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착한경제] 돈버는 농업?

HERI 2014. 11. 11
조회수 4911
등록: 2010.07.28 수정: 2014.11.11

누가 농민을 죽이는가?

지난 15일 <중앙일보>에 실린 칼럼 제목이다. 우리 헌법 121조의 ‘경자유전’(耕者有田) 조항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경자유전 때문에) 나이든 농민들이 제값에 농지를 팔고 출구전략을 구사할 마지막 기회가 막혔다”고 주장했다. 도시인과 기업의 농지 매입을 허용하면 농지 값이 오를 것이고, 그러면 고령의 영세소농들이 농지를 쉽게 내놓고, 종국적으로 농업의 규모화를 이룰 수 있게 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고령농의 신속한 퇴출 정책이 ‘선’인가? 지금보다 농지 값이 오르면, 농업의 국제경쟁력은 또 어떻게 확보하나?


올해 봄에는 <매일경제>가 ‘아그리젠토 코리아, 첨단 농업부국의 길’이라는 농업정책의 대형 어젠다를 던졌다. △쌀 중심 생산구조 △정치적으로 운영되는 보조금 △유명무실한 경자유전 △반개혁 농업관계기관 △의존적 농민의식, 이 다섯 가지를 우리 농업을 퇴보시킨 ‘5대 성역’으로 지목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첨단 농업부국’의 사명은 기업형 수출농의 육성이었다. 그래야 농업의 국제경쟁력이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매일경제>의 농업 어젠다 작성 과정에는 농식품부가 직간접적인 지원을 했다고 한다. 엠비(MB) 정부의 농업정책 기조인 ‘돈버는 농업’의 철학을 구현하는 일이니, 이상할 일도 없다. 사실, 농식품부는 지난 2년여 동안 농업의 규모화와 글로벌화를 줄기차게 외치고 다녔으며, 기업과 개발을 위한 공격적인 농지규제 완화를 실행에 옮겼다. 그사이 가족농은 외면됐고, 농업정책의 무게중심은 농기업과 대농 쪽으로 옮겨갔다. 방법만 있었다면, 소규모 가족농의 퇴출도 밀어붙였을 것이다.


사실, 엠비 정부에서 ‘돈버는 농업’을 내세우는 동안 농업과 농민의 현실은 더 나빠졌다. 돈을 벌기는커녕 절대 소득이 줄어들었다. 2008년 농업소득은 965만원으로 2006년의 1209만원보다 떨어졌으며, 농가 총소득은 같은 기간 최대 3230만원에서 3052만원으로 내려앉았다. 쌀값이 폭락한 지난해에는 소득이 더 떨어졌을 것이다.


허울좋은 ‘돈버는 농업’ 정책은 세 가지 점에서 심각한 우려와 불안을 낳는다.

첫째, 가족농이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 농기업도 결국 기업일 뿐이고, 기업 지원은 농정당국이 나설 일이 아니다. 농식품부가 농기업 성공의 모델로 떠받드는 네덜란드 또한 가족농과 협동조합이 농업의 중심에 있다고 한다. 선진국 농정은 대부분 가족농 중심의 농민소득 지지를 근간으로 삼는다.


둘째, 식량자급률 상향 의지가 실종됐다.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27%대이고, 쌀을 제외하면 5%대로 떨어진다. 식량강국인 대부분의 선진국은 물론이고, 식량수요가 급속히 늘어나는 중국 또한 2020년까지 95%의 식량자급률을 지키겠다는 대단히 벅찬 목표를 던져놓고 있다. 식량자급률에 무심한 우리 농정은 국제 현실과 많이 동떨어져 있다.


셋째,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재평가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여러 선진국은 농업과 농촌의 새로운 가치를 계량화해, 농업 보조금 지원의 객관적인 근거를 삼고 있다. 또 미국 같은 나라는 농업의 이산화탄소 흡수기능을 인정하는 탄소 오프셋 정책으로, 농촌의 새로운 소득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농촌이 흡수한 탄소량만큼 기업이 탄소 배출권으로 구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난해 여름, 전북 완주에서 저녁을 함께했던 ‘과부’ 할머니 다섯분의 행복한 미소가 떠오른다. 손바닥만한 농사를 지으면서도 풋풋한 공동체의 정을 나누고 있었다. 경쟁력 있는 대농들만이 아니라, 그 할머니들도 똑같이 우리 농촌의 주인이다.


김현대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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