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등록: 2010.04.29 수정: 2014.11.10


'국책'과 '재벌'연구소와 독립 민간 싱크탱크들 사이에는 엄청난 자원과 영향력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그런데 여기에 '지역'이라는 변수를 더 넣으면, "불균형의 불균형"은 더욱 커진다.  이 글은 를 위해 지난 4월 8일 대구 지역의 '두뇌 집단'들(대구시청-대구경북연구원-대구사회연구소-대구시민센터)과 진행한 인터뷰 '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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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화려했던 'TK'의 명성은 온데간데 없고, 요즘 대구, 경북 지역의 각종 지표들은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청년) 실업률 최고와 지역총생산 최저의 순위가 몇년 째 바뀔 줄 모르고, 1만 채가 훌쩍 넘는 미분양 아파트들로 가득한 대구 시내는 "뭔가 잘못 되어도, 단단히 잘못 되었다"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동대구역에서 대구시청으로 가는 도중 들은 택시 운전기사의 하소연은 현재 대구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해 주었다. "도통 좋아질 기미가 안 보입니더. 뭐 이것저것 유치했다고 자랑하지만, 그게 우리같은 서민들 언제쯤 먹여 살릴 지, 실제로 먹여 살리기나 할 지 모르겠습니다. "


김범일 대구시장과의 짧은 면담을 끝낸 후, 김종환 정책기획관과의 한시간을 넘는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지금까지 어려운 시간이었던 것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새로운 발전을 위한 '틀'을 갖추는 시간이었고, 이제부터 '살'을 채워나간다면 다시 좋아질 것이라 믿습니다." 그렇게 되길 나도 바라지만, 그게 쉬운 일일까? "경직성 복지예산이 큰 부담인게 사실입니다. 기업투자유치를 위해선 충분한 재정지원이 필요한데, 돈은 없고... 깍을 수는 없겠지만, 복지예산은 당분간 더 늘이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 과연 그렇게 해서 기업들이 투자를 할 것이며, 그 투자가 다시 고용과 복지로 이어질까? 의문이 꼬리를 이었지만, 예정된 다음 인터뷰를 위해 자리를 떠야 했다.


그날 오후에 만난 홍철 대구경북연구원장 역시 "당장 먹고 사는데 필요한 '오늘의 사업'들에 더 많은 대안을 만들어 내야 한다. 성서공단, 구미공단이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오늘'보다, 중앙정부 예산 받아 화려한 수치로 포장되는 '내일'의 프로젝트에만 신경을 쓴다. 이래선 대구, 경북이 살아날 수 없다."라며, 대구경북연구원이 그러한 역할수행에 앞장 서고 있고, 더 노력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셨다. 대구 지역사회의 "쓴소리꾼"으로, "절반 NGO"로 대구경북연구원장 본인과 연구원이 나서겠다고 한다.


대구경북연구원 홍철 원장


홍철 원장은, 지난 2004년 대구경북연구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2010년 3월 세번째로 연임이 결정될만큼 대구, 경북 지역 내에서의 신망과 평판이 높았다. 대구경북연구원 소속 연구자들이 '연구소 내부 행정업무'와 '연구소 외부 관료대응'에 휘둘리지 않고,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관철시키고 있는 모습이 무척 인상깊었다. 하지만 과연  "홍철 원장 이후"까지 이런 모습이 유지될 것인지, 제도적 안착이 어디까지 가능할 것인지 등에 대한 의심은 버릴 수 없었다.


홍철 원장과의 인터뷰와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대구시민세터가 있는 서구, '반고개'라는 곳으로 갔다. 건물 앞에서 대구사회연구소 김영철 소장 일행과 대구시민센터 성상희 변호사를 만났다. 대구사회연구소 이창용 실장과 시민센터 성상희 변호사는, 희망제작소와 참여연대 인연으로 만났던 적이 있었던 분들이고, 김영철 소장과 전충훈 사무국장은 초면이었다.  8시가 다되어 만났던 탓에, 건물 입구 현관문이 잠겨 있었다. 이래저래 수소문을 하고, 문을 열기 위해 한참 애를 쓰던 중에, 사무실 청소를 해 주시는 아주머니께서 "들어갈라카는교? 진작 말하지예"하시며, 문을 열어 주셨다.


대구시민센터 사무실(다른 단체들도 함께 공간을 나눠쓰고 있고, 회의공간은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무실에는 다른 한 팀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공간나눔 자체를 중요한 사업으로 하고 있는 대구시민센터였기에, 사무실에는 여러 단체들의 이름과 홍보물이 보였다. 대구시민센터 스스로도 다른 단체들의 호의에 힘입어 비교적 싸게 입주해 있다고 했다. 대구 지역 사회가 처한 어려운 현실, 대구시와 대구경북연구원 등이 내리는 평가에 대한 재평가, 대구참여연대로부터 대구시민센터가 분리해 나온 문제의식, 대구사회연구소가 전통적인 연구과제들로부터 '사회적 기업', '사회적 경제' 쪽으로 주제를 확산, 전환하게 된 고민 등을 한참 듣고, 얘기 나눴다.


지역 경제의 활성화, 고용창출, 복지증대 등을 위해 이들이 고민하고 있는 바는 '발전'과 '개발' 중심의 시나 대구경북연구원의 그것과 성격을 달리 했다. 넓게 보아 '사회적 경제'라 할 수 있는 것들, 특히 사회적 기업이나 대구, 경북의 다양한 요소들의 협력에 기반하여 추진되는 낙동강고용촉진벨트 프로젝트 등은 대구지역 시민사회 두뇌집단의  정책역량이 총집결된 내용들이었다.


