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등록: 2010.04.05 수정: 2014.10.20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기업 노리단의 공연 모습

 


88만원 세대. 지금 한국 20대에게 주어진 '오명'입니다. 한 세대의 이름이 이렇게 치욕적으로 붙여진 일은 없습니다. 'X세대'라든지, '베이비붐 세대'라든지, 무언가 그 세대의 특징을 신비롭거나 과학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는 많지요. 그러나 이렇게 신분으로 표시되는 일은 본 적이 없습니다.


때로 그저 묻고 싶습니다. 20대 대학생, 당신들은 지금 안녕한가요? 이런 오명을 듣고도 북받치거나 좌절하지 않았나요? 세상이 그대에게 붙여준 이름을 안고 살아가는 대신, 세상의 주인이 되어 세상에게 이름을 붙이며 살아가고 싶지 않은가요?


청년의 한숨은 깊어만 갑니다


경제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냥 어려운 게 아닙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경제성장을 떠받쳐온 경제 패러다임이 변하는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제가 어렵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요?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수출이 어렵고, 경상적자가 나고, 환율이 치솟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게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가 궁금해 지지요.


사실 대부분의 '경제인'에게 불황은 일자리 안정성의 위협으로 다가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지역 노동부 고용안정센터에는 실업급여 신청이 몰려들고 있다고 하네요. 전년 같은 기간의 열 배나 된다는 이야기도 나오지요. 특히 새로 노동시장에 뛰어들려는 청년들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아주 적고, 그나마 있는 일자리마저 척박한 조건입니다.  정부는 일자리를늘린다더니 짧은 기간 동안 단순 업무만 하는 인턴만 늘린다고 합니다. 일자리를 나눈다더니 갓 입사한 선배 신입사원 임금을 크게 깎는다고 합니다.청년들의 한숨은 깊어만 가지요.
 

그럼 정치와 사회는 어떨까요? 정치와 사회 역시 어지럽습니다. 그냥 어지러운 게 아닙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진보한 많은 업적이 과거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권위주의 타파를 외치던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국회에서는 재벌기업이 미디어도 은행도 경영할 수 있게 해주는법을 난투극 끝에 통과시키네요. 용산 철거민 시위진압 현장에서 일어났던 비극적인 참사에 대해서는 누구도 사과하지 않고, 희생자가족은 여전히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사회에 채 발을 담그지도 않은 20대 청년, 대학생들은 어지럽습니다. 한국 경제는 이런 청년들에게 어떤 희망을 줄 수 있을까요? 지금 이 경제를 만들어 온 기성 세대는 청년들에게 무엇을 물려주며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이야기합니다. 억대 연봉은 잊으세요


한참 고민하던 끝에, 저는 솔직해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금 청년들에게 '억대 연봉과 안정된 일자리'의 희망은 없습니다. 출퇴근이 규칙적이고 신입사원이라도 책임과 권한이 분명한'외국계 기업형 일자리'의 꿈도 몇몇에게만 허용되겠지요. 빌 게이츠처럼 창업을 해서 성공해 엄청난 거부가 되는 꿈은, 아예 생각조차하지 않는 편이 낫겠네요.'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든다더니 '독점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있는 지금 모양새로 보면 그렇지요.


세계 경제 역시 '축소의 시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출로, 신용카드로, 대형 국책사업으로,경제 성장을 이끌던 오던 외형 성장의 시대는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빚을 내서 아파트 한 채 장만한 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유학비를 마련하는 젊은 직장인의 세태는 이제 옛날 일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저성장 시대가 본격적으로 찾아오고 있는 것이지요.

대부분의 자산가치는 하락하고, 대부분 기업의 매출은 정체 또는 축소되고 있습니다.합리적인 경제인이라면 기회나 매출을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위험과 비용을 생각하면서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입니다. 어떤 일을 시작할때 그 일이 벌어다 줄 매출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그 일에 투입될 비용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비용을 최소화하는'비용과의 전쟁'이 기업 경영의 화두이면서, 개인의 경제적 삶의 화두이기도 한 시대가 왔습니다.


그런데, 기성세대는 정말 행복했을까요?


