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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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내가 사는 지역에 ‘게이티드 커뮤니티’ 분양 광고가 떴다. ‘대문을 잠근 동네’라는 뜻일 텐데, 첨단 경비시스템을 통해서 주민을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주거형태라고 한다. ‘그들만의 리그’로 살고 싶다는 욕망을 반영한 셈일 텐데, 이곳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상류층도 아니고 중산층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극심한 주거 불평등, 자산 양극화가 이제는 중산층을 향해서 공간 분리라는 방식으로 더 노골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보인다.

자산이 불평등을 확대하는 주된 요인이라는 점은 국가통계와 국민의 인식 등 여러 측면에서 확인된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엠브레인의 10월6~7일 조사(800명)에 의하면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분야로 응답자의 약 절반(48.9%)이 부동산 등 자산 격차에 따른 불평등을 꼽았다. 24.4%는 ‘부모의 재력에 따른 불평등’을 꼽았다. 자산 불평등과 부의 대물림이 이 시대 불평등의 진원지임을 확인해주는 결과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국세청 과세자료를 근거로 분석한 자료도 동일한 결론에 이른다. 근로소득을 따로 추린 지니계수는 0.471이었으나 여기에 자산 보유에서 발생하는 소득을 합칠 경우엔 지니계수가 0.520으로 심각한 수준에 이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대 자본주의는 이제 중세 세습사회의 문턱까지 역행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기조 발제를 맡은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학 교수의 진단이 대표적이다. 그는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상층 자산계급이 자산의 대부분을 독점하고 상속·증여를 통해 불평등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자산은 정치·사회적인 의식, 태도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앞의 조사에서 67%는 ‘복지가 확대되면 내 삶이 좋아질 것’이라 답했지만 집이 많을수록 이런 기대는 뚝뚝 떨어졌다. 무주택자의 복지 기대감은 72.2%였지만, 1주택자 65.5%, 2주택자 58.3%, 3주택 이상 다주택자 55% 순으로 기대감이 하락했다. 흥미로운 것은 미래 집값에 대한 기대감에 따라 복지 기대감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집값이 낮아지는 게 좋다’는 응답층에서는 복지 기대감이 70%에 이른 반면, ‘오르는 게 좋다’는 응답층에서는 43.3%에 그쳤다.

예상한 대로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는 다주택자로 갈수록 높았다. 무주택자는 19.8%만 ‘현재 수준 또는 상승’을 선호하고 80.2%는 ‘낮아지는 게 좋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1주택자는 37.4%, 2주택자 51.4%, 3채 이상 다주택자 75%가 ‘현재 수준 또는 상승’을 기대했다.

집이 생겨 사적 자산 축적의 길에 접어들면 집값 상승에 대한 욕망도 높아지는 반면, 공적 복지에 대한 기대감은 반비례해 낮아진다. 왜 ‘사적 자산 기반 복지’에 대한 기대감이 공적 복지보다 훨씬 강한 것일까? 두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 첫째, 한국의 공적 복지 수준 자체가 낮은데다 그 수준이 높아지리라는 기대, 신뢰가 낮기 때문이다. 둘째,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사적 자산 축적을 조장하는 정권들을 겪어온 역사적 체험 때문이다. 물론 둘은 연관되어 있다.

사적 자산 기반 복지로 성장해온 사회에서 “내 집 값만은 오르면 좋겠다”는 욕망은 평범하다. 그리고 몹시 파괴적이다. 평범한 생활인을 파괴적 투기꾼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공적 복지를 약속하던 정치세력에 대한 낮은 신뢰 때문이다. 부동산대책만으로는 부동산을 못 잡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센터장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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