 업체들은 해마다 새 모델을 통해 혁신 경쟁을 벌여왔고, 기술과 보급률은 빠르게 올라갔다. ‘생필품 스마트폰’은 어떠한 차별화를 지향할...

  • HERI
  • 2021.08.23
  • 조회수 1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