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등록: 2010.07.26 수정: 2014.11.11


한국의 제조업체가 일본이나 독일의 제조업체에 비해 뛰어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가?


불과 5년 전만 해도 이 질문을 받은 사람이라면 열에 아홉은 고개를 가로 저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라면 조금은 사정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바로, 한국의 기업생태계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의 기업생태계는 피가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 동맥경화증에 걸린 환자처럼 경제계의 피라고 할 수 있는 돈줄이 일부 제조업체에서 더 이상 뻗어나가지 못하고, 막혀 있었다. 그러다보니, 외부 충격이 가해질 때 부품업체 뿐만 아니라, 글로벌 제조업체들 역시 취약한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런데 최근 이런 양상이 바뀌고 있다. 일부 제조업체가 기업생태계의 모든 수익을 전유하던 시대에서 탈피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부품업체와 함께 건강한 기업생태계가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1조원의 영업이익도 버거웠던 현대모비스의 경우, 2009년 2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글로벌 10위권 부품업체로 도약했고, 100위권 안에도 만도, 현대 위아, LG화학 4곳이 포함되었다.


정보기술 업계에서는 삼성전기의 활약이 눈에 띈다. 삼성전기는 일본의 유수 전자 부품업체를 제치고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품업체로 성장했다. 90년대 중반 연매출 1조원을 달성했던 기업이 15년 만에 영업이익 1조원을 거두는 회사로 변신한 것이다.


뿐만 아니다. LG이노텍은 1970년대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에서 최초로 TV튜너 생산을 시작한 이래 아날로그 튜너, 모듈레이터, 새도우 마스크 사업을 세계 1등 사업으로 키워냈다.


이 외에도, LG화학과 삼성 SDI는 2차 전지 분야에서 세계 1위 업체로 도약하고 있다. LG화학은 전기차 등에 사용되는 대형 2차 전지 분야에서 그리고 삼성SDI는 휴대폰과 같은 소형기기에 사용되는 리튬이온 2차 전지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이제 삼성전자, 현대차 등 글로벌 제조업체들이 10~20%에 이르는 높은 영업이익을 달성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이들 부품업체들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언급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렇다보니, 2010년 5월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남유럽발 금융위기에도 한국 주식시장은 그 어떤 선진시장보다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독일을 제외한 유로존 대부분의 국가들이 연고점 대비 10%이상 하락했지만, 한국 주식시장은 예외다. 오히려, 강한 실적 모멘텀과 글로벌 유동성이 더해져 연고점을 뚫고 상승하고 있다. 대외 변수에 속절없이 휘청대던 과거와는 전혀 딴판이다.


물론, 한국 경제가 언제나 강한 모습만을 보여줄 순 없을 것이다. 수출중심 경제구조를 갖고 있는 한 외부 충격에 대한 취약성을 완전히 제거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기업생태계 전반에 다수의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업체들이 포진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외부 위협은 나눠 흡수하고, 기회는 협력해 배가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에 이르는 독일, 80년대 초반 일본에 이어, 21세기 세계 제조업 최강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한국의 꿈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부품업체로부터 무르익어가고 있다.


서재교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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