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문진수의 사회적 금융 이야기]

금융소외 계층 구제 위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듯
사회·환경 가치 큰 사업 위한 촉매기금 조성 필요

사회적 가치 창출 무관심한 금융사에 인내 자금 제공해
더 나은 사회 위한 협력 파트너십 구축 가능

자료 사진: 언스플래시
자료 사진: 언스플래시


음식을 먹으면 위 안에 있는 특정 물질(효소)이 음식물을 잘게 만들어 소화와 흡수를 돕는다. 자동차에는 배기가스 변환장치가 달려있어서 특정 필터가 공기 오염의 주범인 일산화탄소(CO)를 이산화탄소(CO2)로 전환한다. 이처럼 스스로 변하지는 않지만, 화학 반응의 속도를 조절해주는 물질을 촉매(觸媒)라 부른다.



금융에도 촉매 원리가 적용된다. 정부는 금융 접근이 어려운 이들이 은행에서 낮은 이자로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이자 차액을 내주거나(이차보전) 손실이 생기면 대신 갚아주는(대위변제) 제도를 운용한다.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기 힘든 취약계층을 돕기 위해 정부가 촉매 자본을 통해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다. (지방)정부가 운영하는 중소기업 육성기금, 정부·민간 출연금으로 운영되는 공적보증기구가 대표적 사례다. 금융회사는 신용점수가 낮은 사람에게 대출하기를 꺼린다. 상환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금융소외 계층을 구제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은행과 정부가 서로 위험을 분담하거나 정부로 위험을 이전하면 된다.

사회·환경적 가치가 큰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정부가 모두 조달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예를 들어보자. 에너지 전환 사업은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국가 프로젝트다. 정부는 탈석유·석탄 및 대체 에너지 개발에 관심이 많지만 예산 제약이 따른다. 민간은 회수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를 꺼린다. 하지만 정부가 에너지 전환기금을 만들어 시민공모 방식을 통해 필요한 자금을 모은다면 어떨까. 시민공모를 통해 1천억원의 기금을 조성한다고 하자. 보증을 활용하면 최대 2조원의 자금을 운용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손실률을 고려하더라도 적은 예산으로 재정투입 효과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당연한 말이지만 촉매 자본이 클수록 승수효과는 증가한다.

이처럼 촉매 자본 원리를 활용하면 정부는 민간 자금을 사회투자 사업에 끌어들일 수 있다. 다양한 목적의 촉매 기금을 만들고 “투자 위험은 우리가 감수할 터이니, 걱정하지 말고 투자하세요!”라고 말하면 된다. 적은 돈으로 큰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이때 정부가 투자 위험을 대신 분담하며 안전한 투자라는 믿음을 줘야 한다. 시중금리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우대금리를 적용하거나 보증기관이 상환위험을 이전받는 방식으로 투자 상품을 만든다면 시중에 떠도는 큰 규모의 유동자금을 유입할 수 있을 것이다.

촉매 자본의 기능 및 효과 개요도. 문진수 원장
촉매 자본의 기능 및 효과 개요도. 문진수 원장

정부와 기업, 시민이 함께하는 협력기금을 만들어 운용할 수도 있다. 투자 성향에 따라 위험 부담 정도와 상환 방식을 차등하는 형태로 기금을 구조화하는 것이다. 시민 투자자에게는 투자 위험을 최소화하고 정부가 고위험을 부담하는 방식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면 된다.

정부는 사회·경제·환경적 가치를 추구하는 다양한 사업과 기업을 위한 촉매 자본을 조성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혹자는 정부가 금융시장에 개입하면 시장질서가 교란된다는 등의 논리를 펴지만, 이는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통제받지 않는 금융이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이익만을 좇을 뿐, 공공선이나 사회가치 창출에는 큰 관심이 없다. 기업이 아무리 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도 대표자 신용이나 재무제표 상태가 나쁘면 돈 빌려주기를 꺼린다. 촉매 자금은 이 기업들에 인내 자금을 제공해줌으로써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재정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날개를 달아 준다.

문진수 사회적금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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