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등록: 2010.07.22 수정: 2014.11.10


요즘 가장 언론에 많이 오르내리는 정부부처를 꼽으라면 아마 '총리실'일 것이다. 민간인 사찰의혹에서부터 '세종시' 총리라는 비아냥을 받았던 정운찬 총리 후임에 관한 얘기까지, 말그대로 뒤숭숭하기 그지없는 분위기인 듯 하다. 다음 총리후보로 거론되는 여러 사람 가운데 한명이 박세일 서울대 교수이다. 만약 박세일 교수가 총리가 된다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아마 "이진선"씨가 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 학생운동을 풍미했던 이름 가운데 하나가 "이진경"이었다. 현재 서울산업대 교수로 있는 박태호 박사의 필명이기도 한 '이진경'의 뜻은, "이것이 진짜 경제학이다"였다. 그렇다면 "이진선"은? 예상대로 "이것이 진짜 선진화이다"로 풀이될 수 있다. 영포회와 함께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선진국민연대'와 그들의 상상 이상의 국정 농단으로 이명박 정부가 내걸었던 '선진화'라는 가치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하지만 '선진화'는 여전히 현 정부의 핵심국정목표이며, 그것의 이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박세일 교수 역시 "가짜 선진화"가 아닌 "진짜 선진화"가 더욱 절실할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아니 뭐가 '이진선'일까? 생각해 볼 수 있는 여러가지 것들 가운데 하나로, 한국 사회가 직면한 수많은 현안들에 시의적절한 답을 내놓을 수 있고, 동시에 중장기 국가전략을 고민하는 집단의 설립을 추진할 가능성이다. 즉 현재 국책연구소들의 구조와 위상, 역할을 뒤바꾸는 작업이 새롭게 시작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시나리오이다. 일종의 '국가전략원'이 설립되고, 나머지 국책연구소들은 규모와 기능을 조정하여 부처로 환원시키거나, 축소정비하는 '구조개편' 방안이 이미 지난 2008년 박세일 교수가 이사장으로 있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의 보고서로 이미 제출된 바 있었다.


이는 1999년부터 시작된 연구회 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방안이었다. 중장기 국가전략 연구의 필요성과 연구소들의 각 부처 환원은, 실상 아무런 논리적 연관이 없는 것이었다. 국책연구소의 '독립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연구소 부처 환원'이라는 대안은 국책연구소 소속 연구원들은 물론 학계와 시민사회, 정치권의 심각한 우려와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결국 2008년 12월 국회 정무위원회 공청회까지 열렸고, 한반도선진화재단의 국책연구소 구조개편 방안(실상 국무총리실의 입장이었다고 알려짐)은 이후 수면 아래로 잠복하였다.


[사진 설명 : 한국노동연구원노조원들이 2009년 12월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은행길 한국노동연구원 앞 복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직장폐쇄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출처 : 한겨레신문)]


그후에도 한국노동연구원의 파행 등이 계속되었고, 국책연구소의 '독립성' 문제는 심각한 논란꺼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국책연구기관 및 기관장에 대한 평가가 크게 강화되었고, 이는 국책연구소 소속 연구자들과 연구원,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그리고 현 정부 사이의 팽팽한 긴장과 대립을 낳고 있다. 경영평가 항목의 일부에 불과하던 기관장에 대한 평가를 아예 독립적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연2회에 걸쳐 기관장 평가를 실시함으로써 기관장에 대한 통제를 확실시 강화하였다. 이는 결국 기관장을 통한 기관통제, 연구원 통제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었다. 2008년의 '구조개편안'이 국책연구소의 '하드웨어'를 건드리는 작업이었다면, 2009년 이후 현재까지는 기관, 기관장, 연구원에 대한 '미시적' 통제를 강화하는 양상인 것이다.


이런 와중에 올해 2월 통일부는 통일연구원을 다시 부처로 이관하는 '통일연구원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하였다. 제정안의 내용은 "국가의 통일정책 수립을 지원하기 위해 통일연구원을 법인으로 설립하며, 통일부 장관이 연구원의 사업계획 및 예산 승인, 연구원장 및 이사 임명, 정관 인가 등의 권한을 갖도록 하는것"을 골자로 하는 것이었다. 현 정부 출범 직후부터 부처폐지가 논의되었을 정도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또는 제 역할에 반하고 있는) 통일부가 통일연구원을 부처 산하로 돌리려 한 것 자체가 다소 우스꽝스러운 장면이었다. 결국 통일연구원법 제정은 중단되고, 3월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회 의결을 거쳐 통일연구원 정관이 개정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개정된 정관은 통일연구원장이 ▲통일정책 및 남북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연구와 정책개발에 관한 사항 ▲사업계획 및 예산수립 ▲주요 사업내용 변경 등을 통일부 장관과 사전에 협의하도록 명시했다.


통일연구원이 통일부와 협력, 협의를 강화한다는 것이 뭐가 이상한가 싶을 수도 있다. 국책연구소는 국가 정책 수립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관련부처와의 유기적 협력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유기적'이기보다는 '일방적'일 때가 많고, 연구의 독립성과 객관성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는데 있다. 세종시 이전에 따른 '이익'과 '부담'의 추산이 극과 극을 달렸던 행정연구원의 사례는 대표적이다.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180도로 달라지는 연구결과나 정책제안들로 인해 피해를 입는 것은 결국 '국민'이다. 따라서 끊임없이 국책연구소의 '독립성', 특히 '부처 입김으로부터의 독립'이 쟁점이 되는 것이다. 비록 '통일연구원법 제정안'이 무산되기는 했지만, 국책연구소의 부처환원을 목표로 한 입법예고까지 이루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실은 논라운 일이다. 정부 부처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고, 통제가 더욱 용이한 '부처 산하의 연구소 시대'로 회귀하고자 하는 욕망을 여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중장기적 국가전략' 연구에 대한 필요성 주장과 맞물려 현실화될 수도 있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이 냈던 안들은 '폐기'된 것이 아니라 단지 '잠복'해 있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박세일 교수가 총리가 되든, 다른 누군가가 되든 총리실의 쇄신 나아가 집권 후반기 국정쇄신의 일환으로 국책연구소들의 대대적 개편도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더욱이 2012년부터 시작되는 국책연구소들의 세종시로의 이전은 '구조개편'을 위한 절묘한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이 원체 시끄럽고, 엉망진창이기에 국책연구소 개편은 우선순위가 한참 밀려나 있고, 만약 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이 아니라, 다음 정권 초반에 다시 논의가 시작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하지만 통일연구원의 예에서 보듯, 그리고 "이진선"이 등장한다면, 국책연구소의 '동상이몽'적 구조개편이 새롭게 논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별다른 '논란'을 만들어내지 않는 국책연구소들의 모습이 왠지 '폭풍전야'의 그것 같다고 느낀다면, 너무 지나친 상상일까? 연구원의 신분을 위협하는 '평가지침'을 둘러싼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연구원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은, 오히려 더 큰 구조변동 가능성에 대한 긴장감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만약 다시 '구조개편'이 추진된다면, 그것은 2008년의 상황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홍일표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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