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0.09.29 수정: 2014.11.11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조국 서울대 교수.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 세 명은 각각 한국의 대표 유통기업의 최고경영자, 인권과 법에 대한 국내 최고 논객, 대중에게 가장 많이 사랑받는 자기계발 및 경영 저자 및 강사 대열에 있는 사람이다. 이들이 한 주제로 입을 열었다. '윤리적 소비'다.
이 논쟁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트위터에서 이마트 피자 판매를 비판하는 팔로워에게 '이념적 소비'가 아니라 '실질적 소비'를 하라며 반박한 뒤, 조국 서울대 교수가 <한겨레> 칼럼 '국가와 시민이 정용진에 답하라'에서 국가는 약자를 보호하는 정책을 통해, 소비자는 '윤리적 소비'를 통해 대기업의 횡포를 견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나서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이 다시 '가격과 편리함을 넘어 경제적 약자의 것을 사야 한다고 권하는 것은 지나치게 지사적인 태도'라며 트위터와 블로그 글을 통해 윤리적 소비론을 비판했다. 관련기사 링크
일단 세 분께 머리숙여 감사드린다. 기업의 사회책임경영, 투자자의 사회책임투자, 소비자의 윤리적소비, 그리고 사회적기업이 한 데 모여 구성되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 '착한 경제'를 고민하던 내게는, 이렇게 유명한 분들이 모두 '윤리적 소비'에 관심을 가져 주시는 것이 감사하고 황송할 따름이다. 그리고 드디어 이 주제가 오랜 음지 생활을 거쳐 볕을 보는구나, 하는 감격도 밀려든다.
감사의 뜻을 표시하기 위해서라도, 세 분께 각각 답글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답글을 읽기 전에, '윤리적 소비'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한 분은 아래 세 개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필자와 동료가 블로그 및 <HERI Review>에 쓴 글이다
가장 쉬운 글: 착한 소비 하고 싶으시다고요? (한겨레경제연구소 김지예)
쉬운 글: 1년간 백화점도 할인점도 가지 않는다면? (한겨레경제연구소 이원재)
딱딱하지만 자세한 글: 진화하는 '착한 소비' (한겨레경제연구소 이원재)
딱 하나만 정리하고 넘어가자. 현 단계에서 '윤리적 소비'는 시쳇말로 '개념 소비'다. 즉, 앞선 소비자의 의식적 소비다. 많은 이들의 우려처럼, 윤리적 소비를 하지 않는다고 '비윤리적'이거나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의식이 앞서 있는 소비자가 아닐 뿐이다.
정용진 부회장께 감사
무엇보다도,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님께 가장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정 부회장께서는 이마트 피자 판매 논쟁을 '소비 의사결정에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윤리적 소비'(각주: 정 부회장은 '이념적 소비'라는 잘못된 용어를 사용했지만, 학문과 저널리즘에서 널리 통용되는 용어로 바꿈) 관련 논쟁을 출발시켰습니다. 개별 사안을 일반적 개념으로 승화시키면서, 건전한 논쟁을 촉발시켰습니다. '이념적 소비'라는 용어를 '윤리적 소비'로 바꾸시고, 이 소비가 미래 소비 트렌드라는 점만 인식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실질적 소비'와 '윤리적 소비'를 대비시킨 관점은 매우 옳습니다. 결국 '소비'란 '실질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의 합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늘, '소비자'는 계산적인 경제 동물이고, '소비'는 이런 동물적 합리성에 기반한 의사 결정이라고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소비'의 일부인 '실질적 소비'일 뿐이었다는 점을 이번 논란에서 알게 됐습니다.
맞습니다. '실질적'이든 '경제적'이든, 그것은 소비 중 일부일 뿐입니다. 소비는 그것보다 훨씬 더 넓고 깊은 잠재력을 가진 행동입니다.
실질적 소비란, 품질 민감도가 낮고 가격 민감도가 높은 소비일 것입니다. 일단 눈에 띄는 과자 중 가장 값싼 것을 사는 게 '실질적 소비'일 것입니다. 과거 한국 소비자의 소비 행태겠지요. 아마도 재료의 원산지나 설탕 함유량 등을 꼼꼼히 살피고 나서 높은 기준을 통과한 제품만 가격을 살펴 과자를 사는 게 현재 한국 소비자의 행태일 것입니다. 좀 더 '비 실질적' 소비를, 다시 말해 품질 민감도가 높아지고 가격 민감도가 상대적으로 낮아진 소비를 하는 것이지요.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소비자의 감수성이 높아지면서 품질 민감도는 점점 높아질 것입니다. '실질적 소비'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는 이야기지요. 그런데 여기서 '품질'의 정의는 영원불변한 것이 아닙니다. 소비자가 무엇을 품질이 높은 것으로 인식하느냐는 매우 사회적이고 가변적인 것입니다. '품질'의 정의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계속 진화하게 마련입니다.
