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6·13 지방선거로 유권자들은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정치세력을 사실상 퇴출시켰다. 이제 진보 우위의 시대가 열린 것일까?

선거 결과를 보면 진보 우위는 쉽사리 변하지 않을 불가역의 추세로 보인다. 첫째, 기초의원·기초단체장·광역의원 등 정당의 기초체력전에서 민주당이 압승했다. 민주당은 기초단체장 226곳 가운데 151곳을 얻었는데, 그중 53곳은 21세기 들어 민주당이 이겨본 적이 없던 곳이다. 영남과 휴전선 접경지대, 서울 강남 등 보수의 텃밭이다. 광역의원, 기초의원 선거에서 보수야당의 패배는 더 치명적이다. 이들이야말로 보수가 지역에서 질긴 생명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근간이었다. 그 뿌리가 날아갔다.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의 압도적 우세를 점치는 목소리들이 나오는 근거다.

둘째, 세대별 지지도 역시 보수의 몰락을 점치게 한다. 보수정당의 핵심 지지층이던 50대 상당수가 민주당 지지로 돌아섰다. 민주화세대인 86세대의 50대 진입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향후 선거에서 2040세대와 50대의 전략적 동맹이 지속될 가능성이 커졌다. 보수정당의 장기집권을 예상케 하던 고령화 추세가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셋째, 가치와 이슈에서 유권자들의 변화다.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가 촉발한 사회경제 측면에서 유권자들의 진보화 경향은 2010년 이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가 진보 의제를 수용한 이유다. 반면 북핵 위기로 안보에서는 보수화 경향이 뚜렷했다. 하지만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평화체제의 전망이 가시화하면서 보수정치세력의 존립 명분이 사라지고 있다.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을 찍은 중도·보수층이 자유한국당과 완전히 결별할 합리적·정서적 명분을 얻고 있다.

넷째, ‘애국주의’ 등 보수의 가치 독점이 해체되고 있다. 산업화와 안보가 보수를 지켜온 명분이라면 애국주의는 보수의 자존심이자 ‘소울’이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각종 기념식과 의례가 ‘애국주의’를 매개로 보수층과 정서적 결속을 이뤄내고 있다. 애국주의에 진보의 가치가 접목되면서 보수의 정신적 토대가 휘청거리고 있다.

물론 과거로의 회귀, 퇴행의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2006년 지선,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으로 지방, 의회, 정부를 모두 장악했던 보수정당의 몰락이 반면교사다. 보수의 장기집권 시대가 열리나 했더니 2010년 지방선거에서 철퇴를 맞았다. 이명박의 실정, 여당의 분열과 무능력이 유권자들의 견제 심리와 충돌했던 것이다.

기초의회가 민주당 절대 우위로 바뀌었지만 그 체질은 여전히 보수일 공산이 크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뉴스타파>가 이번 지방선거 기초의원 출마자들을 전수조사한 결과를 보면, 재출마자 가운데 당적 변경자 비율이 32%였는데, 무소속, 자유한국당 계열에서 민주당 계열로 바꾼 사람이 222명으로 반대의 경우 155명보다 꽤 많았다.

국민의 정치적 효능감은 정치가 나의 삶을 바꾸고 있음이 현실로 체험될 때 지속된다. 문제는 역시 사회경제적 의제들인데, 비판의 목소리들이 점차 커지고 인내심도 약해지고 있다. 사회경제적 문제는 이해당사자도 많고 해법도 복잡하다. 저항도 집요해서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정상회담이나 평화체제 구축과 같은 의제가 보수, 진보에 관계없이 모두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비갈등 의제인 반면, 사회경제적 이슈는 심지어 지지층 안에서도 이해관계가 갈리기 쉬운 갈등 이슈다. 문재인 정부의 뇌관이 될 수 있다. 이제부터 진짜 실력을 보여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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