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등록: 2010.06.07 수정: 2014.11.10


다양한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분석 틀 가운데 ‘사회연결망 분석(social network analysis)’이라는 방법론이 있다. 사회연결망 분석은 말 그대로 개체 간에 맺고 있는 관계를 통해 사회의 여러 현상을 해석하고 설명한다. 따라서 사회연결망 분석은 ‘개체(node)’와 ‘관계(Relationship)’로 이루어진다. 개체는 말 그대로 자발적이고, 고유한 성향을 가진 개인, 기관, 국가 등을 이야기하며, 관계는 개체 간 맺는 모든 종류의 행위를 포함하며, 매우 다양하다.


이 가운데서 관계는 다시 크게 ‘강한 연결(Strong tie)’과 ‘약한 연결(Weak tie)’로 나누어 설명한다. 강한 연결은 혈족관계, 일방적인 조달체계, 국가 간 동일한 화폐사용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강한 관계는 시스템의 효율성 개선에는 효과적이지만 외부 충격에는 취약성을 쉽게 노출시킬 수 있다. 반대로 약한 연결은 관계가 차단되더라도 주변 개체들에게 쉽게 충격이 전달되지 않는 구조다. 과거, 노키아나 GM이 활용했던 글로벌 부품조달체계나 일반 대중을 상대로 운영 중인 블로그 사이트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EU 내 PIGS(Portugal, Italy, Greece, Spain)국가들의 재정위기로 비롯된 유로화의 위기는 어쩌면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1958년 1월 1일 발족한 유럽경제공동체(EEC)는 궁극적으로 정치적 통합을 위해 탄생됐다. 과거 유럽의 영광을 재현하고, 미국에 빼앗긴 정치·경제적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감행한 것이 경제적 통합을 전제로 한 유럽통화시스템(EMS)의 발족이었다. 유럽통화시스템은 제한적 변동환율제를 적용해 유럽의 모든 국가들이 안정적 통화 환경 속에서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안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와 국가를 연결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연결이라고 할 수 있는 단일화폐 제도를 선택한 것이다.



유럽 각국의 재무장관들이 5월9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긴급 재무장관 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출처-한겨레 자료)


하지만, 이러한 강한 연결을 시스템에 적용할 경우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개별 국가가 강한 연결을 소화할 수 있는 자세 또는 제반 여건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EU와 같이 저마다 다른 국민성과 대외 경쟁력을 갖춘 국가들의 연합체에게 강한 연결은 오히려 외부 세력들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강한 연결은 시스템의 생산성 향상과 효율성 개산을 위해 관계에만 집중하고, 개체 고유의 특성은 무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대적 취약성을 노출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번 PIGS국가들의 재정위기 사태에서 보듯 시스템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는 결과로 나타난다.


둘째, 신뢰다. 강한 연결을 시스템 내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시스템 내부 구성원 간 강력한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싸이월드(Cyworld)에서 운영 중인 1촌 제도를 보면 지속적인 제도 개선을 통해 세분화하고, 특성화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세분화 된 1촌 활용을 통해 보다 강한 관계성을 갖도록 함으로써 홈페이지의 신뢰성과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계산이다. 그런데, EU는 태생적으로 그렇지 못했다. 서로 간에 신뢰와 배려가 부족했다는 뜻이다. 저마다 유럽을 정복했던 역사를 갖고 있는 민족사를 잊지 못해서인지 과거 영광 재현이라는 대전제에만 동의할 뿐 그 영광의 중심에는 자국이 있어야 한다는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EU 경제를 선도하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는 과거 단일통화 협력 과정에서 신뢰를 저버린 전력을 갖고 있다. 1970년 룩셈부르크 출신의 피에르 워너(Pierre Werner)가 계획한 ‘워너 계획(Werner Plan)’은 유럽의 통화를 단일화폐로 만들기 위해 각 국의 환율변동을 좁히고 화폐정책을 공조하는 내용이 골자였는데, 1974년 프랑스가 탈퇴하면서 실패했다. 강력한 결속력을 요구하는 내부 약속에 동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92년 발생한 헤지펀드들의 영국 파운드화 공격도 사실은 독일의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인해 초래됐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적지 않다. 1990년 동독과의 통일로 인해 마르크화 지출이 많았던 독일은 인플레이션 위험 신호가 감지되자 2년 새 10번의 금리를 인상하는 사상 초유의 통화정책을 폈다. 이에 마르크화의 가치는 급격히 상승했고, 독일의 채권 금리 역시 상승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하락해야 할 파운드화 가치는 제한적 변동환율제로 인해 그 폭이 적었고, 헤지펀드들은 파운드화 가치 하락에 강한 배팅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영국은 파운드화 평가절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유럽통화시스템을 탈퇴했다.


이처럼 강한 연결은 시스템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대신 그에 따른 외부 취약성을 항상 동반하기 마련이다. 문득, 이번 EU 사태를 보면서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바로 1914년 발발한 세계 1차 대전이다. 유럽 일부 국가들이 안보를 이유로 만들어 낸 강한 연결이 빚은 참극이다. 결과는 누구의 승리도 아닌 모두의 패배로 기록되고 있다. 이번 PIGS재정위기 역시 마찬가지다. 총이 돈으로 3국 동맹과 3국 협상이 16개국과 실체를 알 수 없는 헤지펀드(유로존(Euro Zone)의 주장대로라면)로 바뀌었을 뿐이다. 또한, 그들의 주장대로 유로존은 여전히 공격당하는 대상이며, 공격 세력(헤지펀드)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보다 강한 연결을 지향해야 한다는 논리도 변함없다. 부디 모두의 패배로 끝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서재교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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