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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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부터 나흘간 열린 올해 다보스포럼의 열쇳말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다. 세계경제포럼이 이 해묵은 개념을 소환한 데는 일련의 흐름이 있었다. 지난해 8월 미국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 모임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이 발표한 ‘기업의 목적에 대한 성명’이 대표적이다. 181명의 경영자는 이 성명에서 기업의 목적은 고객에 대한 가치 제공, 종업원에 대한 투자, 협력업체와의 공정한 거래, 지역사회 지원 등이라고 선언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도 같은 해 9월18일 “이윤 극대화와 주주가치에 과도하게 집중하면서 자본주의가 망가졌다”며 “자본주의 리셋”을 새 어젠다로 제기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1930년대 처음 등장한 이래 현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새롭게 조명된 개념이다. ‘기업의 목적이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대해 주주 자본주의의 답이 주주 이익의 극대화라면, 이 개념의 답은 주주, 종업원, 노동조합, 고객과 지역 주민 등 기업과 연계된 이해관계자 전체의 이익과 공존이다. 2020년 다보스포럼 또한 성명을 내어 “기업의 목적은 모든 이해관계자가 공유하는 지속적인 가치 창출에 그들을 참여시키는 것”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해관계자 복지’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개념의 확장으로 이 개념의 복지 담론이다. 고세훈 고려대 명예교수가 저서 <복지 한국, 미래는 있는가>(2007)에서 일찍이 설파한 것으로, “한 사회의 진정한 복지는 종업원, 주주, 하청업체 직원, 지역 주민, 소비자 등 시장의 내부자들뿐만 아니라 실업자, 노인, 장애인, 노약자 등과 같은 시장으로부터 탈락한 시장 외부자 등을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자의 복지를 포괄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고 교수는 이를 위해선 시장 외부자를 보호하는 ‘외적 민주화’로서 국가복지 확충과, 종업원, 소비자, 주주 등을 위한 ‘내적 민주화’인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해관계자 복지 개념이 눈길 끄는 대목은 국가복지 확충만으로는 한 사회의 진정한 복지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 즉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란 경제민주화가 함께 이뤄져야 사회 구성원 모두의 복지가 달성될 수 있다는 관점에 있다. ‘이해관계자’,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적잖은 개념이란 생각이다.


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goni@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2753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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