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등록: 2010.04.20 수정: 2014.11.10


언론과 애널리스트들은 매일 ...한 이유 때문에 주가가 올랐다, 또는 내렸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이들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이들은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적으로, 공정하게 시장을 분석 하고 있을까?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나는 월스트리트에서 석달 가량 인턴 애널리스트로 일한 경험이 있다. 가장 똑똑한 전문가들이 어떤 '스토리'를 증시로부터 만들어 내는지 비교적 가까이서 관찰한 셈이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소장 딘 베이커의 <약탈과 실책>을 읽던 중,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 때 미국 전문가들이 어땠는지를 지적한 대목을 읽으며 당시를 떠올렸다.

" 하원의 투표 직후에 주가는 급락했다. 이 주가 급락 사태를 놓고 지배 집단에서는 주식 시장에서 증발한 1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긴급 구제 법안을 부결한 사람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의회가 처음 그 법안을 거부했을 때보다 최종적으로 의회가 그 법안을 의결한 뒤에 주식 시장의 주가가 더 큰 폭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어떤 매체도 이런 주가 하락에 대해서 의회를 성토하고 나서지 않았다." <약탈과 실책>(딘 베이커), P168.


2008년 9월의 일이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고,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이 있었다. AIG도 위기에 빠졌고, 미국 정부는 지분 80%를 떠안았다. 9월20일, 미국 재무부 장관이던 헨리 폴슨은 세 쪽 분량의 은행권 회생 계획안을 발표한다. 의회가 7천억 달러(700조원)를 사용할 수 있도록 의결해 주면 이 자금으로 여러 은행의 부실채권을 매입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분노한 시민들이 의원실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가장 돈이 많은 은행들이 파산하는데, 왜 국민의 세금을 들여 구제해야 하느냐는 항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엘리트 계층의 의견은 일치했다.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은 의회가 이 구제안을 통과시켜야 경제가 살아난다고 연설했다. 금융 엘리트도 관료도 언론도 모두 구제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큰 일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이 구제안 통과 여부에 따라 향후 증시 향방이 갈린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딘 베이커는 '미국 역사상 이처럼 엘리트와 여론의 의견이 극단적으로 갈린 일도 없었다'고 책에 썼다.


그들이 이야기했던 '큰 일'이 벌어졌다. 하원은 구제안을 부결시켰다. 의원들이 시민들의 여론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증시는 예고된 대로 폭락했다.


전 문가들은 하원에 대해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의회는 구제안을 구제해야 한다'고 썼다. 증시에서는 폭락의 원인이 하원의 구제안 부결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신문에는 10억 달러 이상의 주식 가치 하락분에 대해 하원의원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결국 하원은 견디지 못하고 구제안을 다시 통과시켰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구제안이 하원을 통과한 날에도 주가가 폭락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하락 폭은 부결시켰을 때보다 더 컸다.


그러나 이번에는 누구도 '하원이 구제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에 증시가 폭락했다'고 분석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늦게 통과시켰기 때문에 재차 폭락했다'는 기묘한 분석이 눈에 띄었다. 또는 전혀 다른 이유로 폭락을 설명했다. 구제안을 통과시키지 않았을 때는 악재였는데, 구제안이 통과되자 이는 아무런 재료도 되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온 것이다.


'전문가'는 늘 유혹에 빠진다. 늘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할 책임감을 느낀다. 그래서 끊임없이 현상에 대해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시장의 변화에 대해 그럴 듯한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능력인 듯한 느낌을 갖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어쨌든 사람들은 끊임없이 스토리를 소비한다. 그 설명의 옳고 그름도 중요하지만, 불명확한 현상의 집결지인 시장을 명확하고 재미있게 설명해 내는 것도 중요하다. 여러 시각에서 재미있는 스토리가 나오면, 그들 사이에서 소비자는 선택해 행동할 수 있으니, 균형만 잡힌다면 우리 지식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문제는 이 전문가들이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적이지 않을 때다. 증시 전문가는 금융권에 재직하고 있다. 재직하는 금융사에 더 유리한 구제안이 나와야 하고, 통과되어야 한다. 그게 내 수입과 고용안정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그럴 때, 이들은 입을 모아 한 입장을 지지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건설업체와 부동산 개발업자의 광고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거품은 광고경기를 호전시키기도 한다. 한편 전문가의 말을 듣고 시각을 정하는 게 일반적인 기자들이 스스로 독립적 시각을 갖기 어려워, 전문가의 시각을 따라갈 수 밖에 없는 문제도 있다. 전문가 출신이거나 전문가와 유착된 관료도 같은 문제를 갖고 있다.


은행의 운명에 목숨을 걸고 있던 애널리스트들. 은행 출신이거나 은행과 유착된 관료들. 사업상으로나 전문성으로나 은행의 영향력 아래 있던 언론사와 언론인들. 2008년 9월, 미국 뉴욕과 워싱턴 사이에서 벌어진 해프닝은 이들 때문에 일어났다.


사실 이들은 매일 우리가 접하는 증시 기사의 코멘트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 '오늘 증시가 폭락한 것은 정부로부터 *** 정책이 발표된 것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오늘 종합주가지수가 상승한 것은 미국 하원에서 구제금융안을 부결시켰기 때문입니다.'


우리 귀에 너무나 익숙한 이런 코멘트들, 얼마나 믿어야 하는 것일까? 그들이 생산하는 정보로 가득 찬 한국의 경제 지식 시장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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