옛날 우리 할머니들은 찬장에 조미료를 꼭꼭 숨겨 두시고는, 귀한 손님이 오면 몇 숟가락 푹푹 떠 넣고 국을 끓여 주시곤 했습니다. 그 때는 '맛'만이 음식의 품질로 여겨지던 때였지요. 지금 음식의 품질에는 재료의 원산지, 함유 성분, 생산 과정의 위생 등이 모두 포함됩니다. MSG포함 조미료는 물론 기피 대상이겠지요. 품질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진화한 것입니다. 아마 이마트 진열대에서도 MSG함유 조미료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1990년대 초반, 이마트가 문을 열 때도 그랬을까요?
그 진화의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요? 본인 뿐 아니라 자연의 건강을 생각하는 로하스 소비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저탄소 에너지 절약 제품을 선호하는 녹색 소비도 조짐이 보입니다. 생산자의 삶의 질을 생각하는 공정무역과 로컬푸드 운동이 눈에 띕니다. 사회적 의미가 품질에 포함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윤리적 소비는 미래의 소비입니다.
기업이라면, 특히 신세계 같은 대표적 유통 기업이라면, 이 미래 소비 트렌드에 대해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느끼고 대응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조국 교수께 첨언
소비자의 시민적 역할에 대해 강조해 주신 데에 감사 드립니다. '소비는 투표다'라는 말을 익히 들어 보셨으리라 믿습니다. 유권자는 소비자이고, 노동자이기도 하고, 자영업자이기도 합니다. 유권자로서 행사하는 권리는, 소비자의 자리에서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국가가 약자를 보호하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소비자가 시민으로서 행동하는 것도 역시 중요합니다. 쓰신 취지 모두 공감합니다. (조국 교수 글 전문 링크)
저는 다만 윤리적 소비는 법과 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통로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윤리적 소비는 그 자체로도 힘을 가질 수 있지만, 결국 윤리적 소비에 우호적인 법과 제도가 만들어지게 해서 '사자는 사자의 우리에, 소는 소의 우리에' 담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도적인 윤리적 소비자들이 처음 마중물은 붓고 나서, 법과 제도의 뒷받침을 등에 업고 본 물줄기가 터질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로컬푸드 제품을 좀 더 비싸게 주고라도 선택하는 선도적 소비자들이 판을 이끌지만, 나중에는 저탄소 제품소비에 대한 세제혜택 등으로 자연스레 제도적 뒷받침이 되면서 '소비' 자체가 '윤리적 소비'가 되는 형국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습니다.
과대포장된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불편해지는 제도가 생기고, 어려운 사람을 괴롭히는 소비에 추가 과세가 되고,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제품을 주로 판매하는 유통기업이 경쟁력을 갖도록 제도적 지원이 있어야 하고, 그렇게 만들 수 있습니다.
윤리적 소비는 이렇게, 그 자체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매우 큰 잠재력을 가진 이슈입니다.
또 하나, '사자와 소를 위한 하나의 법은 억압'이라며 약자를 강자와 같은 울타리에 넣고 싸우게 하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누군가 '대기업과 자영업자와 소비자가 있는데, 누가 사자이고 소인가. 소비자가 약자 아닌가'라고 물으며 반론을 펼칠 수 있을 겁니다. 피자가게 주인이 과연 약자인지, 이마트 노동자가 약자는 아닌지 등을 따져 물으면서 말입니다.
이런 질문에 대해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다중적입니다. 한 사람이 동시에 소비자이면서 노동자이면서 투자자입니다. 그러니 제도적 보호가 필요한 '소'를 그저 사회적 약자라거나 가난한 자 등으로 특정해서 지칭하면 논리적인 어려움을 피할 수 없습니다.
