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0.09.07 수정: 2014.11.11

“부자들의 배를 불려주면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언젠가는 돈이 똑똑똑 한 방울씩 지옥까지 떨어져서 가난한 사람들의 바짝 마른 입술을 적셔줄 것이다. 그러니 부자들이 더 많이 돈을 쓸 수 있도록 세금을 깎아줄 일이요, 부자들이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도록 화려한 사치 위주의 서비스 상품이자 상품시장을 확대할 일이요...”
<한겨레21> 인터넷특강을 책으로 엮은 <화>의 ‘울화와 돈’에서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런 낙수효과(트리클다운 이펙트, Trickle Down Effect)를 거론하는 미국의 경제학자에게 의문을 던집니다. “만약 돈이 물이 아니라 불에 비유된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
홍 연구위원은 동양철학의 ‘상징’을 이용한 방식을 빌려와 ‘돈’을 설명합니다. “동양철학의 ‘오행’(五行)은 우주나 사람의 몸이 전체를 순환할 때 반드시 밟아나가야 할 ‘국면’이다. 전국시대 동양의학 경전인 <황제내경>에는 ‘화’(火)의 속성으로 ‘흩어질 산(散)’자를 써 놨다. 심장에서 피가 뻗어나가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돈’ 역시 ‘돌고 돈다’에서 온 말이라는 설이 있다. 사회 전체를 돌아서 ‘돈’이라는 것이다. ‘화’와 ‘돈’이 연결되는 지점이다.”
‘돈’을 ‘화’에 비유한다면, 돈은 어떻게 굴러가야 할까요? 눈에 보이는 곳에서 물은 아래를, 불은 위를 향하지만 그렇게만 되면 지구가 유지될 수 없다고 홍 연구위원은 말하며 ‘수승화강’의 원리를 내세웁니다. “물은 수증기가 되어 위로 올라가고, 태양에너지는 아래로 내려와 석탄·석유 같은 화석에너지가 된다. 이것이 수승화강(水乘火降)이다. 이는 우주의 원리로서 끊임없이 나타난다. ”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수승화강’의 원리와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돈이 가장 위에만 꽁꽁 묶여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홍 연구위원은 도교경전에 나오는 ‘주화입마’의 상황을 떠올립니다. “주화입마(走火入魔)는 도를 닦다가 기가 잘못 흘러 역상하는 것을 가리킨다. 소통이 막힌 사회에서 살다 보면 순환이 안 돼서 ‘울화증’이 난다. 이유 없이 화가 뻗쳐 우발적인 살인을 한다. ‘입마’(入魔)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보험금 때문에 가족의 생명을 뺏는 등의 패륜적 범죄가 일어나는 것도 사회 전체적으로 돈이 한 군데 몰려 있기 때문입니다. 홍 연구위원은 돈이 원래 가야 할 곳으로 돌게 해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화’의 기운을 가진 ‘돈’은 아래에 풀어야 한다. 우리 선조들이 어째서 온돌을 애용했는지 생각해보자. ‘돈’은 ‘화’이기 때문에 아래에 갖다놔야 올라간다. 금융시장 등의 매개를 통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빈곤층에게 돈을 풀어야 한다.” 아울러 "돈을 쟁여 놓으면 사람도 돈도 망가지게 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덧붙입니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