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등록: 2010.09.02 수정: 2014.11.11


8월 22일은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한겨레경제연구소 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기업의 사회책임경영(CSR)을 생각하는 전문가들에게도 그랬을 것입니다. 처음으로 한중일 CSR전문가들이 모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평가하는 공동의 기준을 마련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8월21일 인천 베스트웨스턴프리미어호텔에 한국·중국·일본 사회책임경영(CSR)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아시아적 특성을 반영한 공동의 사회책임경영 평가기준을 만들어내기 위한 첫 만남이었습니다.


아시아 기업이나 전문가들이 모인 자리는 많습니다. 그러나 늘 테이블 위의 주제는 '서양의 새로운 스탠더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입니다. 미국에서, 유럽에서 만들어진 질서를 열심히 공부해 따라가려고만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고 있습니다. 아시아는 이제 세계 경제의 중심입니다. 한중일이 그 핵심에 있습니다. 이런 세상을 반영해서, 최초로 아시아 관점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 평가 모델을 만들어 보려고 모인 것입니다.


세 나라의 환경·사회·지배구조 전문가 10명으로 구성된 ‘아시아 사회책임경영 평가모델을 위한 전문가위원회’는 이틀간 회의를 열어,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을 평가하는 국제기준에 아시아 지역의 특성이 가미된 평가모델을 확정해 발표했습니다. 이 평가모델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사회책임경영을 잘 하는 서른 개 기업을 가려 뽑는 '동아시아 30'(East Asia 30)을 고르기 위한 평가에 활용될 예정입니다.


21일 첫날 회의는 이번 회의를 주관한 한겨레경제연구소(HERI) 이원재 소장의 환영인사와 전문가위원들의 자기소개로 시작됐습니다. 곧이어 위원회는 주철기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사무총장을 만장일치로 추대해 의장으로 선출했습니다.


바로 이어진 첫 세션의 주제는 ‘아시아적 특성을 반영한 CSR 평가지표 선정’이었습니다. 전문가위원회는 한겨레경제연구소가 준비한 자료 발표를 들은 뒤 아시아적 맥락이 반영된 평가지표에 대해 의견을 나눴습니다. 위원회는 지표 간 독립성 유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뜻을 모았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지표 간에 중복이 없고, 지표 내 빠지는 부분이 없도록 지표 선정기준을 마련했습니다.


아울러 이 세션에서는 환경, 사회, 거버넌스 세 영역의 상대적 중요성에서 아시아적 맥락을 반영한 CSR 평가모델의 차별성이 드러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였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분과세션에서 영역별 중요도 순서를 매겨보기로 했습니다.


또한 향후에는 사회 성과뿐만 아니라 재무 성과를 반영한 지표를 추가하자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재무적으로 얼마나 잘 경영되고 있는지도 사회책임경영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지요. 그런데 이번 평가에서는 한중일 기업 가운데 주요 대기업들만 평가 대상이 됩니다. 그러니 자동적으로 재무 성과가 상대적으로 좋은 곳이 대상이 되는 것이지요. 1차 스크리닝을 재무 성과로 하는 셈입니다.


열띤 토의를 거친 뒤 위원회는 평가 지표 선정과 관련해 개별 의견서를 작성해 제출했습니다. 위원들은 의견서에 빽빽하게 코멘트를 덧붙였더군요. 저녁 식사 자리에서까지 토론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들은 새벽까지 의견서 내용을 분석해 지표에 반영하느라 분주했답니다.


22일 둘쨋날 회의는 전날의 평가지표 선정 관련 전문가위원회 의견을 종합한 결과에 대한 토론으로 시작됐습니다. 거버넌스, 환경, 사회 각 영역에서 3분의 2가 넘는 전문가들이 찬성한 지표는 13개였습니다. 이들 13개 지표에 대해서는 약간의 조정을 거친 뒤 최종 의견일치를 이뤘습니다. 하지만 각 지표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국가별 의견 차가 뚜렷하게 나타나 예정시간을 훌쩍 넘겨서까지 깊이 있는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지표 관련 토론이 일단락되고, 예정된 분과회의가 시작됐습니다. 분과회의는 한·중·일 국가별 토의와 환경, 사회, 거버넌스 등 영역별 토의로 나눠 진행됐지요. 의견 차이를 보였던 앞의 회의와는 달리 분과회의에서는 의견수렴이 비교적 잘 이뤄지더군요.


역시 아시아 사람들은 내성적인가 봅니다. 모두 모였을 때는 제대로 표출되지 않던 의견이, 세 명씩 모여 머리를 맞대니 모두 쏟아져 나온 뒤 모아져 비벼지고 맛있는 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분과회의를 통해 영역과 지표의 중요도를 가늠하는 가중치에 대한 소그룹별 합의가 도출됐지요.


분과회의 뒤 이어진 전체 토의에서 그룹별 의견 취합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결과 내용을 토대로 의견을 나누면서 마침내 전문가위원회는 모두가 공감하는 결과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냈습니다. 원활한 의견수렴으로 만장일치로 첫번째 아시아 사회책임경영 평가모델을 완성됐습니다. 감격적 순간이었지요.


폐회식에서 에바시 다카시 호세이대 교수는 일본 전문가를 대표해서 “향후에는 나라별 지역차원의 지표를 반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제언을 했습니다. 중국을 대표한 양빈 칭화대 교수는 “이번 회의는 매우 의미있는 경험이었다”고 말하며 “아시아 사회책임경영 평가모델이 한·중·일 3국 사이의 든든한 연결고리가 될 것이다”라고 언급했습니다.


이어진 서명식에서, 9명의 참석한 전문가위원은 모두 함께 자리에 앉아 완성된 평가모델에 서명을 했습니다. 첫날 회의를 시작할 때는 나라별로 세 명씩 앉아 논의했는데, 이번 서명식에서는 나라를 모두 섞어 이름 알파벳순으로 앉았습니다. '하나의 동아시아'를 상징하는 의식이었습니다.


모두 앉아 자리 이름과 'East Asia 30'이 쓰여진 펜으로 서명하는 순간, 감동이 밀려오더군요. 그 어려운 과정을 모두 거쳐, 드디어 합의에 이르는 데 성공했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 흐뭇했답니다.


앞으로 할 일이 많습니다. 평가 모델이 완성됐으니, 이제 평가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아시아적 맥락이 반영되면서 글로벌스탠더드를 넘어서는, 새로운 아시아 사회책임경영 평가를 해내야 합니다. 기반은 탄탄하게 마련됐습니다. 'East Asia 30'과 아시아형 사회책임경영을 향한 한겨레경제연구소의 노력에, 앞으로도 깊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김진경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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