그럼 청년은 한국경제와 관련해 무슨 꿈을 꿀 수 있을까요? 그저 우울해하면서 불운을 시대의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시대적 상황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래서, 부동산 가격이 뛰고, 수출이 늘어나고, 경제성장률이 높아지고, 신용카드를마음껏 쓰던 그 시대, 한국인은 정말 행복했던가? 일주일 80시간 일을 하고, 나라가 부르면 베트남으로 사우디로 뛰어가야 했던 우리 아버지는, 부러운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부터, 청년의 미래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합니다.
 

'노리단'이라는 사회적기업이 있습니다.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이 기업의 슬로건은 '일하며 논다, 배운다'입니다. 여기소속된 사람들은 일과 놀이와 배움을 구분하지 않고, 함께 모두를 이룬다는 뜻입니다. 재활용품을 이용해 만든 악기를 두드리면서, 전세계를 누비며 공연을 하면서 그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돈보다 재미가 중요하다. 성공보다 배움이 중요하다. 성장보다 행복이 중요하다. 누구나 동의하는 말이지만, 누구도 실천에옮기기 어려웠습니다. 바로 눈 앞에 돈이 보이고, 성공이 보이고, 성장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파트값 상승, 주가 상승, 억대 연봉의유혹을 누구도 뿌리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유혹이 없어 절망적인 것 같은 바로 지금이, 동의하지만 실천하지 못하던 그 진리를 실천할 수 있는 때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세계경제와 남북관계를 고민하며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이 사회를 혁신하고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닙니다.일하며 놀며 배우는 사람, 자기만의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 그러면서 이웃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사회를 혁신하고 세상을 바꿉니다. 그런 삶이 성공입니다.
 


HERI 청년 사회혁신가 학교를 아십니까?


노리단과 같은 사회적기업을 연구하고 컨설팅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수행해 온 한겨레경제연구소(HERI)가 이번에 'HERI 청년 사회혁신가 과정' 교육프로그램을 여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고시와 미팅 사이를 오가는 삶이 의미 없게 느껴지나요? 사회를 혁신하고 싶으면서도 즐겁게 살고 싶기도 한데, 방법을 모르겠다고요? 일하며 놀며 배우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고시 정도야 포기할 수 있다고요?


HERI 청년 사회혁신가 과정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교육입니다. 한겨레경제연구소의 사회적기업 컨설턴트들, 네이버 등 인터넷 기업에서 일하다 패션 분야 사회적기업에 뛰어든 김진화 오르그닷 대표, 한국 사회적기업 지원정책의 기초부터 갈고 닦았던 이은애 함께일하는재단 사무국장... 또 비영리 영역에서 세상을 바꾸는 데인생을 살고 사는 사람들... 모두가 만나기 힘든 강사진입니다.


이들을 직접 만나 강의를 듣고 대화를 나누며 인생의 멘토로 모실 수 있는 기회를 청년과 함께 하고싶어 만든 과정입니다. 수료하고 나면 사회적기업이나 비영리기관 등에서의 인턴십 기회도 만날 수 있네요.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에 그저 적응하는 법을 배우는 대신, 주인이 되어 그 사회를 혁신하는 법을 배우고 싶은 대학생들이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만든, 토론형 교육 과정이기도 합니다.
 


'사회 혁신'(social innovation)은 이미 미국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단어입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 사회혁신수석실을 설치하고, 구글 출신의 젊은 인도계 여성을 수석비서관으로 앉혔다. 제대로 된 사회 혁신을 시도하려는 참인 것이지요.

무릎꿇지 마세요,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삶의 원리는, 위기 상황에서 더욱 명료하게 보이는 법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진짜 경제가 무엇인지, 좋은 일자리가무엇인지 제대로 정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행복한 일자리, 착한 경제를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저도 함께 그 일을 고민해 보고 싶군요. 사실 청년이 앞장서면 할 수 있습니다. 20대가 앞장섰을 때 사회에는 늘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민주화도 그랬고, 벤처기업 붐도 그랬습니다.


돈보다 행복을기준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선택하십시오. 사회적기업에서든, 비영리기관에서든, 창업을 통해서든, 적게 벌더라도 '착한 일'을 하는 데초점을 맞춰 미래를 개척하십시오. 결국 그게 미래 한국경제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아직 무릎꿇지 마세요.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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