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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울분사회’,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새로운 수식어다. 한국인의 43.5%가 만성적인 울분 상태이며 심한 울분을 기준으로 하면 독일의 4배 수준이라고 한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의 최근 조사연구 결과다.


울분은 분노와 다르다. 울분은 분노에 무력감이 결합된 복합적 감정이다. 분노는 때로 거대한 사회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최순실 국정농단에 분노한 2016년 겨울의 촛불 민심처럼 말이다. 하지만 노력해도 달라지리라는 희망이 없을 때는 울분이 된다. 이 연구에서 눈길을 끈 것은 20대와 30대 등 젊을수록 울분을 격하게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20대가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가장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는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의 최근 조사 결과와 정확히 겹친다.


지난 9월 발표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글로벌리서치의 조사에서 ‘정치·경제·사회·환경 등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질문했을 때 낙관 21.7%, 비관 42.1%로 나타났다. 20대의 낙관 응답은 19%였다. 60대와 함께 가장 낮은 수치다. 지속 가능성을 정치·경제·사회보장·환경·외교 등 분야별로 나눠 평가했을 때도 결과는 비슷했다. 20대는 환경 분야를 제외한 대부분에서 낙관 응답이 가장 낮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20대 내의 성별 차이다. 대부분의 항목에서 20대 여성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을 일관되고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20대 여성은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16.6%만이 낙관한다고 응답해 20대 남성(21.2%)에 견줘 더 낮았다. 분야별 세부 평가로 들어가도 상황은 비슷했다.


20대 여성은 왜 좌절하고 있을까? 조사 결과는 공정성에 대한 불신이 핵심 열쇳말이라고 알려준다. “노력하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가질 수 있다”는 질문에 대해 20대 여성의 긍정 응답은 36.2%로 또래 남성(55.3%)보다 매우 낮았다. 전체 응답은 긍정 44.8%, 부정 55.2%였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경제적 상위 계층의 자격이 충분한지”를 묻는 말에도 20대 여성은 22.8%만이 긍정해 또래 남성(41.1%)의 절반 수준이었다(전체 평균 27.9%). “취업 및 승진이 평등하게 이루어지는가”라는 질문에도 20대 여성의 16.8%만이 평등하다고 응답했다. 전체 평균(26.3%)은 물론, 동년배 남성(33.3%)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한국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시스템과 기득권 집단에 대한 불신이 특히 20대 여성에게 견고히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들이다.


지난 몇년 동안의 여러 조사연구는 20대 여성이야말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 변화를 위한 실천 등에 가장 적극적인 집단이라는 점을 일관되게 보여주었다. 인권감수성, 권리감수성이 높고 일상의 미시적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진보와 다르다고 인식되었다. 그래서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들 20대 여성의 민주주의적 실천을 ‘지금까지 한국 정치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민주주의’라고 칭송한 바 있다.


진보의 보루로까지 간주되던 20대 여성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가장 비관하는 역설을 어떻게 봐야 할까? 결혼과 출산의 거부가 단적으로 보여주듯 불안과 불신에 이유가 있다. 대학 졸업 후 3년째 아르바이트와 학원을 오가며 취업을 준비 중인 필자의 지인 20대 여성은 “열심히 노력해도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 답답하고 불안하다. 미래가 불안하다 보니 결혼해서 아이 낳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치열하게 노력한 만큼, 발휘한 능력만큼 보상받지 못하리라는 불안감, 불신이 미래를 어둡게 한다.


여학생이 학업성취도에서 남학생을 앞선 지 오래다. 공무원 등 시험으로 뽑는 선망의 자리에 여성이 다수를 차지한다. 언론은 실력과 자아존중감으로 무장한 ‘알파걸’이 몰려온다며 호들갑을 떨어왔다. 젊은 남성들은 역차별의 피해의식을 호소한다. 하지만 막상 이 여성들이 마주한 세상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이 ‘인지 부조화’가 20대 여성을 비관으로 이끌고 있다. 지속 가능성이 화두인 시대다. 20대 여성 대다수가 무력감으로 울분에 찬 사회, 미래를 비관하는 사회가 지속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가 곱씹어야 할 질문이다.


hgy4215@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144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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