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유레카] 불평등의 심리학 / 이창곤

admin 2018. 11. 05
조회수 126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왜 적잖은 사람들이 끼니를 채우고도 먹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가?

미국의 정신의학자 로저 굴드는 인간에게는 몸속 위장이 아닌 ‘유령위장’이 따로 있다고 본다. 그는 비만 환자들을 접하면서, 식탐은 배고픔만이 아니라 무기력증에서도 비롯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허기사회>의 저자 주상윤은 이를 ‘밥그릇의 허기’라고 이름 짓고, 이런 정서적 식욕은 경제적 결핍 및 배제나 관계적 결핍 때문이라고 파악했다. 그는 우리 사회는 이미 밥을 먹었는데도 허기를 느끼는 ‘정서적 허기’로 가득 차 있다고 진단했다.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명예교수는 지난주 열린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의 기조강연에서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고소득자들은 우월감을 느끼고, 저소득자들은 자신을 가치없는 사람이라고 여기게 된다”며 불평등이 정신건강에 끼치는 여러 악영향을 경고했다. 예컨대 불평등한 나라나 지역일수록 우울증과 비만 등이 발병할 우려가 크고, 스트레스가 높게 나타나며, 학교 내 집단 괴롭힘도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의 아내이자 공동연구자인 케이트 피킷 요크대 교수는 영국 런던의 한 지하철 노선을 따라 중심부에서 외곽지역으로 갈수록 해당 지역 주민들의 기대수명이 점차 줄어드는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거주지에 따라 건강과 수명에 격차가 나타남을 보여준 것이다. 같은 포럼에 참여한 아시아개발은행 수석 칼럼니스트 사와다 야스유키도 토론에서 고소득자에 견줘 가난한 사람들한테서 스트레스 관련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가 높게 나타난 실험 결과를 소개했다.

이들 학자가 밝힌 연구 결과의 공통점은 무얼까? 불평등한 사회가 빚어내는 갖가지 경험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생물학적으로 몸은 물론 정신과 심리에도 뿌리내려 뚜렷한 흔적을 새긴다는 것이다. 불평등의 ‘생물학적 뿌리내림’이라고 할 수 있다.

기실 불평등 사회는 불가피한 필연의 산물이 아니다. 사회구성원이 선택한 체제와 정책, 즉 정치의 결과다. 우리가 다른 상상, 다른 정치적 선택을 한다면 바꿀 수 있으며 적어도 낮출 수 있다. 문제는 ‘몸과 마음에 불평등의 경험이 착근된 사람들에게 어떻게 새로운 상상과 다른 정치를 선택하게 할 수 있을까’다. 바로 이 점에서도 우리는 불평등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감수성을 비롯한 심리적 측면을 더 많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goni@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68742.html#csidx052859528d05f0d9960f23ed82a9705 onebyone.gif?action_id=052859528d05f0d9960f23ed82a9705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토요판 커버스토리] 피케티 “불평등에 눈감은 정치, 그 블랙박스 열고 싶어”

[토요판] 커버스토리 ‘불평등 연구자’ 토마 피케티 와 인터뷰를 하며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alt="1971년생인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는 스스로를 ‘포스트냉전세대’라 부른다. ...

  • HERI
  • 2018.11.05
  • 조회수 123

[유레카] 불평등의 심리학 / 이창곤

왜 적잖은 사람들이 끼니를 채우고도 먹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가? 미국의 정신의학자 로저 굴드는 인간에게는 몸속 위장이 아닌 ‘유령위장’이 따로 있다고 본다. 그는 비만 환자들을 접하면서, 식탐은 배고픔만이 아니라 무기...

  • admin
  • 2018.11.05
  • 조회수 126

[한겨레 프리즘] 평범한 이들의 투기 욕망 / 한귀영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내가 사는 지역에 ‘게이티드 커뮤니티’ 분양 광고가 떴다. ‘대문을 잠근 동네’라는 뜻일 텐데, 첨단 경비시스템을 통해서 주민을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주거형태라고 한다. ‘그들만...

  • HERI
  • 2018.10.29
  • 조회수 150

‘암수살인’과 잊혀질 권리

[구본권의 스마트 돋보기] 지난주 개봉한 영화 <암수살인>은 개봉을 앞두고 ‘잊혀질 권리’와 관련한 법적 다툼이 진행되어 화제였다. 범죄가 발생했지만 신고와 주검 등이 없어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용의자 신원파악도 되지 않...

  • admin
  • 2018.10.18
  • 조회수 175

[유레카] 커뮤니티 케어 / 이창곤

커뮤니티케어의 목표 및 기대효과. 자료: 사회보장위원회 (* 누르면 확대됩니다.) 가족들이 귀가하면 꽁무니를 쫓아다니면서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던 당신이었다. 하루는 피를 토해 온몸을 적셔 병원으로 이송된 뒤로 말을 잃...

  • HERI
  • 2018.10.16
  • 조회수 350

[한겨레 프리즘] 지지율, 급한 불은 껐지만 / 한귀영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평양 정상회담을 계기로 61%까지 반등했다. 북-미 정상회담과 지방선거 압승 직후인 6월 둘째 주 갤럽 조사에서 79%까지 치솟았던 지...

