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착한경제] 사랑한다면 프랑스처럼

HERI 2014. 11. 11
조회수 4692

등록: 2010.10.21 수정: 2014.11.11


정부의 연금 개혁안에 반대하는 프랑스 시위대에 고등학생들도 가세했다고 한다. 연금 받을 만큼 늙을 것이란 생각은 꿈에도 안 들 나이에 그런 정치의식이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그래도 프랑스 젊은이들은 행복할 것 같다. 우선 그들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려고 인터넷 세상의 ‘해적’이 되는 모험을 하지 않아도 된다. 정부가 음악파일을 내려 받는데 드는 비용의 절반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반도 아깝다면 어쩔 수 없지만, 양심의 자유로움을 위해 정부의 지원을 기꺼이 받아들일 젊은이도 많으리라 생각된다.


국내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지만 프랑스 정부는 최근 미디어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적극적인 정책을 하나 더 도입했다. 바로 12살부터 25살 사이의 젊은이들에게 한 사람 당 연간 25유로 (약 3만9천원)의 음악파일 구입비를 지원키로 한 것이다. 방법은 젊은이들이 50유로짜리 음악파일 카드를 살 때 25 유로에 깎아 주는 것. 나머지 반은 카드를 사용할 때 정부가 음악 파일 다운로드 사이트에 대신 지불해 준다.


1년에 살 수 있는 카드는 1장 이다. 하지만 정부가 음악 파일 다운로드 회사에 음악의 가격을 낮추도록 종용하고 있어 실재 받는 혜택은 25유로 보다 클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2년 간 100만 장의 카드가 팔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럴 경우 약 2500만 유로(약 388억 원)의 예산이 들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는 프랑스의 이런 정책이 경쟁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고 이를 승인했다. 호아킨 알무니아 유럽 경쟁위원장은 “이 계획이 온라인 음악산업에서 다원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산업을 중요한 전략산업으로 여기는 프랑스는 그간 불법으로 음악이나 영화를 다운받는 것을 엄격하게 규제한 나라 중 하나다. 아도피(Hadopi) 법에 따라 영화나 음악을 불법 다운로드 할 경우 3진 아웃제를 도입해 최장 1년간 인터넷 접속을 금지시키고 벌금도 부과한다.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이웃 영국 역시 콘텐츠 산업의 기반을 지키려 비슷한 규제를 도입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번 ‘음악파일 반값 정책’의 목표는 젊은이들이 불법으로 파일을 공유하지 않고 음악을 구매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하려는 것이다. 돈을 내고 음악이나 영화를 사다 보면 빵이나 우유처럼 이들 컨텐츠도 돈을 내고 사야 한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란 기대를 하는 것이다. 내일의 주역이 될 젊은이들에게 미디어를 올바르게 소비하는 습관을 기르는 데 정부가 직접 돈을 나눠 줄 만큼 적극적인 것이다.


프랑스 정부가 지난 해 말 청소년에게 신문 구독권을 무료로 나눠주는 정책을 마련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는 지난 해 10월부터 18살 ~24살 청소년 75 만 명의 지원을 받아 자신이 선택한 일간지를 1년 동안 무료로 받아볼 수 있도록 지원한다. 여기에 드는 예산은 3년 간 1500만 유로로, 신문값의 절반은 정부가, 나머지 절반은 이 정책에 참여하는 신문사에서 부담한다.

이 제도는 물론 인터넷의 등장으로 어려움에 처한 신문, 잡지 등 인쇄매체를 돕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신문이 고유한 장점과 기능을 갖고 있어 인터넷으로 완전히 대체 될 수 있는 매체가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즉, 민주주의의 교과서로서 신문은 충실한 정보를 제공하고, 공론의 장을 마련해 민주적 소양을 갖춘 유권자를 만드는 데 어느 매체보다 효율적이란 점이다. 이런 신문에서 젊은이들이 점점 멀어질 경우 민주정치의 질이 저하될 것이란 우려가 프랑스 정부가 이런 제도를 도입한 배경이다.


최근 미디어의 변화는 새로운 생활양식을 만들고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변화를 몰고 왔다. 특히디지털 미디어는 대중을 단순한 미디어 수용자에서 생산자, 유통자 등 적극적인 존재로 격상시켰다. 특히, 스마트폰이 확산되고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소셜미디어를 통한 소통이 인기를 끌면서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속해 정보와 의견을 주고 받는 것이 가능해 졌다. 이에 따라 이런 환경에서 미디어를 이해하고 활용해야 하는 지를 잘 아는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과거에 기자 등 전문 직업인이 하던 문지기 (게이트 키핑) 작업을 사용자 개인이 맡게 된 상황에서, 각종 미디어에서 나오는 정보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평가해 그 것을 활용하는 미디어 해독력을 의미한다.


