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0.05.20 수정: 2014.11.10

2년 전 도쿄 출장을 갔을 때 본 일본 젊은이들의 수수한 옷차림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원래 검소한 일본인들이지만 한창 멋을 부릴 나이답지 않은 그들의 차림새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요즘 일본에는 ‘미니멈 라이프(minimum life)’라는 말이 널리 회자되고 있다고 합니다. 최소한의 생활로 만족하는 일본 20대의 소비 트렌드를 나타내는 열쇳말이랍니다. 왜 일본의 20대가 이런 ‘내핍형’ 소비패턴을 보이게 되었을까요?
이우광 삼성경제연구소 일본연구팀장은 <일본의 재발견>에서 28세의 젊은이를 예로 들어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들은 초등학교 시절에는 버블 붕괴를 경험했고, 이른바 ‘잃어버린 10년’ 기간에 사춘기를 보냈다. … 뿐만 아니라 성장과정에서 고베 대지진(1995년), 아시아 금융위기(1998년), 9.11테러(2001년) 같은 엄청난 사건을 경험했기 때문에 남보다 위기의식이 높아져 굉장히 자기방어적 성향을 띤다. 미래에 어떤 큰 일이 닥칠지 모르니 스스로 대비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것이다.”
실제 통계에서도 이들의 위기의식이 노후를 앞둔 고령층보다도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본 내각부가 1989년과 2008년에 각각 실시한 ‘국민생활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를 비교해보면 “저축이나 투자로 장래에 대비하고 있다”고 대답한 20대의 비율이 43.5%에서 57.4%로 증가했습니다.
미니멈 라이프의 소비 특성은 우선 돈을 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조금이라도 낭비라고 생각되면 절대로 돈을 쓰지 않으므로 자연스레 저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모든 소비를 다 줄이는 것은 아닙니다. 특이하게도 이들은 자동차나 술은 소비하지 않으면서도 어떤 일에 의의를 느끼거나 목적의식이 생기면 돈을 아끼지 않고 쓰는 이중적 경향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실제 금융위기 이후 일본에서는 불황 속에서도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제품이나 서비스 혹은 NGO 활동을 지원하는 채러티(Charity)상품의 인기가 높습니다.
저자는 앞으로는 점차 한국의 젊은이들도 일본의 젊은이들과 유사한 소비성향을 띨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한국의 20대도 성장과정에서 외환위기, IT버블 붕괴, 신용카드 버블 붕괴, 금융위기 등을 경험했으므로 이들에게도 ‘미니멈 라이프’ 의식이 잠재해 있기 때문입니다.
얼핏 보면 ‘미니멈 라이프’ 20대는 깍쟁이, 짠돌이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들을 ‘착한 소비자’라 부르고 싶습니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치를 지향하며 자신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소비하는 이들이 바로 ‘착한 소비자’가 아닐까요?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