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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싱크탱크의 ‘회전문’ 매커니즘
왕리리(王莉丽)
1970년대부터 싱크탱크의 수는 미국에서 빠르게 증가했을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9년 초,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은 최신 내용으로 <2008년 세계 싱크탱크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위 기관이 정한 싱크탱크 정의와 판별 기준에 따면 현재 전세계에는 총 5,465 개의 싱크탱크가 있고 그 중 1,777 개는 미국에 있다. [1] 미국 싱크탱크가 한 세기에 이르는 발전을 거쳐 가장 성숙한 싱크탱크의 발전 시장이 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세계 각국의 싱크탱크 중에서 미국의 싱크탱크는 공공 정책과 여론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미국 국내의 공공 정책과 사회 사조 뿐 아니라 세계 정치 및 경제에도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핵심 원인은 바로 미국 싱크탱크의 ‘회전문’ 매커니즘이다.
1. ‘회전문’ 매커니즘과 주요 기능
‘회전문’은 미국 싱크탱크의 가장 특징적인 현상 중 하나이다. 미국 행정 부서는 중국 속담 "천자가 바뀌면 신하도 모두 바뀐다 (一朝天子一朝臣)" 처럼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부 관료도 이에 따라 대폭 바뀌게 된다. 4년마다 치뤄지는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정부 관료 인원은 4천여명에 달한다. 행정부의 부장관 등 고위직 임명은 의회나 당에서 결정하거나 극소수의 공무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 집합소인 싱크탱크에서 선발 된다. 이는 유럽이나 중국의 경우와 매우 다른 점이다. 4년마다 돌아가며 사임한 관료들은 싱크탱크에서 정책 연구를 담당하게 되고 다른 많은 싱크탱크 연구자들은 다시 정부 요직을 맡는다. 연구원에서 정책 집행자로 자리를 이동하며 학자와 관료 사이를 넘나드는 이런 현상을 ‘회전문’이라 일컫는다. ‘회전문’ 매커니즘은 싱크탱크의 여론 영향력이 정책 제정의 각 부분에 스며들도록 한다.
싱크탱크는 회전문 매커니즘이 만든 정부관료와 싱크탱크 사이의 인맥으로 정부 외부에 있어도 정부 내부와 긴밀한 연락을 유지할 수 있다. 미국 싱크탱크의 ‘회전문’은 지식과 권력의 가장 효과적인 결합으로 미국 정치에 활력과 효력을 줄 뿐 아니라 정부의 인재 양성과 인적 자원의 확보를 가능케 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이런 메커니즘은 미국 싱크탱크의 영향력이 미국 정치의 정책 결정 핵심에 직접 투입 되어 정책 결정 과정의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회전문의 중요한 기능은 구체적으로 다음 세가지이다.
1) 인적 네트워크 구축
미국 싱크탱크는 이른바 인맥 소통 방식 즉, 여론 전달 과정 중 인적 네트워크를 의지하여 정책 제정에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인맥 소통 방법으로는 정부 부서의 관직 역임, 대통령 선거 기간에 후보자 캠프 정책 고문 담당, 정부 관료에게 직접 전화 연락, 정책 제정자와 개인적인 식사나 내무 회의 초청, 국회 의원과 가까운 친분 유지, 전임 정부관료의 싱크탱크 재직 요청 등이 있다. 따라서 ‘회전문’은 위와 같은 인맥 소통 방식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도록 만드는 하나의 중요한 매커니즘이다. ‘회전문’을 통해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 될 수 있고 미국 싱크탱크가 직접 정부 정책 결정자와 소통할 수 있으며 나아가 정책 제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에는 현재 200여명의 연구원이 있고 이 중 절반은 정부 관료로 근무한 경험이 있으며 6명 이상은 재외공관 대사 출신이다. 현재 브루킹스연구소의 소장인 스트로브 탤벗(Strobe Talbott)은 클린턴 행정부 때 국무차관을 역임했다. 브루킹스 중국센터의 전 소장이자 선임 연구원인 제프리 베이더(Jeffrey Bader)는 브루킹스연구소로 오기 전에는 줄곧 정부에서 근무하며, 주 나미비아 미국 대사 (1999-2000년)와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 담당 국장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오바마 행정부로 복귀한 상태다. 브루킹스연구소 외교정책 선임연구원이었던 수잔 라이스 (Susan Rice)는 클린턴 행정부에서도 근무하였고 현재 오바마 행정부의 주 유엔 대사로 임명되었다. 지금까지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이 오바마 행정부의 관료가 된 경우는 36명 이상이다.
