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착한경제] CEO를 해고하는 사람은 누구?

HERI 2014. 11. 10
조회수 5007

등록: 2010.07.07 수정: 2014.11.10


KB금융 회장 자리를 놓고 벌어졌던 정권 내부의 ‘암투'가 화제다. 문득 매우 경영학적인 의문이 머리에 떠오른다. 어느 기업의 주인이 명확하지 않을 때, 또는 공공적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정부가 주인일 때, 그 기업의 CEO는 어떻게 선임되고 해고되어야 하나?


한국 언론 표현대로라면 대부분 ‘주인이 없는’ 지분구조를 갖고 있는, 즉 지분이 완전 분산되어 있는 미국 대기업을 들여다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유학 중 들었던 강의 중, 사외이사 활동 경험이 많던 윌리엄 파운즈 교수의 지배구조에 대한 강의가 문득 떠올랐다.


CEO와 사외이사는 부부관계


“저와 CEO와의 관계는 부부 관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죠. ‘우리 사이에 뭔가 문제가 있어’라는 말을 내뱉고 나면, 둘 중 하나는 떠나야 하는 겁니다. 문제가 많더라도 이 말을 던지지 않으면 평화가 계속되지요.”


미국 최대 시리얼 제조 기업인 제너럴 밀즈를 포함해 여러 개 기업의 사외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역임한 MIT슬론 경영대학원의 노교수 윌리엄 파운즈 박사는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한 학기 강의를 이렇게 시작했다. 그가 이사회 의장으로서 했던 일은 바로 주주를 대표해 CEO를 견제하는 일이었다.


파운즈 교수는 이사회 의장으로서 때로는 CEO를 뽑기도 하고, 때로는 해고하기도 하고, 때로는 질문하고 반박하며 견제하기도 했다. 그는 경영자와 주주 사이의 긴장 속에, 주주도 경영자도 아닌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참여해 둘 사이의 긴장을 중재하고 해소하는 미국 자본주의의 진수를 보여줬다.


누가 절대권력자 CEO를 해고하는가


source: Vario Creative

“당신 해고야.” (You’re fired) 한 때 미국에서 가장 유행했던 말 가운데 하나다.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NBC의 오락 프로그램 ‘수습 사원’ (The Apprentice)에 출연해 유행시킨 말이다. 트럼프는 이 프로그램에서 스스로 최고경영자(CEO)로 출연해, 전국에서 구름같이 몰려든 수 천명의 젊은이들을 여러 종류의 경영 시험을 통해 하나하나 해고한다. 마지막 남은 한 명만이 자신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을 자회사 CEO로 채용됐다.


트럼프가 한 명을 해고할 때마다 정장차림에 멋진 의자에 앉아 거만을 떨며 “You’re fired”라고 외치면서, 직장인들이 가장 듣고 싶지 않다는 이 말이 유명세를 타게 됐다. 동시에 누구나 해고할 수 있는 경영자의 정점, ‘CEO’라는 존재에 대한 신비에 가까운 동경도 함께 자라났다. 누가 그 자리에 어떻게 오르는 것이며,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에 대한 관심이 빗발쳤다. 덕분에 도널드 트럼프는 설문조사를 하면 “가장 능력있는 CEO”로 꼽히곤 한다.


그런데 기업에는 누구나 해고할 수 있는 엄청난 권력을 지닌 CEO들을 채용하고 해고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주주들의 대표인 이사회의 등기이사들이다. 그 중에서도 사내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사외이사들이다.


MIT슬론 경영대학원 학장을 지낸 백전노장 파운즈 교수는 자신의 사외이사 경험을 늘어놓았다. “대부분의 경우 내가 문제를 제기하면 CEO는 해고됐죠. 일단 사외이사들이 문제제기에 공감하면 후임자 물색을 시작하죠. 그리고 나서 전체 이사들의 의견을 모은 다음에 CEO에게 통보합니다. 그런데 한 번은 밀렸어요. 다른 이사들에게 ‘이 CEO 뭔가 문제가 있어’라고 말을 꺼냈는데 다들 호응이 없는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견딜 수 없더군요. 다음 정기 이사회 때 자발적으로 그만뒀죠.” 부부 관계와 비슷하다는 건 ‘헤어질 때가 됐다’는 말을 꺼내면 결국 어떻게든 헤어지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사외이사가 CEO를 해고하다니?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를 떠올리면 이런 얘기는 교수의 말을 허풍쯤으로 치부해 버리는 게 맞을 거다. 한국에서 CEO를 채용하거나 해고할 수 있는 사람은 셋 중의 하나다. 재벌 총수이거나 중소기업의 소유경영인이거나 정부이거나. 재벌 소유 대기업 CEO는 재벌 총수들이 뽑고 해고한다. 중소기업은 대부분 주인이 스스로 CEO다. 공기업 CEO인선에는 정부가 개입한다. 법적 권한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실질적 지배구조를 얘기하는 거다.


그러나 많은 미국 주요 기업은 지분이 거의 완전 분산돼 있다. 주요 주주는 연기금이나 주식형펀드 같은 기관투자가들이다. 그런데 기관투자가들은 워낙 다양하고 분산돼 있기도 하거니와, 주가차익만을 노린 투자자이므로 직접 경영자를 파견하려 하지 않는다. 주총에서 투표를 통해서만 의사를 표현하고, 그 권리조차도 의결대행기관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


사외이사에게 주어진 막강한 권한


이렇게 복잡하게 구성된 주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CEO를 견제하는 권한은 이사회에 주어진다. 그리고 주요주주가 불명확한 기업의 이사회는 대부분 과반수 이상이 사외이사로 구성돼 있다. 많은 기업들은 심지어 CEO를 제외하고는 전원 사외이사로 이사회를 구성하기도 한다. 파운즈 교수와 같은 명망가나 학계 인물이 이사회 의장을 맡아 CEO를 해고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는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


한국적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 권한도 책임도 없는 사외이사들이 어떻게 기업의 최고 결정권자 자리에 앉아 있을까? 그들이 제대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건 가장 자본주의적인 미국 주류 기업의 지배구조, 즉 기업의 자산을 주주들이 통제하는 방식이다. 파운즈 교수는 이게 ‘자본주의가 돌아가는 방식(how it works)’라고 말한다. 주주자본주의의 정수라는 얘기다.


