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conomy |이봉현의 책갈피경제
한국협동조합협의회 펴냄 (2017) 
신협 등 대형 협동조합 선거마다 과열, 혼탁
협동조합 본래의 가치, 정체성, 원칙 되새겨야
지난 1월19일 오전 코트야드메리어트 서울 남대문에서 열린 전국사회연대경제지방정부협의회와 신협중앙회의 ‘사회적 경제 활성화 및 상호협력을 위한 협약식’에서 참석자들이 결의를 다지고 있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지난 1월19일 오전 코트야드메리어트 서울 남대문에서 열린 전국사회연대경제지방정부협의회와 신협중앙회의 ‘사회적 경제 활성화 및 상호협력을 위한 협약식’에서 참석자들이 결의를 다지고 있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8일 치러진 신협중앙회장 선거에서 김윤식(62) 대구 세림신협 부이사장이 선출됐다. 신임 이사장은 당선 뒤 “임기 안에 단기 성과를 내려고 급급하기보다 신협 1백년 대계를 그리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조합 서비스를 강화하고 중앙회 조직을 혁신할 것”이라고도 했다. 새 회장을 맞은 신협이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하는 디딤돌이 되라는 안팎의 요구에 어떻게 응답할지 지켜볼 일이다.

전국 950여 조합에 600만명의 조합원이 있고 81조원의 총자산을 가진 신협은 최근 활발해진 사회적 경제를 지원하는 사회적 금융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8일 정부가 발표한 <사회적 금융 활성화 방안>에서도 신협이 사회적 경제 기업 지원 전용기금(연 100억원 규모)을 설치해 대출, 투자하는 등 사회적 금융 기능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하지만 회장 선거 과정은 이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측면이 컸다. 금품을 주고 받았다거나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 등으로 주요 후보들이 검찰에 고발됐고, 후보 간 진실공방도 뜨거웠다. 이런 혼탁양상은 도덕적이고 능력 있는 회장이 선출되길 기대하는 조합원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란 탄식이 나왔다.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31187.html

신협뿐 아니다. 국내 최대 협동조합인 농협도 ‘적폐’라는 말을 들을 만큼 협동조합의 정체성에서 멀어져 있다. 농협의 신용사업은 일반 금융회사와 다를 바가 없고, 경제사업도 대기업과 다를 바가 없어서 농민과 소비자는 뒷전이란 말들이 있었다.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되면서 효율성과 수익성 추구 행태가 더욱 심화됐다는 지적도 받는다. 조직운영의 민주성과 합리성에서도 합격선을 못 넘고 있다. 중앙회장 선거는 과열, 혼탁, 부정이란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다. 조합장이 직선으로 중앙회장을 뽑기 시작한 1990년 이래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민선 회장 4명 중 3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이는 주요 국내 협동조합이 자발적으로 컸다기보다, 박정희 정권 이래 정부의 사업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육성된 데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2012년 말 협동조합 기본법이 발효된 뒤 협동조합 설립 붐이 일어났다. “자생력을 갖는 곳이 얼마나 되느냐”는 비판도 없지 않지만 첫술에 배부르길 기대하는 것은 성급하다. 이럴 때 큰 규모의 협동조합이 혁신을 통해 모범을 보이지 못하면 존재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 기업과 선의가 잘못 엮이면 철저한 시장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영리기업보다 못한 조합이 될 수 있다.

한국협동조합협의회가 지난해 말 펴낸 는 협동조합 기업의 정신을 되새겨 볼 때 읽어볼 만한 안내서이다. 협동조합의 가치와 이를 실현하는 7가지 원칙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최근의 변화된 환경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서술하고 있다. 이 원칙 개정을 총괄한 장루이 방셀 협동조합원칙위원회 의장은 책 머리에서 협동조합의 정체성에 대해 이렇게 밝힌다.