이런 인적 네트워크의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브루킹스연구소의 정책 제안이 빠르게 백악관 및 국회와 정부의 각 기관으로 전달되어 정책 제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다. 2009년 오바마의 방중 일정 전, 브루킹스연구소 중국센터와 동북아센터는 연합 공개회의를 열어 오바마의 외교정책에 대해 토론하였다. 중국센터의 전 소장인 제프리 베이더(Jeffrey Bader)도 참석하여 주제 발표를 하였다. 오바마 외교정책의 각 항목을 분석하고 설명하면서 발표 시작 전 자신이 브루킹스연구소 및 소장 스트로브 탤벗(Strobe Talbott), 동북아센터 소장 리처드 부시 (Richard Bush), 중국센터 소장 케네스 리버설(Kenneth Lieberthal)과 동료이자 친구인 것을 특히 강조하여 말했다. ‘회전문’이 브루킹스연구소와 오바마 행정부 사이에 견고한 인적 네트워크을 형성한 것이다.
브루킹스연구소 외에도 다른 미국 싱크탱크도 ‘회전문’을 통해 정부와 밀접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 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CFR)의 구성원 중 국무부 관료 출신이 10명이 넘고, 전임 재무장관, 국방장관 및 차관도 10명 가량 된다. 카터 행정부 당시 약 54명 정도는 외교협회(CFR)에서 관료로 초빙되어 들어갔다. 이 기관은 미국 외교정책 제정의 산실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이상 열거한 사례의 ‘회전문’을 통해 미국 싱크탱크 연구자와 정부 각 부처 사이에는 서로 연결되고 교차하는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이다. 바로 이런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미국 싱크탱크는 정책 제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요 세력이 되었다. 죠지 슐츠 (George Shultz)전 국무장관은 " 유명 정치인과 싱크탱크가 함께 싱크탱크 전문가를 위한 다양한 종류의 통로를 만들었다" 라고 하였다. [2]
빌 클린턴 전 대통령 경선 기간을 보면 진보정책연구소(The Progressive Policy Institute: PPI) 는 경선 정책을 설계했고 이 연구소의 많은 연구원이 경선 캠프에 참가했다. 경선에서 승리한 후,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 대표를 맡고 있는 존 포데스타(John Podesta)가 클린턴 행정부 백악관 비서실장(수석 보좌관)에 임명되었고(<감수자 주> : 이 부분은 왕리리가 약간 착각한 듯 하다. 진보정책연구소와 미국진보센터는 전혀 다른 곳이며, 존 포데스타가 클린턴의 수석보좌관을 지낸 것은 맞지만, 미국진보센터 소장이 된 것은 한참 후이기 때문이다), 다른 많은 학자들도 ‘회전문’을 통하여 클린턴 행정부의 요직을 맡았다. 클린턴은 경선 기간 뿐 아니라 백악관에 들어한 후에도 진보정책연구소(PPI)의 정책 건의에 따라 진행했다. [3] 90년대초 진보정책연구소(PPI)는 클린턴 행정부를 위해 <혁신 방안>을 세웠고 미국 경제 회복의 정책을 제안하여 클린턴 행정부때 채택되었고 90년대 미국 경제가 장기간 번영을 유지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2) 지식과 권력의 연결 다리
미국 외교협회(CFR) 게리 새모어(Gary Samore) 부회장은 필자와의 인터뷰 중에 "미국 싱크탱크의 가장 독특한 기능은 다음 행정부를 위한 인재 양성이고 이는 ‘회전문’ 시스템을 통해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4] 사실, ‘다음 행정부의 인재 양성’ 은 회전문이 담당한 지식과 권력 사이의 다리 역할을 반영한 것이다. ‘회전문’을 통해 미국 싱크탱크는 다음 행정부의 인재를 양성할 뿐 아니라 ‘재야’인사의 지식이 ‘관료’ 임명으로 전환될 권리의 통로와 가능성을 주며, 전임 행정 관료에게는 재충전할 시기와 행정부로 다시 돌아갈 기회와 무대까지 제공한다.
