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등록: 2010.10.14 수정: 2014.11.11


편의점이나 대형 할인마트에서 파는 이른바 상품김치 가격이 올랐다. 회사별로 크게는 20%, 평균 10% 가량이 올랐다. 배추, 무, 고추 등 김치에 들어가는 식재료 가격이 적게는 두 배, 많게는 세배 상승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단다.


그런데, 이런 상품김치 가격 인상이 곱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왜일까?


지난해, 국내 김치 시장의 규모는 약 2조 2523억 원으로 이 중 상품김치 시장이 차지하는 규모는 1조 767억 원에 달하고 있다. 하지만, 가정용 상품김치 시장의 규모는 2194억 원으로 전체 시장의 18%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마저도 지난 2007년 말까지 꾸준히 증가해왔던 가정용 상품김치 시장은 2008년을 기점으로 정체기에 들어섰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 배경에는 업계가 주장하는 ‘외식의 증가’와 ‘가구 당 식구 수 감소’와 같은 인구통계학적 원인 이외에도 저가 중국 김치 수입량 확대로 인한 수익성 저하, 온라인 등 유통 채널 다양화로 인한 경쟁심화 등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상존해 있다. 김치업계 전문가들이 차별화 된 제품 개발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와 무관치 않다. 즉, 2008년 이래로 국내 가정용 상품김치 시장은 경쟁심화와 수익성 악화라는 두 가지 난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번 10월 단행된 상품김치 가격인상이 단순히 원료 가격 상승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자사의 수익구조 개선을 위한 전략적 판단으로 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이번 농산물 가격 상승과 김치 제조업체들의 원자재 조달 가격 상승과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 대다수 김치 제조업체들은 배추를 비롯한 원재료 조달을 위해 직접 또는 계약재배를 하기 때문에, 일선 소비자와 같이 높은 가격에 원재료를 구입하지 않는다. 일명 밭떼기라고 불리는 방식으로 농산물을 확보하는 유통업자와 같이 유리한 가격에 원재료를 조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다. 가격 인상 시기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김치 제조업체들은 농산물 가격이 본격적으로 폭등하기 시작한 추석연휴 이후 2주가 채 지나지 않아 전격적으로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김장철도 아닌 10월 초에 김치 수요가 얼마나 증가했는지 모르겠지만, 전국 주요 대형 할인마트에 항상 차고 넘치던 김치가 순식간에 종적을 감췄다.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재료 상승을 근거로 인상한 상품김치 가격을 정당화하고 싶은 김치 제조업체가 있다면 2008년과 2009년 배추가격이 폭락했을 때 왜 상품김치 가격을 내리지 않았는지 답하는 것이 우선이다.


오늘날, 김치 제조업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사회적 분위기와 소비자들의 심리를 이용해 기업의 수익구조를 개선하기 보다는 정체 상태에 있는 상품김치 시장을 근본적으로 살릴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열악한 유통구조 때문에 소득 측면에서 불이익을 겪고 있는 농가를 위해 계약재배 방식을 개선하는 ‘공정무역’ 개념을 사업 모델에 도입하거나, 김치 소비가 저조한 세대 또는 계층을 위해 신제품 개발에 역점을 기하는 등 보다 근본적인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


시간은 많지 않다. 이번 가을 이후, 농산물 가격이 안정됐을 때 이번에 올렸던 김치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김치 제조업체들은 서둘러야 한다. 오르기만 하고 내리지 않더라도 항상 사람들이 들끓는 명품 매장처럼 명품 김치가 가득한 기업 만들기에 매진해야 한다.


서재교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착한경제-아시아미래포럼] 중국 기업가에게는 ‘원죄의식’이 있다

등록: 2010.11.26 수정: 2014.11.12 “중국 민간기업 경영자들과 얘기하다 보면 일종의 ‘원죄의식’ 같은 게 있다는 걸 발견합니다. 다른 사람의 희생을 발판으로 사업을 일으키고, 법을 어겨가면서 돈을 번 어두운 기억 때문이죠...

  • HERI
  • 2014.11.12
  • 조회수 4685

[착한경제] 그 분이 오신다고요?!