하지만 메시지를 비판적으로 해독하는 능력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확장된 미디어 공간이 어떤 특징이 있는 지 제대로 이해하고, 생산자, 유통자, 수용자로서 지켜야 할 것들을 정확히 알고 실천하는 것도 미디어 교육의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간단한 프로그램으로 사진을 조작하는 등 원본 변형이 얼마든 지 가능한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또 댓글 하나로 큰 상처를 입고 때론 자살까지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콘텐츠 생산자로서의 위험을 알고 그에 맞는 윤리를 몸에 익히는 것도 중요하다. 아울러 불법적인 내려받기 방지나 신문 등 인쇄 매체 읽는 습관을 기르는 것 미디어 교육이 추구해야 할 목표 가운데 하나다.


최근 들어 눈만 뜨면 디지털 미디어상에서 벌어지는 반사회적, 반인간적 행태에 대한 얘기들이 들려온다. 이번에는 자기 반 학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중학교 여교사의 신상명세와 졸업앨범에서 찾은 얼굴 사진 등이 인터넷에 올랐다. 이번 ‘신상털기’는 남편과 자녀가 함께 있는 가족사진 (진위는 확인되지는 않았음)까지 올리는 가정파괴, 인격살인 수준까지 진행됐다. 이런 일을 우리 청소년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재미 삼아 하고 있다면 그들에게 제대로 된 미디어 사용 교육을 하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청소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프랑스처럼 돈을 들여서라도 해야 한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착한경제-아시아미래포럼] 중국 기업가에게는 ‘원죄의식’이 있다

등록: 2010.11.26 수정: 2014.11.12 “중국 민간기업 경영자들과 얘기하다 보면 일종의 ‘원죄의식’ 같은 게 있다는 걸 발견합니다. 다른 사람의 희생을 발판으로 사업을 일으키고, 법을 어겨가면서 돈을 번 어두운 기억 때문이죠...

  • HERI
  • 2014.11.12
  • 조회수 4689

[착한경제] 그 분이 오신다고요?!

등록: 2010.11.25 수정: 2014.11.12 대학시절, 함께 스터디를 하던 멤버 중에 똑똑하고 모범적인 선배가 있었습니다. 인자하고 현명해서 상담 신청을 하면 마치 자신의 일인냥 정성껏 조언해주곤 했습니다. 머리도 좋아서 공부를 ...

  • HERI
  • 2014.11.12
  • 조회수 5508

[착한경제] 한∙중∙일 기업은 서구보다 사회책임경영이 뒤떨어졌을까?

등록: 2010.11.23 수정: 2014.11.12 한겨레경제연구소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기업의 사회책임경영 연구를 벌써 3년째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말끔히 풀지 못한 의문이 있다. 늘 한국 언론과 기업들은 '서구에서...

  • HERI
  • 2014.11.12
  • 조회수 4641

[착한경제] 스트레스, 내 안을 보라

등록: 2010.11.22 수정: 2014.11.12 '아! 스트레스 받아' 직장인이면 일주일에 몇 번 쯤은 내뱉는 말이다. 우리는 스트레스가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에 살고 있다. 얼마 전 발표된 ‘필립스 헬스 앤 웰빙 지수’에 따르면 G20...

  • HERI
  • 2014.11.12
  • 조회수 4836

[착한경제] '벤처 박사' 안철수의 성공론

등록: 2010.11.18 수정: 2014.11.12 안철수(카이스트 석좌교수)는 올바른 사람이다. 그는 원래 올바른 창업가였다. 컴퓨터 바이러스백신이라는, 세상이 없던 제품을 만드는 '안철수연구소'라는 벤처기업을 세웠고, 성공시켰다. 편법 없...

  • HERI
  • 2014.11.12
  • 조회수 4652

[착한경제-아시아미래포럼]사회적기업, 국제협력에 나서야 하는 이유

등록: 2010.11.18 수정: 2014.11.12 동아시아 3국(이하 한중일)은 상당한 경제적 성장을 이뤄냈다. 20세기 중반 패전국으로 대부분의 산업기반을 상실했던 일본은 높은 수준의 기술과 생산성에 기반한 성장을 거듭해 아시아의 거의 ...

  • HERI
  • 2014.11.12
  • 조회수 5265

[착한경제-아시아미래포럼] 사회적기업, 해외원조의 새로운 길

등록: 2010.11.18 수정: 2014.11.12 동아시아 3국(이하 한중일)은 상당한 경제적 성장을 이뤄냈다. 20세기 중반 패전국으로 대부분의 산업기반을 상실했던 일본은 높은 수준의 기술과 생산성에 기반한 성장을 거듭해 아시아의 거의 ...

  • HERI
  • 2014.11.12
  • 조회수 5740

[착한경제-아시아미래포럼] 더 나은 기업이 가능하려면

등록: 2010.11.17 수정: 2014.11.11 지난 주 열린 주요 20개국 정상회의(G20)에 대해 논란도 많았지만, 나는 내심 기대를 갖고 있었다. 주요국 경영자들이 금융위기 이전의 과거 경영 관행에서 탈피하겠다는 반성이라도 하지 않을...

  • HERI
  • 2014.11.11
  • 조회수 4912

[착한경제-아시아미래포럼] 장하준이 삼류 경제학자?