미국 싱크탱크는 학자들에게 정책 결정자와 긴밀히 접촉할 무대와 정책 연구에 가장 좋은 환경을 제공하며 정책 연구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정치현실에 대한 이해까지도 가능하게 만든다. 이에 대해 브루킹스연구소의 켄트 위버(Kent Weaver)는 "싱크탱크는 정부의 인재 공급처로서 작용하여 행정 분야 엘리트들이 대량으로 정부에 들어가게 한다. 많은 다른 의회 제도들과 달리, 미국 내각의 장관들은 의회 정당에서 나오지 않고 고위 관료들도 정부 부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경로로 이러한 정부 직위를 얻게 되지만, 많은 직위는 대체로 정권 교체 시기에 다시 채워진다. 또한 일부 전임 정부 관료들은 정권 교체로 자리에서는 물러나지만 계속해서 정책 제정에 관여하기를 바란다. 싱크탱크가 이런 미국 정치 시스템에 적합한 것이다." [5] 미국 역대 행정부는 대부분 싱크탱크 연구자들로 정부 고위직을 채웠다.
카터 행정부때는 삼변회 (Trilateral Commission), 외교협회 (CFR),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과 기타 소수의 "자유주의" 싱크탱크 출신의 연구원도 10명 가량 정부관료로 재직하였다. 레이건 행정부에서는 후버연구소(Hoover Institution), 미국기업연구소(AEI), 국제전략연구소(CSIS), 위기관리위원회(Committee on the Present Danger), 헤리티지재단(The Heritage Foundation)과 같은 보수 진영의 싱크탱크 출신 학자들이 등용되어 보수적인 의제를 실시하였다.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2007년 워싱턴에서 설립된 작은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 (Center for a New American Security: CNAS)에서 10명이 넘는 정책 전문가가 외교 안보 관련 직위에 임명되었고 커트 캠벨 (Kurt Campbell) 국무부 차관보와 제임스 스타인버그(James Steinberg) 국무차관 등도 이에 포함된다. ‘회전문’ 을 통하여 전문 지식을 갖춘 싱크탱크의 학자들이 지식을 권력으로 전환시킨 것이다(<감수자 주> : 이 부분도 원래는 “지식을 권리로 전환”이라고 되어 있으나, ‘권리’의 중국어 발음이 ‘권력’과 같고, 내용상 ‘권력’이 더 옳다고 여겨져 ‘권력’으로 하였다).
대통령이 선출될때마다 많은 싱크탱크 학자들이 정부에 합류하고 또 동시에 전임 정부관료들이 싱크탱크에 다시 연구원으로 들어온다. 부시 행정부의 전 재무장관 헨리 폴슨(Henry Paulson)도 존스 홉킨스 대학의 방문연구원으로 왔으며 일레인 차오(Elaine Chao) 전 노동장관은 헤리티지재단의 명예연구원으로 임명되었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담당 보좌관이었던 데니스 윌더(Dennis Wilder)는 브루킹스연구소의 방문학자로 임명되었다. 2002~2006년 동안 미국대만협회(American Institute in Taiwan, AIT)의 총 책임자였던 더글러스 파알(Douglas H. Paal) 박사는 현재 카네기국제평화재단(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의 부회장이다. 미국 싱크탱크는 이런 정부 관료를 기꺼이 초빙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그들이 정부 내에서 근무한 경험과 식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둘째 정책 영역의 공신력을 더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셋째로 자주 간과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전임 관료들에게 또 한번 ‘회전’할 환경과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에서 대다수 선임연구원과 전임 정부관료 외에 젊은 엘리트 그룹도 있다. 그들은 싱크탱크를 백악관이나 의회로 통하는 회전문으로 보고 싱크탱크에서 정책 연구 경험과 인맥을 쌓아 내일의 유명 정치인으로 성장하려고 한다. 미국 싱크탱크는 정책 엘리트의 산실과 요람으로서 이런 젊은 연구자들에게 각종 기회를 제공한다. 헤리티지재단의 ‘청년 리더십 프로젝트’와 외교협회(CFR)가 젊은 엘리트 회원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젝트 모두 정책 분야의 인재를 기르기 위한 노력이다. 전 국무장관 키신저 박사는 바로 이 외교협회(CFR)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서 세계 정치 발전에 영향력 있는 정치 인물이 되었다.