등록: 2010.11.25 수정: 2014.11.12 대학시절, 함께 스터디를 하던 멤버 중에 똑똑하고 모범적인 선배가 있었습니다. 인자하고 현명해서 상담 신청을 하면 마치 자신의 일인냥 정성껏 조언해주곤 했습니다. 머리도 좋아서 공부를 ...

  • HERI
  • 2014.11.12
  • 조회수 5500

[착한경제] 한∙중∙일 기업은 서구보다 사회책임경영이 뒤떨어졌을까?

등록: 2010.11.23 수정: 2014.11.12 한겨레경제연구소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기업의 사회책임경영 연구를 벌써 3년째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말끔히 풀지 못한 의문이 있다. 늘 한국 언론과 기업들은 '서구에서...

  • HERI
  • 2014.11.12
  • 조회수 4639

[착한경제] 스트레스, 내 안을 보라

등록: 2010.11.22 수정: 2014.11.12 '아! 스트레스 받아' 직장인이면 일주일에 몇 번 쯤은 내뱉는 말이다. 우리는 스트레스가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에 살고 있다. 얼마 전 발표된 ‘필립스 헬스 앤 웰빙 지수’에 따르면 G20...

  • HERI
  • 2014.11.12
  • 조회수 4831

[착한경제] '벤처 박사' 안철수의 성공론

등록: 2010.11.18 수정: 2014.11.12 안철수(카이스트 석좌교수)는 올바른 사람이다. 그는 원래 올바른 창업가였다. 컴퓨터 바이러스백신이라는, 세상이 없던 제품을 만드는 '안철수연구소'라는 벤처기업을 세웠고, 성공시켰다. 편법 없...

  • HERI
  • 2014.11.12
  • 조회수 4647

[착한경제-아시아미래포럼]사회적기업, 국제협력에 나서야 하는 이유

등록: 2010.11.18 수정: 2014.11.12 동아시아 3국(이하 한중일)은 상당한 경제적 성장을 이뤄냈다. 20세기 중반 패전국으로 대부분의 산업기반을 상실했던 일본은 높은 수준의 기술과 생산성에 기반한 성장을 거듭해 아시아의 거의 ...

  • HERI
  • 2014.11.12
  • 조회수 5256

[착한경제-아시아미래포럼] 사회적기업, 해외원조의 새로운 길

등록: 2010.11.18 수정: 2014.11.12 동아시아 3국(이하 한중일)은 상당한 경제적 성장을 이뤄냈다. 20세기 중반 패전국으로 대부분의 산업기반을 상실했던 일본은 높은 수준의 기술과 생산성에 기반한 성장을 거듭해 아시아의 거의 ...

  • HERI
  • 2014.11.12
  • 조회수 5730

[착한경제-아시아미래포럼] 더 나은 기업이 가능하려면

등록: 2010.11.17 수정: 2014.11.11 지난 주 열린 주요 20개국 정상회의(G20)에 대해 논란도 많았지만, 나는 내심 기대를 갖고 있었다. 주요국 경영자들이 금융위기 이전의 과거 경영 관행에서 탈피하겠다는 반성이라도 하지 않을...

  • HERI
  • 2014.11.11
  • 조회수 4906

[착한경제-아시아미래포럼] 장하준이 삼류 경제학자?

등록: 2010.11.16 수정: 2014.11.11 “삼류 잡지 에디터가 무슨 …” 장하준 교수(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에 대해 서울대의 한 교수가 던진 말이라 한다. ‘삼류잡지’란 장 교수가 한 때 편집자(editor)로 활동했던 ‘케임브리지 ...

  • HERI
  • 2014.11.11
  • 조회수 6195

[착한경제-아시아미래포럼]한중일 미래 정책, 누가 이끌까?

등록: 2010.11.15 수정: 2014.11.11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아시아적 가치와 질서, 비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중·일 싱크탱크의 역할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정책이 위로부터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

  • HERI
  • 2014.11.11
  • 조회수 5304

[착한경제-아시아미래포럼] G20를 넘어서려면

등록: 2010.11.12 수정: 2014.11.11 10월 초, <조선일보> 1면을 보고는 큰 한숨을 쉰 일이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10월 '한중일 경제대전'이라는 제목의 시리즈를 진행했습니다. 첫 회 제목은 이렇습니다. "1등 하던 造船業, 中에...

