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의 눈

대선의 출발, 4·16 그날

HERI 2017. 03. 13
조회수 959

[한겨레 프리즘]


대한민국 여기저기에서처럼, 그날 밤 우리 동네에서도 뜨거운 파티가 열렸다. 겨우내 촛불 드느라 수고한 서로를 위로하고 축하했다. 삼년 전 그날의 참사가 없었다면 서로 비껴갈 인연들이었다. 세월호 이후의 다른 세상, 좋은 사회를 고민하면서 맺어진 관계들이었다. 이 시간을 있게 해준 세월호의 희생자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소회가 이어졌다. 때로 울컥했고, 때로 뜨거웠다. 


2015년 <한겨레>는 신년조사에서 해방 후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물었다. 이 질문에 50대 이상은 한국전쟁을, 40대 이하는 세월호를 꼽았다. 한국전쟁이 우리가 세운 국가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중장년 세대의 공포를 보여준다면, 세월호 참사는 그 국가가 우리를 버릴 것 같다는 충격을 상징한다. 세월호는 우리 시대의 묵시록이다. 이 시간 이후엔 탄핵이 덧붙여질지도 모르겠다. 망가진 국가를 우리 힘으로 다시 일으켜 세운 시민혁명으로 말이다. 이번 대선이 역사적 대선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다. 


이번 대선은 촛불광장의 희망을 일상의 현실로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여론조사를 보면 그 방향은 공정사회와 양극화 해소로 모인다. 국가를 사유화한 박근혜 정부를 경험하면서 공정사회를 향한 염원이 절실해졌고, 그 물적 토대로 양극화 해소가 꼽히는 것이다. 부자와 빈자, 강자와 약자 모두에게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이번 대선에 부여된 시대정신일 것이다. 


대선은 이를 위한 정책적 과제와 해법을 두고 경합하는 장이다. 대선 구도만 보면 야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일으킨 거대한 지각변동의 결과다. 집권세력에 대한 심판, ‘헬조선’ 리셋은 이 시대의 최소 상식이다. 문재인 대세론은 이런 정권교체 욕망이 가능성 높은 야당 후보에게 집중된 결과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 이후엔 심판 구도에 미래 구도가 겹칠 것이다. 어떤 세상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비전과 정책의제들을 놓고 정치세력들이 경합하는 새로운 구도가 펼쳐진다. 


탄핵은 진보와 보수가 정치세력과 유권자 차원 모두에서 연대를 이룬 진귀한 정치적 경험이다. 이성과 상식에 입각하지 않은 탄핵 반대 극우세력의 존재가 80%의 연대를 가능하게 한 결정적 조건이었다. 이제 탄핵이라는 공통의 목표가 소멸되면서 이 잠정적 연대의 끈도 약해질 것이다. 


공통의 적이 사라진 후의 각개약진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디로, 어떻게 가겠다는 것인지가 중요하다. 지지 세력이 큰 문 전 대표에게는 상충하는 수많은 요구들이 쏟아지고 있을 것이다. 앞서 달린다고 부자 몸조심 흉내내지 않길 바란다. 국민들은 적당한 타협이나 봉합이 아니라 책임있는 비전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가 진짜 시험대다. 문재인만 아니면 된다는 정치세력들은 딱하다. 이들에게는 한마디만 하고 싶다. 짝짓기할 시간에 국민을 보라. 국민들은 책임을 이행했다. 이제는 정치인들의 차례다. 


정치학자 셰보르스키는 민주주의는 자신들이 뽑은 통치자를 해고할 수 있는 체제라고 말했다. 대통령을 직접 끌어내림으로써 민주주의의 효능을 체감한 시민들에게 이번 대선은 달랑 투표권 하나 행사하는 기회가 아니다. 2014년 4·16 이후 억압되고 유예되었던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과제에 착수하는 첫걸음이다.

늦은 밤까지 이어진 우리 동네 축하파티는 세월호 참사 3주기 행사를 알리는 펼침막을 거리에 걸고 마무리되었다. 그들의 희생 위에 이 시간이 있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조사센터장 hgy4215@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http://hani.co.kr/arti/opinion/column/7861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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