  • HERI
  • 2018.10.10
  • 조회수 380

[유레카] ‘포용국가’가 현실이 되려면 / 이창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8 포용국가전략회의에서 김연명 국정과제지원단장의 발표를 들은 뒤 손뼉을 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윌리엄 베버리지가 ‘복지국가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

  • HERI
  • 2018.09.20
  • 조회수 389

[한겨레 프리즘] 연금을 둘러싼 세대전쟁 / 한귀영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국민연금이 세대갈등의 전장이 되고 있다. 불확실한 노후 대비를 위한 핵심적인 사회안전망으로서 세대간 연대에 기초하는 제도가 세대갈등 프레임으로 위협받고 있다. 온갖 비판에도 불...

  • HERI
  • 2018.08.27
  • 조회수 465

[유레카] 참여정부 기시감 / 이창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 의료기기 규제혁신 현장에서 소아당뇨를 앓고 있는 정소명 학생에게 야구공을 선물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기시감. 요즘 세간의 모임에서 자주 듣는 ...

  • admin
  • 2018.07.30
  • 조회수 599

[한겨레 프리즘] 지지율 하락과 호들갑 / 한귀영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문재인 대통령 지지도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주 갤럽 조사에서는 62%로 나타나 지방선거 직후에 비해 17%포인트 떨어졌다. 하락의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대선에서...

  • admin
  • 2018.07.30
  • 조회수 429

[유레카] 재정개혁안 유감 / 이창곤

강병구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오른쪽 둘)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정개혁특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두려움은 직면하면 그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

  • HERI
  • 2018.07.05
  • 조회수 692

[한겨레 프리즘] 진보 우위 시대의 도래? / 한귀영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6·13 지방선거로 유권자들은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정치세력을 사실상 퇴출시켰다. 이제 진보 우위의 시대가 열린 것일까? 선거 결과를 보면 진보 우위는 쉽사리 변하지 않을 불...

  • HERI
  • 2018.07.03
  • 조회수 628

경제위기 10년, 자본주의 쿠오바디스?

[책과 생각] 이봉현의 책갈피 경제 메뚜기와 꿀벌-약탈과 창조, 자본주의의 두 얼굴 제프 멀건 지음, 김승진 옮김/세종서적(2018) 2008년 10월 리먼브라더스의 붕괴로 본격화한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이 되어간다. 도산과 실직...

  • HERI
  • 2018.06.22
  • 조회수 665

[유레카] 가계소득지표 논란의 핵심 논점 / 이창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29일 청와대 여민1관 소회의실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경제 관련 부처 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가계소득동향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제공 시선이 온통 북-미 정상회담에 쏠려 있지만...

  • HERI
  • 2018.06.19
  • 조회수 619

[한겨레 프리즘] 청년, 왜 평화에 냉담한가 / 한귀영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6·13 지방선거에서 이슈가 실종되었다고들 한다. 한반도 평화 이슈의 영향력이 워낙 막강한 탓이다. 대통령 지지도가 70%를, 여당 지지도가 50%를 넘다보니 야당의 단골 이슈인 정부여당...

  • HERI
  • 2018.06.05
  • 조회수 702

[유레카] 실시간 인기검색어 / 구본권

한성숙 네이버 대표가 지난 5월9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3분기(7~9월)부터 모바일 첫 화면에서 뉴스와 실시간 검색어를 빼는 것을 포함한 뉴스 서비스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네이버 제공 네이버가 3분기부터 모바일 ...

  • HERI
  • 2018.06.05
  • 조회수 690

[책과 생각] 피케티가 말하는 불평등의 정치

[책과 생각] 이봉현의 책갈피 경제 애프터 피케티 토마 피케티 외 25인 지음, 유엔제이 옮김/율리시즈(2017) 정치경제학자 토마 피케티(파리경제대 교수)는 18세기부터 현재까지, 20여개국의 조세 자료로 ‘부익부’의 불평등 구조를...

  • HERI
  • 2018.05.29
  • 조회수 827

[유레카]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 이창곤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설계자인 올리 캉가스는 최근 서울을 찾아 “기본소득 실험 결과는 2020년에야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캉가스 제공 핀란드가 2017년 1월부터 시행해온 기본소득 실험을 2019년 1월로 끝낸다. 이 사실을 ...

  • HERI
  • 2018.05.23
  • 조회수 825

[한겨레 프리즘] 시간을 거스르는 지지율 / 한귀영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취임 1주년을 맞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83%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갤럽의 지난주 발표다. 전임 대통령 모두 취임 1주년에는 지지율 하락으로 국정 동력이 떨어진 것과 대비...

  • HERI
  • 2018.05.08
  • 조회수 945

[유레카] 판문점 회담과 포용의 힘 / 이창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7일 경기 파주시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넘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이보다 더 감동적인 평화 드라마가 있었던가? 두 손을 맞잡고 높이 5㎝의 작은 콘크리트 턱에 불과...

  • HERI
  • 2018.05.02
  • 조회수 8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