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권의 스마트 돋보기]
지난주 개봉한 영화 <암수살인>은 개봉을 앞두고 ‘잊혀질 권리’와 관련한 법적 다툼이 진행되어 화제였다. 범죄가 발생했지만 신고와 주검 등이 없어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용의자 신원파악도 되지 않아 공식 범죄통계에 집계되지 않은 암수범죄(hidden crime)가 영화 소재다. 영화는 몇 년전 부산에서 일어난 실제 범죄 사건을 다뤘으나, 피해자 유족이 동의 없이 사건이 영화화된 것에 대해 피해 주장을 하며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유족 쪽은 “유족들이 기억을 더 이상 환기하지 않고, 대중매체를 통해 대중이 알지 않게 할 ‘잊혀질 권리’가 있다”고 상영 금지를 요구했다. 합의가 이뤄져 영화가 상영되었다.

‘잊혀질 권리’는 인터넷 검색기능이 강력해지고 편리해지면서 부상하게 된, 새로운 권리다. 잊혀질 권리가 법적 권리로서 과연 가능한지에 대한 국제적 논란이 있었지만, 2014년 유럽연합사법재판소 판결이후 확대되고 있다. 모든 게 기억·소환·공개되는 인터넷 환경에서 존엄한 삶을 위한 필수적 권리로 여겨지는 추세다.

범죄 관련 잊혀질 권리가 문제되는 상황은 범죄와 관련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달라지는 데서 출발한다. 과거 언론은 범죄 가해자는 물론, 피해자의 신원과 거주지, 사진까지 상세하게 보도했으나 2008년 대법원 판결로 획기적 변화가 생기게 된다. 이른바 ‘이혼소송 주부 청부폭력 오보’ 사건 판결에서 대법원은 “범죄 보도는 공익에 속하지만 범죄 자체를 보도하기 위해 반드시 범인이나 혐의자 신원을 명시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니고, 범인과 혐의자에 대한 보도가 범죄 자체에 대한 보도와 같은 공공성을 가질 수 없다”고 판결했다. 국내에서 범죄 익명보도 원칙이 확립된 계기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은 이 판결 이전에 작성되어 범죄 피해자와 가해자의 신원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기사도 손쉽게 찾아준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었다.

구글 등 검색업체는 과거에 존재하는 문서를 기계적으로 찾아주는 알고리즘 결과에 대해 ‘삭제’라는 인위적 개입을 할 수 없고 실효성도 없어 잊혀질 권리는 불가능한 몽상이라고 주장하며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유럽연합을 필두로 ‘잊혀질 권리’ 인정이라는 사회적 합의와 법률이 만들어졌다.

‘잊혀질 권리’는 기술로 인한 결과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대신, 어떻게 그 환경을 좀더 인간답게 만들 수 있는가를 알려주는 사례이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