"각종 국책사업 유치 등을 통해, 실제로 만들어낸 일자리가 몇개이며, 발생한 경제적 효과가 얼마입니까? 그것들의 실제 규모는 극히 미미하거나, 부작용이 더 큽니다. 지금 우리가 진행하는 사회적 기업 관련 사업의 고용유발효과가 작다고 하는데, 오히려 더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일자리라 자부합니다." 대구사회연구소 김영철 소장의 설명처럼, 서로 다른 정책들이 '경쟁'하고, 그 결과가 '검증'되는 구조는, 그 자체로 바람직하다. 대구, 경북 지역의 '위기적 상황'이 가져다 준 '기회의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이들의 노력이 좋은 결실로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며 인터뷰를 계속 진행하였다.


취재를 위한 '인터뷰'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토론'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나 스스로 '활동가'+'연구자'+'기자'라는 복잡한 정체성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고, 상대방도 내게 뭔가를 듣고자 하는 상황이었다(인터뷰 한 내용을 포함한 대구의 지역 두뇌집단들에 대해선 조만간 HERI REVIEW 12호(2010년 5/6월호)를 통해 소개될 예정이라, 여기선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그리고 대구를 포함한 지역 두뇌집단들의 현황 자체를 틈틈히 따로 더 소개할 계획이다).  두시간 가량의 인터뷰가 끝난 후, 서울로 돌아가려 했으나 "이까지 왔는데 한잔 하고 가야지예"라는 권유에,  결국 자리를 옮겨 얘기를 더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어디로 갈 것인가를 정한 결과가 내겐 '작은 충격'이었다. 대구하면 보통 "먹을 게 없다"거나, "막창" 정도를 구워 먹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크다.  나 역시 잘해야 삼겹살에 소주 한잔 정도 예상했었다. 하지만 결론은 "홍어"를 먹으러 가는 것이었다. "아니, 대구에서도 홍어를 먹습니까?" "많이는 안 먹지예. 그래도 꽤 맛있는데가 있으이 한번 같이 가입시다." 그렇게 해서 찾아간 곳은 정말 "홍어 전문" 식당이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렀고, 다른 한팀이 불콰한 얼굴로 술 한잔을 하고 있었다. 그 옆에 자리를 잡고는 홍어를 주문했다. "너무 쎈거 말고, '보통'으로 주이소." 전남 구례에서 시집오신 아주머니는 홍어삼합 말고도 홍어탕과 홍어튀김을 내 주셨다. 서울에서 몇번 먹어봤기에 어느정도 익숙해졌다 싶었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음식이 홍어이다.


꽤나 맛있게 차려진 "대구의 홍어 삼합"


"대구에서 홍어와 팔공산 막거리를 먹었다는 걸 아무도 안 믿을테니, 사진증거라도 남겨야겠습니다." 하며 껄껄 웃었다. 홍어를 먹으면서 이날 인터뷰를 하며 들은 얘기가 떠올랐다.  "대구, 경북과 부산, 경남이 서로 협력하는 '영남권' 구도가 약해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대구와 광주 사이의 협력이 많이 늘고 있습니다. R&D 특구 유치도 그렇고, '빛고을'과 '달구벌'이 서로 힘을 합치자는 '달빛동맹' 구상도 그렇구요." 대구에서 홍어를 먹은 것만큼 흥미로왔다.  부산과 울산 등은 바다를 끼고 있고, 그것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생존과 성장의 전략을 만들어낼 여력이 되지만, 대구나 광주는 그렇지 못하다는 '동병상련'이 만들어 준 협력의 구도였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보자면, 대구나 광주 모두 위기상황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대구가 홍어를 만나"고, "달빛동맹"이 맺어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TK'가 'PK'와 같이 해야한다는 정치적 선동이 아니라, 대구, 경북과 부산, 경남이 '영남'이라는 틀로 경제적 활력을 모색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대구경북연구원이 제안하는 것처럼 호남과 영남 전체가 "남부권"이라는 하나의 단위로 생존과 발전을 꾀하는 것도 고민해 볼 일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고민은 남는다. 여전히 그 발상의 기저에는 "중앙정부로부터 대형 국책사업을 유치해냄으로써 지역활성화를 도모한다"는 것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대구시민센터에서 만난 대구 사나이들(뒷줄 좌로부터 김언호, 김영철, 이창용, 전충훈, 앞줄 성상희)


자칫 시작은 '지역'을 강조하는 것이지만, 결과는 '중앙'에 대한 종속이 강화되는 구조일 수 있는 것이다. 중앙정부의 구상과 계획에 가장 적합한 프로포잘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최고로 중시된다. 그것을 따내는데 성공한다면, 그 평판은 최고가 된다. 중앙과 지방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상하고, 재구성하는 능력은 뒤로 밀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끊임없는 '개발'과 '발전'으로 치장된다. "4대강 사업으로 지역에 풀릴 돈이 얼마"라는 식의 계산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선 당장 급한 사정을 이해못하는 바 아니지만, 그것이 또다른 늪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풀뿌리'를 더욱 튼튼히 하고, 그것으로부터 새로운 가치와 정책을 만들어 내려는 대구시민센터, 대구사회연구소의 실험은 더욱 소중히 느껴졌다. 뿌리가 튼튼해야, 늪에 빠지지 않거나 최소한 빠져 나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의 짧은 대구 탐방이었지만, 무척이나 많은 것을 생각케 한 시간이었다.  취재과정에서 대전과 강원도 상황도 접할 수 있었고, "지역의 문제를 전국적 차원에서 고민"하는 이들과 대화도 있었다. 오늘 이 글로 다 풀어내지 못한 고민과 자료 보따리를 조금씩 더 풀 기회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고보니 선거가 이제 한달 조금 더 남았다.


홍일표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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