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국민연금이 세대갈등의 전장이 되고 있다. 불확실한 노후 대비를 위한 핵심적인 사회안전망으로서 세대간 연대에 기초하는 제도가 세대갈등 프레임으로 위협받고 있다.


온갖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노후 소득 보장의 사회안전망으로 간주된다. 통계청의 ‘2017년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53.3%가 가장 중요한 노후대비책으로 국민연금을 꼽아 예·적금(18.8%), 사적 연금(11.4%)보다 월등히 높았다. 복지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인 만큼 이해당사자, 정치세력 간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국민연금과 관련한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세대간 형평성이다. 세대간 기여와 보상의 몫이 다른 탓에 해법을 놓고 갈등이 빚어진다. 급속한 노령화로 인해 청년세대가 지게 될 부담은 현재의 기성세대보다 월등히 크다. 청년세대의 입장에선 현실은 비참하고 미래는 불안한데 자신들보다 더 풍요로운 기성세대를 위해 더 많은 부담을 지라고 하니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국민연금 고갈 시점 예측 기사는 이들의 반발을 더 부추긴다. 실컷 더 낸 다음 못 받을 수도 있다는 억울함에 ‘차라리 국민연금을 폐지하라’는 반응마저 나온다.


최유석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저서 <세대간 연대와 갈등의 풍경>에서 세대간 형평성에 대한 불만이 높을수록 세대갈등이 커지고, 이는 다시 공적 연금 등 복지국가의 근간을 흔들어 사회 불안정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국가간 비교를 통해 실증했다. 최 교수는 젊은층의 노인세대에 대한 인식에서 국가간 차이에도 주목했다. 노인세대가 사회에 크게 기여했다고 인식하는 국가들일수록 정부의 사회지출도 높고 공적 연금 개혁도 원활하게 이루어지며 노인세대도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한다. 또한 공적 연금에 대한 기여와 보상이 세대간에 공평하게 이루어진다는 인식이 출산율 상승이라는 선순환도 낳게 된다. 이런 서구 복지국가들과 달리 한국은 노인의 기여에 대한 평가가 매우 낮다. 노인세대(기성세대)와 청년세대 간의 갈등이 극심한 탓에 국민연금에 대한 생산적 논의도 어렵다.


국민연금의 세대간 형평성을 높이기 위한 개혁 자체는 시급한 문제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과 이해관계를 숨긴 채 ‘세대갈등 프레임’을 조장하는 세력이다. 보수언론과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청년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내세우며 그 주범으로 특정 세대를 지목하고 비난을 퍼붓는 ‘비난의 세대게임’이 반복되어왔다. 한국의 세대갈등을 ‘세대게임’이라는 틀로 분석한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대게임의 참여자보다 설계자가 누구인지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다. 세대간 갈등과 싸움의 판을 짜고 특정 세대를 ‘사회적 고통’의 진원지로 몰아세우는 설계자의 의도, 정치적 목적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노동개혁’ 사례는 그 전형이다.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고임금 정규직 기성세대가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며 86세대를 ‘욕받이’로 내세웠다. 86세대를 ‘꿀 빤 세대’로 낙인찍은 세력이 누구인가? ‘알바생’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호소하는 청년에게 “인생의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지 방법이 없다”고 말한 바로 그 세력이다. 이들이 ‘비난의 세대게임’의 설계자다. 이 게임에 빠져들수록 정작 책임져야 할 자들의 잘못은 은폐되고, 국민연금의 시급한 구조개혁은 무산된다. ‘꿀 빤 세대’는 없다. ‘꿀 빤 세력’만 있을 뿐. 행여 국민연금을 둘러싼 세대갈등이 꿀 빤 세력의 농간에 놀아날까 우려된다.


hgy4215@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59313.html?_fr=mt5#csidx3c9e13f0aafc49ab14700d44d32895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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