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달동네 꼭대기 집 꼭대기 층이었다. 우리집을 지나면 산이 시작됐다. 내 신혼도 거기서 시작됐다. 결혼 자금은 20대의 알바 저축이었다. 있는 집 자식이 아니라면 사정은 얼추 엇비슷했다. 아무튼 거기서 여기까지 왔다. 요즘 ‘꼰대’들이 젊은이들의 패기없음을 탓하는 레퍼토리에 이렇게 하나 보태본다.


‘패기’라는 말이 상징하듯 20대에 대한 비난은 종종 젊은 남성들을 향한다. 오늘날 이들의 패기없음을 꼬집는 대표 단어가 ‘찌질함’이다. 젊은이다운 패기도, 약자에 대한 배려심도 없는 걸 ‘찌질하다’고 말한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글로벌리서치가 19~59살 2000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조사(1월23~27일 온라인 방식 조사)를 통해 20대 남성의 ‘찌질함’을 추적해보자. ‘정부는 여성친화적인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20대 남성은 37%만이 동의해 20대 여성 76.9%와 차이가 컸다. 여성친화적인 문재인 정부의 여성정책에 대해서도 20대 남성은 38.6%만이 지지해서 전체 지지도 평균 52.4%와 차이가 컸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차별이 매우 크거나 있다는 응답이 전체적으로 88.1%인 반면, 20대 남성은 81.3%가 동의해 가장 낮았다. 20대 여성의 92.3%와 대조된다. 탈북자에 대한 차별이 매우 크거나 있다는 응답 또한 전체 평균 79.6%에 반해, 20대 남성은 66.6%에 그쳐 가장 낮았다. 결혼이주여성, 장애인에 대한 응답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20대 남성은 사회적 약자에 대해 가장 배려심이 약해 보인다.


20대 남성의 배려심 부족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해석이 제시되어왔다. 무엇보다 지금 한국의 20대 남성은 자신들이 누군가를 배려해야 할 강자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들은 일자리 부족의 피해를 가장 직접적으로 입고 있는 집단이다. 학점과 필기시험이 당락을 좌우하는 공무원, 공공부문이 최고 직장인 시대에 남성이라는 사실은 차라리 페널티에 가깝다. 여자도 군대 가라고 외치는 이유다. 사실 이들이 가장 분노하는 대상은 여성 등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이들에게 배려를 요구하는 기성세대의 기득권 남성이다. 이 ‘매너 좋은’ 남성들은 좋은 시절을 실컷 보낸 다음, 그 미안함을 자신들의 양보가 아니라 젊은 세대의 남성들에게 미룬다고 20대 남성들은 믿는다.


조금 더 들어가보자. 사실은 남성이냐 여성이냐의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20대에도 부자와 빈자가 있다. 조사결과를 보면 부자 20대와 서민 20대는 살고 싶은 사회상이 달라도 많이 다르다. 부자 20대는 개인 간의 능력 차이를 인정하고 경쟁력을 중시하는 사회, 세금은 적고 위험에 대해 개인이 책임지는 사회를 더 바란다고 응답했다. 또한 경쟁과 성취가 더 중시되는 사회를 선호한다. 그 반대편에 서민 20대가 서 있다. 이들은 성장보다는 분배를 지지하고 사회적 위험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바라며, 경쟁보다는 연대와 협력을 선호한다. 이 서민 20대에는 당연히 남성도 포함된다.


이제 가난한 20대 남성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지어보자. 이들은 약자에 대한 배려심은 약하지만, 그래도 함께 사는 연대와 협력의 세상을 꿈꾼다. 이들 생각 자체는 모순적이지만, 적어도 세상의 부조리보다는 덜 모순적이다. 연대와 협력의 세상에 대한 이들의 바람이 약자에 대한 미움으로 바뀌지 않게 할 책임을 우리는 나눠 져야 한다. 제발 ‘찌질하다’고 조롱하지 말자. 그건 가난한 젊은 동료 시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hgy4215@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35573.html#csidx44ad4b8f43b401d9751da3d6c6acc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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