첫째는 협동조합이 공통의 경제,사회,문화적 필요와 염원을 충족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결사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러한 필요와 염원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사업체를 통해 충족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정체성과 가치로부터 국제적으로 합의된 윤리의 기준으로서 ‘협동조합의 7원칙’이 도출된다. 협동조합은 국제적으로 합의된 정의, 가치, 원칙을 갖고 활동하는 유일한 형태의 기업가 조직인 셈이다. 방셀은 “협동조합의 원칙은 가치 있는 차이를 만들어” 낸다고 말한다. 이번에 나온 책에 소개된 원칙들은 원래 있던 7원칙을 변화에 맞춰 설명할 필요성이 제기됨에 3년간의 작업을 거쳐 2015년 공표된 것이다. 특히 미래세대의 협동조합 지도자, 즉 청년들을 주된 독자층으로 삼아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폴린 그린 국제협동조합연맹 회장은 책 머리에서 “이 협동조합 원칙 안내서는 사회가 변하고, 환경에 대한 관심이 진화하며, 상업 및 금융의 규제와 수요가 생겨나고 없어지는 등의 변화에 발맞추어 나아가기 위한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살아 있다’”고 말했다. 김형미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장은 <생협평론>에 연재한 소개글에서 “협동조합 7대 원칙은 외워서 아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원칙이 협동조합의 사업과 활동에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음미하면서 협동조합이 가야할 길을 정할 때마다 적용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일곱 가지의 원칙은 하나하나가 독립적이라기보다는 서로를 보완하는 상호의존관계이다. 예를 들어 5원칙(교육, 훈련, 정보제공)을 충실히 지키면 제2원칙(조합원의 민주적 통제)이 튼튼해진다. 지난해 12월 발간된 이 책은 협동조합 조합원에게만 배포된 비매품이지만 아이쿱생협 누리집에서 pdf 버전을 내려받을 수 있다.http://icoop.coop/?page_id=7960362

【제1원칙】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제도

협동조합은 자발적인 조직으로서, 협동조합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조합원의 책임을 받아들일 의지가 있다면 성, 사회, 인종, 정치, 종교의 차별을 두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다.

협동조합이 ‘자발적 조직’이란 점이 특히 중요하다. 조합원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게 협동조합이지만 조합원은 그냥 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사회?문화적 필요와 염원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관계 속에서 해결하려는 자발적인 행동이 따라야 한다.

【제2원칙】 조합원의 민주적 통제

협동조합은 조합원에 의해 통제되는 민주적 조직으로서, 조합원은 정책수립과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선출직으로 활동하는 대표자들은 조합원에게 책임을 다해야 한다. 단위협동조합의 조합원은 동등한 투표권(1인 1표)을 가지며, 다른 연합 단계의 협동조합도 민주적인 방식으로 조직된다

구성원의 다수결을 통한 ‘거버넌스’라 할 수 있는 민주주의 원칙은 성, 재산 등을 중심으로 전개된 참정권 확대 운동보다 훨씬 오래된 협동조합의 전통이다. 민주주의는 권리와 함께 책임이 따르며, 조직이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운영되도록 견제와 균형의 틀을 갖추어야 가능하다. 조합원의 민주적 통제원칙을 실행하는 데서 가장 큰 과제는 토론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환영하고 장려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발달한 모바일 및 인터넷 기술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조합원이 되어서 이런 민주주의 정신을 키워나가는 협동조합 방식은 시민사회의 토양을 비옥하게 해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게 돕는 것이기도 하다.

【제3원칙】 조합원의 경제적 참가

조합원은 협동조합의 자본 조달에 공정하게 기여하고 민주적으로 통제한다. 최소한 자본금의 일부는 조합의 공동자산으로 한다. 조합원 자격을 얻기 위해 납부하는 출자금에 대한 배당이 있는 경우에도 보통은 제한된 배당만 받는다.