  • HERI
  • 2014.11.11
  • 조회수 5035

[착한경제] 독립성은 싱크탱크의 근본

등록: 2010.11.04 수정: 2014.11.11 이 글은 왕후이야오(王辉耀)가 상해금융법률연구원(上海金融与法律研究院)이 운영하는 <思想库>에 2010년 9월 7일자로 게재한 것이다(그러나 글이 쓰여진 시점은 2009년으로 보인다). <사상고>는 중국 ...

  • HERI
  • 2014.11.11
  • 조회수 5821

[착한경제] 김성근 리더십

등록: 2010.11.03 수정: 2014.11.11 경영학 책에서는 유능한 리더를 설명할 때,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설명하곤 한다. 이를 테면, 위기관리에 탁월한 역량을 갖고 있는 위기관리형 리더, 조직 구성원들에게 명확한 비전을 제시...

  • HERI
  • 2014.11.11
  • 조회수 5899

[착한경제] 중국 싱크탱크의 국제적 영향력(1)

등록: 2010.11.01 수정: 2014.11.11 이 글은 왕후이야오(王辉耀)가 상해금융법률연구원(上海金融与法律研究院)이 운영하는 <思想库>에 2010년 9월 7일자로 게재한 것이다(그러나 글이 쓰여진 시점은 2009년으로 보인다). <사상고>는 중국 ...

  • HERI
  • 2014.11.11
  • 조회수 6514

[착한경제] 무상급식과 엄마의 도시락

등록: 2010.10.29 수정: 2014.11.11 지난 6월 지방 선거를 뜨겁게 달궜던 무상급식에 대한 로드맵이 일부 지자체를 중심으로 속속 발표되고 있다. 사회복지선진국이라 일컫는 스웨덴과 핀란드, 그리고 영국과 미국 등 서구 선진국...

  • HERI
  • 2014.11.11
  • 조회수 5653

[착한경제] 사랑한다면 프랑스처럼

등록: 2010.10.21 수정: 2014.11.11 정부의 연금 개혁안에 반대하는 프랑스 시위대에 고등학생들도 가세했다고 한다. 연금 받을 만큼 늙을 것이란 생각은 꿈에도 안 들 나이에 그런 정치의식이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그래도 프...

  • HERI
  • 2014.11.11
  • 조회수 4687

[착한경제] ‘값싼 제품’의 위험한 진실

등록: 2010.10.15 수정: 2014.11.11 ‘값 싸고 질 좋은 상품’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지갑을 여는 결정적인 기준입니다. 얼마 전 이마트의 ‘싸고 큰 피자’에 소비자들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지난 8월 한 달 성수점에서만 6천개...

  • HERI
  • 2014.11.11
  • 조회수 4748

[착한경제] 대형마트 김치값이 오른 진짜 이유는?

등록: 2010.10.14 수정: 2014.11.11 편의점이나 대형 할인마트에서 파는 이른바 상품김치 가격이 올랐다. 회사별로 크게는 20%, 평균 10% 가량이 올랐다. 배추, 무, 고추 등 김치에 들어가는 식재료 가격이 적게는 두 배, 많게...

  • HERI
  • 2014.11.11
  • 조회수 5514

[착한경제] 노동연구원을 양대노총의 통합연구소로?

등록: 2010.10.14 수정: 2014.11.11 현 정부 들어 국책연구소의 독립성 훼손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그 정점에는 한국노동연구원의 파행이 있을 것이다. 노동연구원장의 '반노동자적' 발언과 행동들이 계속되었고, 연구원 노조와의 ...

  • HERI
  • 2014.11.11
  • 조회수 6911

[착한경제] 디지털 미디어와 화목하게 살려면

등록: 2010.10.12 수정: 2014.11.11 주말을 덕유산 자연휴양림에서 보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가기 힘든 오지의 대명사였던 무주구천동 부근의 숲 속에서 울창한 나무가 내뿜는 상쾌한 기운을 받으며 청명한 가을을 만끽했다. ...

  • HERI
  • 2014.11.11
  • 조회수 5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