'소'가 보호의 대상이라는 사실은 명확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특정한 관계 안에서 '소'일 뿐입니다. 제도가 늘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을 보호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기업과 협력 중소기업의 관계에서는 중소기업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중소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사이에서라면 노동자가 보호의 대상일 것입니다. 소비자와 생산자 관계에서는 소비자이고,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서는 노동자일 것입니다.
한 사람이 어떤 장면에서는 '사자'이고, 다른 장면에서는 '소'일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마트 앞에서 '소'인 피자가게 주인도 그 가게 아르바이트 학생과의 관계에서는 '사자'이고, 이는 분리해서 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조국 교수님의 많은 독자께서도 이해하도록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윤리적 소비'의 중요성을 우리 사회에 일깨워 주신 데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시민사회와 정책결정자들은 윤리적 소비가 사회의 법제도를 바꾸는 중요한 첫걸임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공병호 소장께 질문
'옛말에 사돈 것도 싸야 산다'고 글에 쓰셨습니다. 그 말은 아마 정말로 '옛말'인 모양입니다. 지금이라면 '사돈 것도 가격 대비 품질이 좋아야 산다'고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또 미래에는 '사돈 것도 나에게 안전하고 남에게 해 안 끼치고 환경 파괴하지 않는 제품이라야 산다'고 바뀌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비는 진화합니다. 현대 사회의 변화가 얼마나 빠른 지 직접 강연하시고 글을 쓰시는 분이시니 누구보다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소비에서도 역시 빠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경영학자이자 마케팅의 대가인 필립 코틀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코틀러 박사는 최근의 책 <마켓 3.0>에서 '영혼'을 강조합니다. 가격과 제품의 핵심요소 등은 이미 평준화되었고, 여기에 더해 소비자의 영혼을 움직일 수 있는 기업과 제품이 경쟁력을 갖는 시장이 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소비자를 얻는 기업이 성공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소비자의 영혼을 움직이는 기업, 제품은 무엇일까요? 사회과 소통하고 사회적 책임을 지는 경영을 하는 기업, 사회와 생산자를 고려한 윤리적 제품이 아닐까요?
소비자의 기호는 움직입니다. 끊임없이 품질 민감도가 높아지고, 품질을 구성하는 요소가 다양해지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이제 '사회적 가치'가 품질에 반영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기업이 시장에서도 성공하게 되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경제학자, 경영학자라면 이런 새로운 시장의 변화에 대해 누구보다도 앞서 통찰하고 분석해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남아 있는 문제: '경제'의 재구성
우리는 늘 '합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고 자본주의를 이해했다. 인간은 합리적이다. 그래서 이기적이다. 그래서 단기적, 직접적 보상만을 목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 소비할 때도, 투자할 때도, 경영할 때도 그렇다. 이기적 인간들이 모인 곳이 시장이고, 여기서 가격이 결정된다. 이게 우리가 '경제'에 대해 갖고 있던 시각이었다.
그런데 그 '합리성'은 영원불변의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합리성은 계속 재구성된다. 그리고 소비와 투자와 경영에 관한 한, 지금이 바로 그 '재구성'의 시기다. 소비에서는 윤리적 소비가 이야기된다. 투자에서는 사회책임투자가, 경영에서는 기업의 사회책임경영과 사회적기업이 논의된다. '합리성=이기심'의 공식을 깨고, '합리성=이기섬+이타심'이라는 공식이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제의 개념은 지금 재구성되고 있다. 가장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정부가 '저탄소'와 '상생'을 외치고 있다는 사실(비록 구호일지언정!)이 이런 흐름을 반증한다.
이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 사회책임경영도 사회책임투자도 윤리적 소비도, 그 용어가 모두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윤리적'이 사라지고 '소비'만 남을 때, 그래도 그 안에서 '윤리'가 설명될 때, 윤리적 소비는 완성된다. '경영' 자체에 당연히 사회적 책임이 포괄될 때 사회책임경영도 완성된다.
어쨌든 세상은 다이내믹하게 변한다. 그리고 늘 그 변화를 이끄는 선도자가 있다. 지금 생협에서 물건을 사고 사회적기업 제품을 사고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는 윤리적 소비자는, 그 선도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모이느냐에 따라, '경제'가 얼마나 빨리 재구성될 것이냐가 결정되리라고 본다. 그리고 이들의 움직임을 민첩하게 읽는 기업가, 시민운동가, 정책결정자, 이론가들은, 성공할 것이다.
* 관련기사: 윤리적 소비 이렇게 해 보세요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