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등록: 2010.08.10 수정: 2014.11.11


“대기업과 각을 세우더라도 윗목(서민)을 따뜻하게 하겠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 뒤 사상 최고의 실적을 내고 있는 대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양극화 문제를 풀기 위해 여러 가지 대책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마치 오래된 노래를 다시 듣는 것 같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 해소나 불공정 하도급 거래를 막기 위한 제도나 제재는 이전 정부들에서도 주요 레퍼토리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전의 대책들은 지금까지 성과가 없었을까요?


경제학자 김상조, 유종일, 홍종학의 대화를 한겨레 곽정수 기자가 엮은 <한국경제 새판짜기>에서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국민 인식 부분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유종일 KDI 교수는 먼저 우리 국민의 대기업 위주의 성장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대기업 위주의 성장이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그래도 대기업밖에 없다는 인식이죠. 그래서 대기업이라도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되는 것 아니냐는 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지금까지 대기업이 경제성장을 견인한 것을 경험했고, 중소기업들이 변변치 않으니 대기업밖에 기대할 게 없다는 것이지요. 사실 우리가 사는 집부터 매일 사용하는 물건들이 거의 대기업에서 만들 것들이니 잠재의식 속에 대기업의 중요성이 각인된 겁니다.”


또한 유 교수는 대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더 성장해야 한다는 인식과 우리 경제가 대기업 위주의 성장방식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은 구별할 것을 강조합니다. “대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국가 경제를 위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대기업 위주의 성장이란 것은 대기업들이 중소기업들을 희생시켜 가면서 특혜를 누리고, 이를 바탕으로 성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중소기업의 희생을 토대로 한 대기업의 성장은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내수기반도 갖추고 고용도 충분히 창출되는 ‘동반성장’을 이루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지금 대기업들의 실적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데 중소기업의 실적은 제자리 걸음이거나 더 나빠지는 양극화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대기업의 성장이 중소기업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실제 <한겨레21>이 지난 7월에 실시한 삼성전자, 현대차 부품업체 775곳 실적 분석 결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예상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삼성전자.현대차, 그들만의 경기회복', <한겨레21> 818호) 모기업은 올 들어 두 자릿수 이익률을 구가하는데 견줘 수많은 부품업체는 모기업의 평균 4분의 1 수준에 그치며 아직 경제위기 이전 수준조차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모기업과 부품업체 간 격차는 경제위기 이전보다 더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유종일 교수는 지속 가능한 동반성장을 위해 중소기업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고 말합니다. "대기업들이 만들어내는 최종 생산품에 들어가는 수많은 부품은 대부분 중소기업에서 만듭니다. 만약 중소기업이 기술력을 갖추고 튼튼하게 발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대기업들은 국외로 눈을 돌려 글로벌 아웃소싱을 추진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근거리에 튼튼한 부품산업을 가진 경쟁기업에 비해 경쟁에서 불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대기업 위주의 성장만을 계속하려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습니다."


물론 ‘동반성장’이란 오래된 노래가 나올 때마다 제대로 히트를 치지 못한 데에는 국민 인식의 문제점 외에도 여러 요인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 전체를 위해서는 대기업의 성장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 해소가 더 중요하다는 사회성원들의 확고한 인식이 성공의 필수요건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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