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등록: 2010.04.21 수정: 2014.11.10 


월드컵을 볼 권리는 월드컵조직위원회의 소유인가? 야구경기를 볼 권리는 프로야구단의 소유일까? 만일 그렇다면 건물을 볼 권리는 건물주, 거리 공연은 공연자 소유이고 독점적이고 팔 수 있는 것일까? 미국 프로야구단과 이웃주민 사이의 다툼과 그 의미.


시카고 커브스(Chicago Cubs).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유서깊은 구단이다. 리글리 필드(Wrigley Field)는 100년에 육박하는 역사를 자랑하는, 시카고 커브스의 홈 구장이다.


야구 경기장 옆 빌딩 옥상, 또 하나의 관중석


이 리글리 필드에는 야구장 자체 이외에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 야구장에서 열리는 야구 경기를 제대로 구경할 수 있는 전망을 갖고 있는, 주변 건물 옥상이다. 시카고 커브스의 경기가 열릴 때마다, 옥상에 나와 환호하는 시카고 시민들은 외지인에게는 또 다른 구경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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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의 리글리 필드와 그 주변. 빌딩 옥상에서 경기장을 내려다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출처: wikipedia.org)



그런데 2002년, 시카고 커브스는 경기장을 들여다볼 수 있는 옥상을 가진 주변 건물주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건물 옥상에서 야구 좀 구경했기로 뭐가 그리 큰 문제냐고? 이렇게(왼쪽 사진)까지 되면 조금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게 시카고 커브스 구단 쪽 입장이었다.


 주변 빌딩들 중 높은 곳의 옥상에 올라가면 야구장이 내려다보였다. 그런데 몇몇 빌딩에는 아예 야구장 관중석처럼 좌석을 수십 개씩 설치했다. 문제는 거기서 입장권까지 팔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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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의 리글리 필드와 주변 빌딩. 옥상에 관중석이 설치되어 그 곳에 입장한 관중들도 경기를 관람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출처: wikipedia.org)

















그 자리는 점점 인기가 좋아졌고, 회사 야구 동호회 같은 단체 손님은 자기들끼리 떠들면서 야구를 볼 수 있는 빌딩 위를 원래 야구장 관중석보다 선호하기도 했다. 아예 그 사업을 노리고 빌딩을 짓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바베큐나 맥주 같은 간식도 제공하면서, 동료들끼리만 앉아서 야구를 볼 수 있으니, 아주 좋은 야유회 장소로 떠올랐다.


매출 15억원의 옥상 관중석 장사


주변의 열 세 곳 빌딩에서 비즈니스를 했고, 그 중 잘 되는 곳은 연간 138만 달러, 즉 15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고 추정되기도 했다.


그래서 시카고 커브스는 빌딩주들이 그때까지 벌어들인 입장권 수입에 대해 일부를 시카고 커브스 쪽에 내놓을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야구 경기를 훔쳐보는 댓가로 얻은 수입이니 당연히 나눠야 한다는 논리였다.


쟁점은 빌딩 위에 올라가서 야구를 본 사람들 때문에 리글리 필드의 입장권 수입이 줄었느냐였다. 법정은 시카고 커브스쪽의 입장권 수입이 줄지 않았다면 배상을 할 책임이 없으나, 실제 관중 수입이 줄었다면 명백하게 손해 배상이 필요한 건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그걸 입증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 때 통계학이 등장했다. 어플라이드 마케팅 사이언스가 사례를 맡아, 설문조사와 회귀분석 등의 기법을 이용해 리글리 필드의 손해 내역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빌딩 옥상 관중석 설치와 리글리 필드 수입 감소 사이에는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판단은 모두에게 받아들여졌고, 결국 빌딩주 11 명이 입장권 수입의 17%를 시카고 커브스 쪽에 넘기는 것으로 합의되면서 소송은 마무리됐다. 시카고 커브스 구장은 '공식 옥상 관중석 빌딩'을 홈페이지에 걸어두기도 했다. 어려운 숫자인 것만 같은 통계학이 돈을 만들어 낸 이 된 사례이기도 하다.


법정에서도 통하는, 돈 되는 통계학
사실 이 이야기는 MBA 재학 시절, 마케팅 모델 시간에 통계학을 이용해 법정소송 컨설팅을 해주는 “어플라이드 마케팅 사이언스”(Applied Marketing Science)의 최고경영자 밥 클라인이 수업시간에 와서 해준 것이다.


법정에서 통계학이 통한다는 이야기는, 마케팅 모델 수업 중 가장 흥미로워던 대목 중 하나였다.


실제 미국 법정은 1970년대부터 설문조사 등에 기초한 통계분석결과를 신빙성 있는 증거물로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통계학자가 법정에 증인으로 나서 증언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이 소송 과정에서 떠오르는 재미있는 의문이 하나 있다. 야구 경기를 한다면, 그리고 벽으로 막혀 있지 않다면, 그 경기를 볼 권리는 경기를 주최하는 쪽이나, 경기장 주인에게 독점적으로 속해 있을까? 질문을 좀 더 넓혀 보면 이렇다. 멋진 빌딩을 볼 권리는 빌딩 소유주에게만 독점적으로 속하나? 길거리 예술공연은 주최측에게 속해 있는 것일까?


올림픽과 월드컵을 볼 권리는 누구에게 얼마나 속하나?

이 소송 결과에서도 '볼 권리'에 대한 정의는 엄격하게 내려진다. 야구 경기를 지역주민들이 그저 빌딩 옥상에서 경기를 구경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야구 경기 자체는 사적으로 진행되지만, '볼 권리'는 공공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멋진 건물을 볼 권리는 당연히 공공에 속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빌딩 소유주들이 이를 이용해 자신의 영리를 추구했고, 그 과정에서 텔레비전 스크린 등 각종 미디어 장비를 활용해 중계했던 것이 문제가 됐을 뿐이다.


지식에 대한 권리, 즉 저작권의 공적 측면과 사적은 측면을 규명하는 것은 중요하다.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가 연결되어 있는 지금 더욱 그렇다. 어느 만큼이 누구에게나 접근권을 허용해야 하는 공적 영역이고, 어느 만큼이 사적 독점권과 팔 권리를 유지시켜줘야 하는 영역인가?


동계올림픽과 월드컵 중계권을 <SBS>가 독점하는 것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더욱 궁금하다. 또 그 중계권을 갖기 위해 엄청난 돈을 올림픽조직위원회(IOC)나 국제축구협회(FIFA)에 지불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 더더욱 궁금하다.


저 멀리 어디에서인가 열리고 있는 스포츠 경기를 볼 권리는, 누구에게 얼마나 속해 있어야 하는 것일까? 발상을 완전히 바꾸어서, 올림픽 경기 중계를 공공성 있는 비영리기관이 주관하고 실비만 중계권료로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 보면 어떨까?


* 단행본 'MIT MBA 강의노트'의 일부를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
* '단행본 공개 프로젝트'의 일환입니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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