등록: 2010.11.16 수정: 2014.11.11 “삼류 잡지 에디터가 무슨 …” 장하준 교수(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에 대해 서울대의 한 교수가 던진 말이라 한다. ‘삼류잡지’란 장 교수가 한 때 편집자(editor)로 활동했던 ‘케임브리지 ...

  • HERI
  • 2014.11.11
  • 조회수 6202

[착한경제-아시아미래포럼]한중일 미래 정책, 누가 이끌까?

등록: 2010.11.15 수정: 2014.11.11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아시아적 가치와 질서, 비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중·일 싱크탱크의 역할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정책이 위로부터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

  • HERI
  • 2014.11.11
  • 조회수 5317

[착한경제-아시아미래포럼] G20를 넘어서려면

등록: 2010.11.12 수정: 2014.11.11 10월 초, <조선일보> 1면을 보고는 큰 한숨을 쉰 일이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10월 '한중일 경제대전'이라는 제목의 시리즈를 진행했습니다. 첫 회 제목은 이렇습니다. "1등 하던 造船業, 中에...

  • HERI
  • 2014.11.11
  • 조회수 5042

[착한경제] 독립성은 싱크탱크의 근본

등록: 2010.11.04 수정: 2014.11.11 이 글은 왕후이야오(王辉耀)가 상해금융법률연구원(上海金融与法律研究院)이 운영하는 <思想库>에 2010년 9월 7일자로 게재한 것이다(그러나 글이 쓰여진 시점은 2009년으로 보인다). <사상고>는 중국 ...

  • HERI
  • 2014.11.11
  • 조회수 5833

[착한경제] 김성근 리더십

등록: 2010.11.03 수정: 2014.11.11 경영학 책에서는 유능한 리더를 설명할 때,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설명하곤 한다. 이를 테면, 위기관리에 탁월한 역량을 갖고 있는 위기관리형 리더, 조직 구성원들에게 명확한 비전을 제시...

  • HERI
  • 2014.11.11
  • 조회수 5906

[착한경제] 중국 싱크탱크의 국제적 영향력(1)

등록: 2010.11.01 수정: 2014.11.11 이 글은 왕후이야오(王辉耀)가 상해금융법률연구원(上海金融与法律研究院)이 운영하는 <思想库>에 2010년 9월 7일자로 게재한 것이다(그러나 글이 쓰여진 시점은 2009년으로 보인다). <사상고>는 중국 ...

  • HERI
  • 2014.11.11
  • 조회수 6517

[착한경제] 무상급식과 엄마의 도시락

등록: 2010.10.29 수정: 2014.11.11 지난 6월 지방 선거를 뜨겁게 달궜던 무상급식에 대한 로드맵이 일부 지자체를 중심으로 속속 발표되고 있다. 사회복지선진국이라 일컫는 스웨덴과 핀란드, 그리고 영국과 미국 등 서구 선진국...

  • HERI
  • 2014.11.11
  • 조회수 5662

[착한경제] 사랑한다면 프랑스처럼

등록: 2010.10.21 수정: 2014.11.11 정부의 연금 개혁안에 반대하는 프랑스 시위대에 고등학생들도 가세했다고 한다. 연금 받을 만큼 늙을 것이란 생각은 꿈에도 안 들 나이에 그런 정치의식이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그래도 프...

  • HERI
  • 2014.11.11
  • 조회수 4692

[착한경제] ‘값싼 제품’의 위험한 진실

등록: 2010.10.15 수정: 2014.11.11 ‘값 싸고 질 좋은 상품’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지갑을 여는 결정적인 기준입니다. 얼마 전 이마트의 ‘싸고 큰 피자’에 소비자들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지난 8월 한 달 성수점에서만 6천개...

  • HERI
  • 2014.11.11
  • 조회수 4757

[착한경제] 대형마트 김치값이 오른 진짜 이유는?

등록: 2010.10.14 수정: 2014.11.11 편의점이나 대형 할인마트에서 파는 이른바 상품김치 가격이 올랐다. 회사별로 크게는 20%, 평균 10% 가량이 올랐다. 배추, 무, 고추 등 김치에 들어가는 식재료 가격이 적게는 두 배, 많게...

  • HERI
  • 2014.11.11
  • 조회수 5520

[착한경제] 노동연구원을 양대노총의 통합연구소로?

등록: 2010.10.14 수정: 2014.11.11 현 정부 들어 국책연구소의 독립성 훼손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그 정점에는 한국노동연구원의 파행이 있을 것이다. 노동연구원장의 '반노동자적' 발언과 행동들이 계속되었고, 연구원 노조와의 ...

  • HERI
  • 2014.11.11
  • 조회수 6921

[착한경제] 디지털 미디어와 화목하게 살려면

등록: 2010.10.12 수정: 2014.11.11 주말을 덕유산 자연휴양림에서 보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가기 힘든 오지의 대명사였던 무주구천동 부근의 숲 속에서 울창한 나무가 내뿜는 상쾌한 기운을 받으며 청명한 가을을 만끽했다. ...

  • HERI
  • 2014.11.11
  • 조회수 5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