왜 주주자본주의의 첨단에 서 있는 나라, 그 대표기업들이 이렇게 취약해 보이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을까? 설명은 간단했다. “CEO는 정치적 지위입니다. 그들에게는 너무 많은 이해관계가 걸려 있습니다. 그걸 하나하나 신경쓰다 보면 주주 이익 극대화는 결국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죠.” 파운즈 교수는 자신이 지켜본 수많은 기업 중에 CEO가 진지하게 주주 이익 극대화를 목표로 일하는 경우는 정말 손에 꼽힐 정도로 적었다고 토로했다.


물론 CEO의 해고는 쉽지 않다. CEO에 맞서 기업 경영에 대한 토론을 벌여 이기는 건 어려운 일이다. CEO가 모든 정보를 쥐고 있으니 말이다. 국회의원이 대통령과 국정을 토론해 이기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도 여전히 많은 이사회들이 이 부담을 언론이나 정부에 떠넘긴다. 언론이 CEO를 비판하거나 정부가 기업의 불법 행위를 제재할 때쯤 되어서야 이사회가 여론을 등에 업고 등장해 CEO를 권고사직 시킨다는 얘기다.


그러나 백전노장인 만큼 노하우가 있었다. 파운즈 교수는 CEO가 일을 잘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세 가지 지표를 제시했다.


첫째, 현금이 너무 많이 쌓이는 기업의 CEO는 한번쯤 의심해 봐라. 주주가 모아 준 돈으로 직원들은 열심히 돈을 벌아 오는데, 그 돈으로 미래를 기획해야 하는 CEO는 직무를 태만히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둘 째, CEO가 ‘1등 주의’나 ‘세계경영’ 같은 정치적 구호를 지나치게 앞세우기 시작하면 조심해야 한다. 다른 약점을 감추기 위해 듣기 좋은 구호를 개발해 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다. 물론 끊임없이 묻고 의문을 제기하는 이사만이 이런 지표를 파국이 오기 전에 발견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순 인재 흐름’이다. 순현금흐름이나 순이익이 아무리 좋아도 좋은 사람들이 나가고 있는 회사, 인재들이 들어오지 않고 있는 회사에는 뭔가 문제가 있다. 이 문제를 책임질 사람은 CEO다.


시민단체 소속 대기업 사외이사는 무엇을 했나


요즘 미국 기업의 이사회들은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엔론을 위시해 수많은 CEO들이 주주들을 속여 잇속을 챙긴 것으로 드러나면서, 주주들의 대표격인 이사회에 더 큰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논의가 목소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기대치는 점점 높아진다. 예를 들면 이사회를 학계, 시민단체, 전혀 다른 업종 경영자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해 기업의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통로로 이용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CEO의 절대권력 탓에 잘 드러나지 않는 기업의 부패를 막도록 이사회가 기업의 내부자 고발 통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다. 많은 기업들에서는 이미 이사들이 현장성과 재무능력을 갖추도록 각종 현장실습 및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궁금한 것은 한국 기업들이다. 이런 제도는 한국 기업도 잘 갖추고 있다. 한겨레경제연구소의 2009년 한국기업 사회책임경영 평가 내용 가운데 지배구조 항목을 살펴봐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문제는 실행이다. 어느 사외이사도 CEO와 맞서서 해고하려 들지 않는 묘한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어느 사외이사도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을 온전히 행사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CEO와 맞서는 일 따위는, '정권 실세 xx라인'이 도맡아 하게 된 게 아닐까?


제도는 있으나 행사되지 않는 일이 계속되니, 그게 정말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인지가 의심스러워질 정도다. 실제 주요 대기업 사외이사 가운데 시민단체 인사가 들어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도, 실제 권한은 행사되지 않았다. 그들은 무슨 일을 했는지가 궁금하다.


주요 대기업 사외이사 가운데 누군가 용감하게 깃발을 들어야만 이런 권한이 사회에 알려지고 확산될 것이다. 그래야 기업 CEO 선임과 해임 때 '정권 실세' 운운하는 뉴스가 우리 사회에서 사라질 것이다.


일흔 살을 훌쩍 넘긴 백발의 노교수는 이런 말로 한 학기 강의를 마쳤다. “수십 년 동안 여러 차례 CEO를 채용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죠. 그런데 놀랍게도 적당한 사람 찾기가 정말 어렵더군요. CEO는 사물을 전체로 보고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여야 하는데, 한 분야 전문가는 많지만 제너럴리스트는 드물더군요. 똑똑한 젊은이들은 금융사나 컨설팅사로 진출해서 단기간에 돈을 벌어 은퇴하려고만 하지 고뇌에 찬 이 길을 걷지 않으려 해요. 여러분은 진정한 제너럴리스트가 되십시오. 지배구조에 대한 고민은 그 핵심입니다. 자신이 속한 조직의 지배구조를 고민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되는 자신을 발견할 겁니다.”



* 졸저 ‘MIT MBA 강의노트’의 일부를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

단행본 공개 프로젝트의 일환입니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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