협동조합은 ‘사람이 자본을 위해 봉사하는 기업이 아니라, 자본이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조직’이라는 정신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런 반전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가는 늘 숙제였기에, 제3원칙은 협동조합의 7원칙 가운데 가장 민감하고 어려운 부분이었다. 이 원칙에서 ‘자본’은 조합원 출자금을 말하는데, 이는 주식회사의 자본과는 다르게 이해된다. 협동조합의 출자금은 자본 수익을 올리기 위해 투자된 돈이라기보다는 공정한 가격으로 조합원에게 필요한 상품, 서비스, 일자리를 위해 투자된 공동자산이란 인식이 필요하다. 따라서 잉여금 배분도 협동조합의 발전을 위한 준비금으로 적립하거나, 이용에 비례해 조합원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경우 등 몇 가지 목적에 한정된다.

【제4원칙】 자율과 독립

협동조합은 조합원이 통제하는 자율적이고 자조적인 조직이다. 정부를 포함한 다른 조직과 협약을 맺거나 외부에서 자본을 조달하고자 할 경우, 조합원의 민주적 통제가 보장되고 협동조합의 자율성이 유지될 수 있는 조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원칙은 협동조합이 사업을 할 때 만나게 되는 정부, 금융회사, 국제기구, 유통망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95년 협동조합원칙이 개정될 때 협동조합 사업을 위한 특별원칙으로 처음 도입됐다. 협동조합도 현재의 지배적인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움직이기에, 주식회사 등 투자자소유기업의 관행이나 행태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협동조합의 본질적인 정체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특히 국가와 협동조합은 성공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하는데 정부는 단순히 협동조합이기 때문에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기업과의 경쟁에서 협동조합이 이뤄내는 사업의 성과 때문에 지원한다. 또 국가는 협동조합이 자신들이 제공하기 어려운 기초 서비스(빈곤, 실업 등의 해결)를 제공하는 손쉬운 정책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협동조합도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해 자율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제5원칙】 교육, 훈련, 정보제공

협동조합은 조합원, 선출직 대표, 경영자, 그리고 직원이 협동조합의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을 제공한다. 협동조합은 일반 대중, 특히 젊은 세대와 여론 주도층에게 협동조합의 본질과 혜택에 대해 정보를 제공한다.

협동조합은 가치와 원칙에 기초를 둔 운동이기에 교육은 협동조합의 발전에 직접 영향을 준다. 특히, 이 조항은 미래의 불안에 고통스러워하는 오늘날의 청년 세대에게 의미가 있다. 청년 및 학생협동조합에서 협동조합의 리더십과 소득 창출에 필요한 기술을 몸에 익힌 청년들이 성공적인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는 것을 목격한다. 이런 기업가 정신은 한 개인의 우수성으로 설명되는 일반 기업에서의 기업가 정신과는 다른 것이다. 즉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면서 좀 더 평등한 글로벌경제를 만들어내는 ‘미래 설계자’가 되는 것인데, 여기에 협동조합의 교육이 큰 역할을 한다.

【제6원칙】 협동조합 사이의 협동

협동조합은 지방, 국가, 지역, 국제적 차원의 조직들과 협력함으로써 조합원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봉사하고 협동조합 운동을 강화한다.

연대의 가치를 표현한 원칙인데, 협동조합 사이의 협동은 협동조합기업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협동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대표성을 강화해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 특히 일반 기업과 경쟁하는 시장에서 활동하는 협동조합 기업에 연대는 큰 도움이 된다. 공동의 목표를 위한 협동은 때로 개별 협동조합에 희생을 요구하기도 한다. 따라서 개방적이고 신뢰할 만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이 있어야 하며 자원과 시간, 문제 해결 능력이 필요하다. 아울러 연합회 등 협동을 지원하는 체제를 만들어서 활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7원칙】 커뮤니티 관여

협동조합은 조합원이 승인한 정책을 바탕으로 커뮤니티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활동한다.

협동조합은 사업을 운영하는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며, 협동조합은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협동조합의 성공은 지역사회와 환경이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능력에 달려있다. 스페인 몬드라곤 지역의 협동조합 기업 등 성공한 협동조합이 지역사회의 발전에 큰 영향을 준 사례는 수없이 많다. 구체적으로 의료, 주거, 교육, 보육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취약계층을 위해 일자리를 만드는 등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 앞으로 협동조합은 이런 전통을 지역사회를 넘어 확대해 국가와 세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