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0.07.23 수정: 2014.11.10

"우리는 지금 전례 없는 위기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더 치열한 경쟁의 세계 앞에 던져져 있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언제 망할지 모릅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사퇴했던 회장직을 다시 맡겠다고 나서면서 했던 말을 인용한 게 아니다. 사실 이 말은 모든 경영의 대가가 늘 했던 말이다.
경영학은 위험하다
400 쪽이 훌쩍 넘는 <위험한 경영학>이라는 책을 용감하게(?) 번역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 책이 경영의 대가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그 위험성을 너무나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회적기업과 사회책임경영 등 최신 경영 현상의 핵심 메시지, 즉 경영의 핵심은 무엇보다 사명과 철학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경쾌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려 지난 100여년 동안, 레퍼터리는 변하지 않았다. 변주조차 없었다.
피터 드러커도 그랬다. 톰 피터스도 그랬다. 우리의 기업은, 우리의 사회는, 우리의 세계는, 늘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 있었다. 그렇게 위험한 세계를 살아내야만 하는 게 우리 인생이다. '경영학의 대가'들은 늘 그렇게 위기를 강조했다. 위험만을 강조하는, 위험한 학문이다.
이런 경영의 대가들은 위험을 열심히 강조한 뒤, 반드시 다음 이야기로 옮겨간다. 그렇게 위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정신 바짝 차리고 자기 말을 집중해서 들으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결론이 나온다. 그 결론은 때로 과학적 경영(테일러)일 때도 있고, 인본주의 경영(메이요)이기도 하며, 전략(마이클 포터)일 때도 있고, 초우량(톰 피터스)일 때도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에는 가정이 숨어 있다. 그 결론을 이야기하는 대가는 앞서 있고, 나머지는 모두 뒤처져 있다. 그리고 세상에서 생각하는 사람은 대가 한 명이며, 나머지는 모두 바보다.
거기까지도 좋다. 그러나 더 위험한 장면은 다음에 나온다. 이 모든 경영 대가의 이야기에서, 응당 결론에 앞서 오랜 기간 탐색되어야 할 것 같은 본론 - 결론의 입증 과정 - 은 늘 결론보다 훨씬 덜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리고 찬찬히 뜯어 보면, 논리가 터무니없이 비약하거나 사실관계가 틀린 경우가 자주 발견된다.
그러나 위기론에 긴장하고 자극적 결론에 취한 대중은 이 대가들의 본론을 꼼꼼히 따져 묻기 전에 이미 그들의 책을 구입하고 그들의 강의를 듣고 그들에게 컨설팅을 맡긴다. 그리고 수십년이 지나고 나서야 본론을 따져 묻는 이들이 생긴다.
그래서 경영학은 위험하다. 이 책은 그 위험한 경영학의 성립 과정을 꼼꼼히 따져 묻는다. 그리고 그 본론의 허술함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그리고 지적한다. 경영자에게 정말 부족한 것은 이런 '과학'이 아니라, '철학'이라는 사실을.
경영컨설턴트가 된 철학도
<위험한 경영학>은 얼떨결에 경영컨설턴트가 된 철학도의 자전적 이야기다. 그가 경영컨설팅의 세계에 점점 빠져들면서 느끼는 허와 실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생생한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어느 순간, 전도창창한 경영컨설턴트는 자신의 일에서 전문가인체 하는 가짜 전문가들, 무지함을 표상하는 학위, 극악무도한 책들, 책임소재를 흐리는 묘한 질문들을 보게된다. 그리고 반문한다. “내가 어디에서 이것들을 보았을까”? 최고급 호텔에서의 식사와 비즈니스 클래스 비행기 좌석이 주는 성공에 대한 느낌과 그 깊이와 높이만큼의 좌절의 시간을 경험하면서, 경영에 정말 필요한 것은 자신이 떠나온 바로 그것, ' 철학'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는 자신의 쓰라린 경험을 경영학의 '4대 대가'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승화시킨다. 경영학 학문을 만든 효시인 프레드릭 테일러, 인간관계론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엘튼 메이요, 경영전략학을 토대를 만든 동시에 흔들리지 않을 골격을 완성한 마이클 포터, 경영컨설팅을 고고한 상아탑과 최고급 미팅룸에서 끌어내려 가정의 식탁에서 조차 오가게 만든 경영컨설팅교의 교주 톰 피터스. 저자는 네 명의 경영학 구루(대가)들의 이야기를 속속들이 파헤치면서, 통열한 뒤통수 때리기를 감행한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과 그 대가들의 이야기를 동일한 정신이 동일한 시간에 일어난 것임을 알게 된다.
우리 기업에 부족한 것은 철학
경영대가들의 뒤통수 때리기는 경영대학원 과정에 대한 절절한 제안으로 이어진다. 그리고는 좋은 경영자에 대한 정의로 글을 맺는다. 좋은 경영자는 분석 능력과 함께 더 큰 화합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좋은 경영자는 정말 중요한 큰 그림을 보고, 동시에 세세한 내용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다. 좋은 경영자는 틀에 맞는 대답이나 전통적인 지혜에 만족하지 않고 지식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다. 좋은 경영자는 솔직하고 충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MIT 슬론경영대학원에 재학 중, 이 책 후반부에 등장하는 '자원기반이론'의 대가 비거 웨르너펠트 Birger Wernerfelt>의 강의를 한 학기 들은 일이 있다. M&A(기업인수합병)에 대한 수업에 앞서, 그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사람이 결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효율성을 강조하는 그의 논리 흐름에 압도된 나머지, 학생들은 이런 식의 대답을 쏟아냈다. '절세를 위해서요.'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려고요.' '부동산 비용을 아끼려고요.'
심사가 뒤틀린 나는 손을 번쩍 들고 대답했었다. "사랑하기 때문이겠지요." 삽시간에 강의실은 고요해졌다. 결혼에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경영자에게 중요한 것이 사명감과 정직함과 헌신성인 것처럼. 우리 기업에 부족한 것은, 과학이나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다.
<위험한 경영학>은 좋은 경영학 서적이다. 경영학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서, 그 부족함까지 깨우치게 해 준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