3) 제2채널 외교 진행
제2채널이란 공식외교(제1채널)와 민간교류(제3채널) 사이에 있는 일종의 특수한 경로로 비공식성과 정부 정책 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이 그 특징이다. 미국 싱크탱크는 정부 정책 결정과의 특수 관계와 비공식적 신분을 이용하여 국제 정치에서 독특하고 중요한 제2채널로서의 외교적 역할을 발휘 한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회전문’이 만들어 낸 정부와 싱크탱크 사이의 인적 네트워크와 정책에 미치는 큰 영향력은 싱크탱크에 특수한 외교적 지위와 역할을 부여하였다.
현재, 국제 교류와 상호 의존성의 심화에 따라 전세계적으로 시급한 의제와 몇몇 국제적 사안들은 국제 조직을 통해서만 해결 가능하다. 싱크탱크는 제2채널 외교의 중요 부분으로 국내외 교류의 무대가 되고 양자 및 다자간의 외교 업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싱크탱크는 양자간 이익에 부합하는 중대 문제에 관해 협력 연구를 진행하고 경우에 따라 배후에서 양자 관계의 ‘보조 추진기’가 되기도 한다. 미중관계를 예로 들면 미국 정부 고위 관료가 중국을 방문하기 전, 일반적으로 정부와 가까운 관계에 있는 싱크탱크를 선택하여 토론회를 개최하고 한 싱크탱크 연구원을 선발대로 보내기도 한다. 싱크탱크는 방중 의제를 가지고 중국 각 방면의 사람들과 만남을 갖고 중국의 태도를 탐색하여 상황을 파악한 후 미국 정부 정책결정을 위해 충분히 준비 한다.
1998년 클린턴 방중 당시, 상해사회과학원과 상해국제문제연구센터,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연구기관 등과 미리 만나 공식 방문과 관련한 중요 문제에 대해 토론했고 비망록을 작성했으며 양자 관계에 정치 외교 상의 참고사항을 제공하였다. 그 후 클린턴이 대만문제에 관해 이른바 '삼불(三不) 원칙'을 제시한 것은 미중 싱크탱크의 논의 결과를 받아들인 것이다. 2009년 4월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소속의 칭화-브루킹스 공공정책연구센터는 베이징에서 제1회 ‘미중전략 및 경제대화의 구조와 형성’을 주제로 강연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중국의 저명한 학자는 물론 미국 국무부차관보, 미국 국무원 정책기획실 부실장, 미국 국무원 미중 전략및 경제대화 원장, 미국 재정장관 정책고문 등이 참가 했다. 본 회의는 미중 전략 및 경제 대화 개최 전 예비 회의로서 토론 의제와 관련한 협력에 대해 사전에 비공식 대화 채널을 진행한 것이다.
‘보조 추진기’ 역할 외에도 미국 싱크탱크는 민감한 사안이나 의견 충돌이 있는 문제에 대해 제3자 중재라는 더욱 적극적인 제2채널 외교의 역할도 담당한다. 미국평화연구소(United States Institute of Peace)는 국회에서 설립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비정부, 독립 싱크탱크이다. 비공식적인 ‘제2채널’ 담판 을 오랜 기간 동안 이끌어 왔고 관료를 양성하여 장기적인 분쟁의 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여타 많은 전통적인 싱크탱크도 자신의 권한을 확장하여 예방 외교, 충돌과 분쟁의 해결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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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료 출처: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 싱크탱크와 대중 사회 프로젝트 “2008 The global go-to think tank ” 보고서
[2] Donald E. Abelson. A Capitol Idea. McGILL-Queen’s University Press 2006:155.
[3] Donald E. Abelson. A Capitol Idea. McGILL-Queen’s University Press,2006:36-39.
[4] 2008년 7월 미국 워싱턴 D.C. 에서 미국 외교위원회의(CFR) 게리 새모어(Gary Samore) 부회장과의 필자 인터뷰
[5] Kent Weaver. The Changing World of Think Tanks. Political Science and Politics 1989: 570-571.
홍일표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