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기업들은 지금 사회적 가치 ‘열공’ 중

admin 2018. 01. 30
조회수 1130
Weconomy | 이봉현의 책갈피 경제
<빅프라핏>, 신현암·이방실 지음/흐름출판(2017)

네슬레의 농학자들이 커피 묘목을 살펴보고 있다. 네슬레의 농학자들은 다수확 묘목을 얻기 위해 연구개발을 하고, 여기서 얻은 기술을 다시 농민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네슬레 제공
네슬레의 농학자들이 커피 묘목을 살펴보고 있다. 네슬레의 농학자들은 다수확 묘목을 얻기 위해 연구개발을 하고, 여기서 얻은 기술을 다시 농민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네슬레 제공


“머리가 아픕니다. ”지난 연말 만난 에스케이(SK)의 한 임원은 한숨을 쉬었다. 최태원 회장이 화두를 던진 ‘사회적 가치’가 알쏭달쏭한데, 뭔가 실행안을 내놔야 하니 난감하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최근 몇 년간 수익을 내면서 사회문제 해결에도 기여하는 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올해 신년사에서는 “사회적 가치 창출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필수 요건이 되고 있다”고 했다. 사내에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도 벅찬데…” 하는 볼멘 목소리도 있지만 회장이 “미래에 기업이 살길은 여기에 있다”고 드라이브를 거니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계열사마다 이익과 사회적 가치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안을 궁리하고 있다. 에스케이의 이런 변화에 다른 기업들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경제와 사회적 가치 모두 충족하는 전략 고민
사회문제 해결은 혁신의 한계를 돌파하는 열쇠

공공기관들도 사회적 가치를 ‘열공’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효율성, 수익성뿐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 창출, 환경, 지역경제 활성화 같은 사회적 가치를 얼마나 창출했는지까지 측정해 반영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기관마다 어떤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창출할지 고민 중이다.

기업이 빈곤, 안전, 환경 등 사회문제에 대응하는 움직임은 어제, 오늘 시작된 것은 아니다. 기업은 오로지 이윤 창출을 위해 존재한다던 시절도 있었고, 이익을 많이 내 주주가치를 올리는 것이 지고의 목표라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기업이 잘 되면 세금 많이 내고 고용 늘려서 사회도 좋아진다는 공식이 깨지면서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라는 압력이 높아졌다. 2000년대 이후 시에스아르(CSR, 사회책임경영)가 확산된 것도 이 때문이다.

사회적 가치에 대한 관심은 사회문제 해결을 기업의 본업과 연계하는 쪽으로 진화해갔다. 2011년 미국 경영학자 마이클 포터와 마크 크레이머가 ‘자본주의를 치유해 성장의 새로운 물꼬를 트는 방법’이란 논문에서 제시한 시에스브이(CSV, 공유가치창조)도 그 중 하나다. 특히 시에스브이는 기업의 자원과 지식을 활용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기업의 장기적 경쟁우위 확보 전략으로 제시하고 있어 단순한 기부에 만족하지 못하던 경영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이 지난해 6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17 사회적기업 국제포럼에서 사회문제를 기업 경영 방식으로 해결하는 사회적 기업을 10만개까지 키우자고 연설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이 지난해 6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17 사회적기업 국제포럼에서 사회문제를 기업 경영 방식으로 해결하는 사회적 기업을 10만개까지 키우자고 연설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빅프라핏>은 시에스브이를 통해 새로운 사업의 영역을 찾아내고 소비자, 시민단체, 정부의 지지와 협조를 끌어내며, 이를 통해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 기업의 사례를 정리한 것이다. 소개된 사례 중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신발 한 켤레를 사면 개도국에 있는 맨발 아이에게 한 켤레를 기증합니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시작한 탐스슈즈가 있다. 창업자인 블레이크 마이코스키가 아르헨티나 여행 중 신발도 없이 돌아다니는 어린이가 많다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아 시작한 사업이다. 2006년 설립 당시 200 켤레만 팔아도 좋겠다고 했으나 스칼렛 요한슨 등 할리우드 스타 한두 명이 신기 시작하면서 에스엔에스를 타고 여기저기 퍼져나갔다. 내가 하나를 사면 어느 어린이가 발바닥을 찔리지 않고 축구를 할 수 있다는 ‘원포원’ 모델이 관심을 끌었다. “탐스슈즈를 신어야 의식 있는 소비자다”는 분위기가 퍼졌다. 2003년 누적 판매량이 1천만 켤레를 넘었고 2016년 중반에는 7천만 켤레를 판매했다. 신발을 무료로 나눠주는 것이 그 나라 신발산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고, 판매용 신발은 기존대로 중국에서 생산하고, 기증용 신발은 현지 노동자를 고용해 생산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지은이는 “수익을 내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성장전략이 향후 기업경영의 핵심이 될 것”이라며 경영자가 사회성 있는 목적의식과 사명을 경영에 접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의 경영컨설턴트인 후지이 다케시 같은 이는 한국과 중국에 덜미를 잡혀서 출구를 찾지 못하는 일본 기업의 혁신 전략으로 시에스브이를 제안한다(<시에스브이 이노베이션>, 한언, 2016). “시에스브이는 글로벌 경쟁 환경 아래 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말려들지 않고 스스로 시장을 창조하고 리드하기 위한 이노베이션(혁신)”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 예로 미국 기업 지이(GE)의 ‘에코매지네이션’(Ecomagination)을 예로 든다.

2005년 지이의 제프 이멀트 회장은 ’그린 이즈 그린’(Green is Green) 이란 슬로건을 제시하며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경영을 제시했다. 앞의 그린은 환경이고 뒤의 그린은 녹색잉크로 인쇄되는 달러화를 의미했다. “환경이 돈이 된다”는 뜻이었다. 구체적으로 △친환경 기술개발을 위한 연구비를 2배로 늘리고 △친환경 관련 제품 매출을 최소 200억달러로 확대하며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한편, 지이 사업활동의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며 △항상 정보를 공개한다는 등의 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비용부담이 늘어날 게 뻔해서 사내외의 반응은 싸늘했다. 처음 에코매지네이션을 사내에서 발표했을 때 35명의 임원 중에 이 개념에 찬성한 사람은 5명뿐이었다. 하지만 이멀트 회장은 단기적 시각에서 나오는 비판에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환경오염’이라는 세계가 안고 있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지이가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하며 이것이 지이를 더욱 강한 회사로 만들 것이라 설득했다. 이 목표 달성을 위해 지이는 2008년 리먼 사태 이후에도 연구개발 투자를 줄이지 않았다. 결국 지이가 환경 관련 사업으로 전 세계에서 달성한 매출은 에코매지네이션 개시 직전인 2004년의 100억달러(전사 매출 중 8%)에서 2011년에는 210억달러(전사 매출의 14%)로 2배 증가했다.

이런 지이의 성장은 환경문제 해결이란 대의명분 아래 엔지오 등의 지원을 끌어내고 다른 기업이 따라오기 어려운 경쟁의 구도를 짰다는 점에서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창조하는 시에스브이의 전형이다. 후지이 다케시는 “이처럼 세계적으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기업 입장에서는 차세대의 거대한 이노베이션, 즉 신사업 창조의 아이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는 이미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한다.

앞선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얼른 모방해서 따라잡는 ‘빠른 추격자’ 전략이 한계에 부닥친 것은 일본뿐 아니라 한국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사회적 가치를 비전으로 제시하고 조직의 힘을 모아가는 기업인이 유능한 경영자인 시대이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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